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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Apr 26. 2024

독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독성학(29)

지연 독성의 위험성

    가습기 살균제와 같이 지연 독성이 나타나는 물질은 혈중 농도와 증상이 일치하지 않아 독성 기전에 기반해서 이해하지 않으면 우험 예측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은 세포독성으로 특정한 수용체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세포막의 기능을 저해해 독성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서 가습기 살균제가 피부에 묻거나 소량에 노출되었을 때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런데, 폐에 노출되면, 특히, 초음파 방식으로 입자화된 물 분자와 같이 흡입되면 폐포에 직접 노출이 일어날 수 있고 이로 인해 폐포가 교체 주기보다 빨리 죽게 되면 죽은 세포들이 쌓이고 이로 인해 위막이 형성되어 산소 교환이 어렵게 된다. 이 상황이 지속되어 죽은 세포가 쌓이면, 세포의 자살 신호가 강화되어 폐포가 섬유화가 진행된다. 이 반응은 시작되면 노출 여부와 무관하게 한동안 지속된다.

    약물 대부분은 사람에 대한 독성학적 프로필(치료농도, 독성농도, 치사농도)에 대한 자료가 많고, 작용기전, 부작용 등이 잘 알려져 중독사 판단에 활용될 수 있다. 이에 비해 농약은 인체에 대한 독성 프로필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많고, 활성 성분 이외의 용제나 계면활성제의 독성이 같이 나타나기 때문에 사실상 활성물질의 혈중 농도가 무의미한 경우가 많다. 대부분은 독성학적으로 참고할 만한 것은 설치류, 토끼, 개, 고양이 등 동물에 대한 경구투여 급성 독성반수치사량 정도지만, 활성 성분의 농도가 낮고 특이성 큰 성분의 경우, 급성중독의 주요 원인이 용제나 계면활성제에 의한 경우가 많다. 농약류의 급성 독성반수치사량이 가지는 한계는 종간의 차이로 인해 사람에 적용하기 어렵고 통계적으로 LD50은 1개의 점이어서 기울기를 알 수 없으니 데이터의 외삽도 불가능하다. 또 다른 문제는 지연되어 나타나는 독성은 더더욱 왜곡되기 쉽다. 지연 독성을 가지는 물질은 비교 동물과 사람 세포의 분열 속도 차이보다 수명의 차이가 커 독성이 왜곡되기도 한다. 대표적인 지연 독성을 나타내는 파라콰트의 래트(실험 쥐의 일종) 경구투여 급성 독성반수치사량은 57mg/kg이지만 사람에 대한 추정 LD50은 3~5mg/kg(농약 제품으로 약 10mL 음독으로도 3~4주 후 사망에 이를 수 있다)으로 추정되며, 래트의 1/10에 불과하다. 이러한 왜곡은 저용량 노출에서 사람이 3~4주 후 사망에 이르기도 하는데 래트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일 수 있어 실제 급성독성 실험의 기간 내에 죽지 않을 수 있다. 작용기전을 고려할 때, 사람의 LD50에 해당하는 양을 쥐에 투약해도 비슷한 시기에 절반이 죽을 것이다. 그러나 래트는 3년까지 살고 사람의 기대 수명을 대략 90으로 보면 30배의 차이로 래트의 3주는 사람의 90주(7.5년)에 해당한다. 이러한 이유로 지연 독성을 보이는 독성물질의 LD50은 생애주기가 짧은 종에서 낮게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독성이 혈중 농도와 비례하는 독성물질의 경우는 종간의 유전적 차이, 대사 능력, 수용체 구조 차이로 인한 작용 강도의 차이가 종간 차이의 주요 원인이 되지만, 지연 독성이 나타나는 독성물질은 종 간의 수명 차이도 지대한 영향을 준다. LD50은 같은 작용기전을 가지는 물질의 상대적 비교나 환경 분야에서 다양한 물질에 대한 평가 등에 한 기준 요소로 사용될 수 있으나, 중독사에서 독성 평가나 독성 비교에서는 다른 독성자료가 전혀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참조하지 않는다. 저독성 농약으로 분류된 농약이라도 사람이 음독했을 때 고독성 농약보다 큰 독성을 나타내는 예도 있다. 건강한 성인 남성도 10mL 섭취만으로도 사망할 수 있는 파라콰트도 사용 초기에는 저독성 농약으로 분류되었다가 보통 독성으로 분류되었고 2012년 생산 판매가 중단되었다.

    다른 대표적인 지연 독성인 농약으로 클로르페나피르(Chlorfenapyr)가 있다. 1996년 우리나라에 출시된 살충제로 방제가 어려운 곤충에 효과적인 것이 알려지며 사용량이 늘고 있다. Streptomyces fumanus actinomycete 박테리아에서 분리된 톡신에서 유래되었으며, 래트에 대한 LD50은 수컷의 경우 441mg/kg, 암컷의 경우 1,152mg/kg로 보통독성 농약으로 분류되어 있다. 사람에 대한 추정 최소치사량이나 LD50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10% 10mL 음독(약 14mg/kg, 70kg 기준) 후 19일 만에 사망한 사례가 있으며, 치료 퇴원 후 7~20일 후 사망한 사례가 다수 보고되어 있다. 

 클로르페나피르는 전구체살충제(proinsecticide)로 트랄로프릴(tralopyril)로 대사 되어 활성을 나타낸다. 클로르페나피르로 제품을 만드는 이유는 클로르페나피르가 트랄로프릴에 비해 지용성이 흡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클로르페나피르 중독의 주요 증상은 메스꺼움, 구토, 발열, 발한, 빈호흡, 횡문근융해 및 정신 상태 변화를 보이며, 특히 발열은 40℃를 넘기도 한다. 대사 된 트랄로프릴의 독성 기전은 미토콘드리아의 내막의 수소이온을 유출하는 언커플러(uncoupler)로 작용하여 독성을 나타낸다. 정상적인 미토콘드리아는 지질 이중막으로 미토콘드리아 매트릭스(내막 안쪽)와 중간 막사이의 수소이온 농도차를 이용해 ATP를 생성하며 미토콘드리아 전자전달계는 직접적으로 ATP를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미토콘드리아 매트릭스에 수소이온 농도를 높인다. 이 농도 차를 이용해 ATPase가 ATP를 생성한다. 지방세포 중 갈색 지방세포는 많은 미토콘드리아를 가지고 있으며, 세포 내막의 수소이온을 중간 막으로 내보내며 열을 발생시켜 체온을 유지하는 데 이용된다. 이 과정은 적절하게 통제되어 포도당과 지질 대사를 증가시키고 지방 축적을 소멸시키며 미토콘드리아 활성 생성을 감소시킨다. 미토콘드리아 분리는 과도한 지방을 태우고, 세포 증식에 사용되는 세포 대사산물을 소비하고, 산화 스트레스로부터 세포를 보호하는 효과적인 수단을 제공한다. 

 반면 클로르페니피르와 같이 통제되지 않는 언커플링은 소량 노출로도 위험할 수 있다. 클로로페나피르 음독 후 14일간 무증상이었으나, 14일 후 증상을 보여 내원 치료 중 사망한 사례도 있다. 클로르페나피르 중독 증상은 수소이온 유출에 의한 발열, 에너지 부족과 관련 깊으며, 발열로 인한 발한, 빈호흡, 산증, 횡문근 융해증 고열로 인한 환각 등을 보인다. 흡수된 클로르페나피르는 지용성이 커 생체 내 오래 머물며 대사 되어 생성된 트랄로프릴이 미토콘드리아 내막에 축적되면 미토콘드리아의 수소이온 손실을 지속하며 기운 없고 점진적으로 대사성 산증, 구토, 횡문근 융해증으로 진행된다, 이와 함께 미토콘드리아가 더는 정상적인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져 자살 신호를 방출하기 시작하여 전신 장기의 기능 저하를 가져오며, 뇌에도 병변을 일으킨다. 트랄로프릴이 미토콘드리아 내막에 지속해서 상승하면 수소이온의 손실이 열로 변환되어 지속해서 체온 상승을 일으킨다. 파라콰트도 장기의 자살 신호를 이끌지만, 산소와 NAPDH 농도가 높은 장기에 손상이 심하며, BBB(blood brain barriar)를 거의 통과하지 못해 뇌 병변이 거의 관찰되지 않는다. 반면, 클로르페나피르는 지용성이 커 BBB를 잘 통과하는 특성으로 인해 뇌 병변을 일으킨다. 클로르페나피르가 보통 독성으로 분류되지만, 지연 독성으로 인해 인체 독성은 치명적이다. 유기인계나 유기염소계 살충제가 일과성으로 회복되면 치명적인 후유증이 적은 데 반해 클로르페나피르는 일정량 이상 노출 시 지연된 독성으로 인해 연관성을 찾지 못할 수 있다. 부검 관련 중독사에서 클로르페나피르는 생산 판매가 중단된 파라콰트 보다 다소 낮은 비율을 차지하지만, 클로르페나피르의 지연 독성으로 인해 자연사 처리되거나, 질병으로 처리될 수 있어 실제보다 낮게 낮게 평가되었을 수 있다. 농약의 독성을 평가할 때 단순히 동물실험 결과가 아니라 작용기전을 고려한 위험성 평가를 추가해 관리해야 한다.

    동물실험에 독성 평가나 독성자료, 중독사례 특히, 만성독성과 관련된 자료 검토에서 지연 독성을 간과하거나, 잘못 이해되면 위험이 과소 평가되기도 한다. 파라콰트가 보통 독성으로 알려졌었으나 강력한 지연 독성으로 인해 시장에서 퇴출되었듯, 클로르페나피르도 그에 못지않은 위험한 농약이다. 가습기 살균의 지연 독성의 영향으로 노출과 증상의 인과 관계를 파악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로 지연 독성은 간과되기 쉬워 위험을 초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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