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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anke May 05. 2024

독에 대해 연구하지 않는 독성학(33)

산소의 독성

    대부 날씨가 추워지며 의무대 입원실에 사람이 붐빈다. 감기로 인한 고열 환자 몇 명은 수액을 달고, 심한 발목 염좌 환자 반깁스를 갈아주고 무료한 영내 생활을 견디기 위해 책을 펼쳐 들었다. 독성학책을 읽고 이해하는 데는 생화학, 생리학, 유전학뿐만 아니라 통계학적 지식까지 필요한데 5천 페이지가 넘는 분량임에도 자세한 설명이 없는 것들이 많아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생각처럼 빨리 가지 않는 국방부 시계를 돌리는데 그만한 것이 없다.

    특이하게 심한 구내염으로 입원해 있는 환자는 수일째 호전되지 않고 말이 없다. 얼굴은 홍조를 띠고 있었다. 입안 염증이 나아지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표정에서 분노와 좌절이 느껴졌다. 어젯밤 당직 서며 읽었던 파라콰트 독성이 생각나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포병부대 특성상 다른 포대는 계급에 큰 상관이 없었다. 이 환자의 내무반장은 대학원을 마치고 늦게 입대한 나를 형이라 부를 만큼 친분이 있어 전후 사정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자 친구와 심각한 문제가 있어 청원 휴가를 다녀왔다고 했다. 병사 집전화번호를 알아내 그의 어머니와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파란색이었으며, 마시려는 때 여자친구가 뺨을 때렸다고 했다. 병사에게 사실확인을 했다. 다행히 삼키지는 않은 것 같고 입안에 머문 채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파라콰트 노출을 입증할 수는 없었지만, 색깔과 임상 증상이 파라콰트를 의심하기에 충분했다. 군의관에게 보고했고 그 병사는 헬기로 수도통합병원으로 후송한다고 했다. 다행히도 그 병사는 3개월 정도 후에 부대에 복귀했다. 나를 찾아와 제대하면 꼭 술 한잔 사겠다고 했다. 간에 손상이 있을 수 있으니 술과 담배는 멀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물론, 그 병사는 전역 후 나를 찾지는 않았다.

    지금도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지만, 7, 80년대 시골에서 농약 음독사는 흔했다. 그중에서도 유독 결국은 죽는다고 알려진 농약 두 개가 있었다. 그라목손(상품명)과 메토밀이다. 그라목손은 파라콰트가 유효 성분인 제초제의 상품명이다. 파라콰트는 병원 치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간과 폐의 실질세포가 줄어들고 경화되어 한 달 이내에 사망한다. 메토밀은 카바메이트계 농약으로 해독제를 투여하는 등 치료하면 일시적으로 나아지지만, 용제를 메탄올을 사용하는 탓에 해독제를 투여하고 대증요법을 시행하면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메탄올이 대사 되며 만들어지는 포름알데하이드와 개미산 독성으로 인해 수 십 시간~수 일내 사망한다. 병문안을 가면 멀쩡한 듯 보이지만 결국 사망에 이른다. 이는 음독 후 회복하면 회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파라콰트는 산화적 손상에 의한 지연독성으로 수일~수주 후 사망하고 메토밀은 메탄올에 의한 지연독성으로 호전되는 듯하다 수십 시간 후 사망하기 때문이다.

    농약의 독성은 유효 성분뿐만 아니라 제품에 포함된 용제, 계면활성제, 안정화제 등에 의해서도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농약의 위해성이 유효성분 중심으로 논의되는 것은 용제, 계면활성제, 안정화제 등은 잔류 농도에서 거의 독성을 나타내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독하게 되면 많은 양의 유효성분 외 물질들에 노출되고 이들로 인한 독성이 나타난다. 2010년대 대부분의 고독성 농약의 생산 판매가 금지되어 농약 중독에서 농약 중독에서 유효성분 외의 성분에 의한 독성이 치료나 환자 예후의 관점에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파라콰트를 음독하면, 파라콰트에 의한 세포의 산화적 손상과 계면활성제에 의한 비특이적인 독성이 동반된다. 음독하게 되면 장의 융모세포가 가능을 제대로 하지 못해 수분과 영양물질 흡수에 어려움을 겪게 되며 흡수된 파라콰트에 의한 장기 손상이 일어난다. 음독 후 수 시간~수일 내 사망은 전해질 불균형과 에너지원 공급 부족이 주요 원인이다. 대증적 치료로 생존하더라도. 결국은 간과 폐 기능 저하로 사망한다. 파라콰트는 구조적 특징으로 인해 자발적으로 산화와, NADPH에 의해 환원이 반복되며 과산화물을 만들어 세포에 산화적 손상을 준다. 산화적 손상은 암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과도한 미토콘드리아의 산화적 손상은 세포 자살신호를 증가시킨다. 이로 인해 간과 폐의 실질세포가 죽어가며 경화된다. 간은 경구투여서 간문맥을 통해 상대적으로 농도가 높고 다른 세포에 비해 NADPH 농도와 많은 미토콘드리아 개수가 많아 손상과 자살신호의 강도가 높다. 폐는 산소농도가 높아 보다 파라콰트의 산화-환원 속도가 빨라 생성되는 과산화물이 많다. 폐 또한 호흡을 통해 흡수되는 물질대사를 위해 간 수준의 대사능을 가지고 있어 NADPH 농도가 높다. 모든 장기가 손상을 받지만 이러한 두 장기의 특성으로 인해 손상이 빨리 나타난다. 파라콰트는 +2가의 사급암모늄 형태로 혈액-뇌 장벽(BBB, Blood-Brain Barrier)을 거의 통과하지 못해 뇌 손상은 거의 보고되어 있지 않다. 파라콰트가 끔찍한 또 하나의 이유는 멀쩡한 정신으로 자신의 순간의 선택으로 인해 살고 싶어도 죽어가는 스스로를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파라콰트의 이러한 독성의 지연 현상으로 일반적인 약물과 달리 혈중 농도로 환자의 상태가 설명되지 않는다. 독성의 정도는 초기 얼마나 높은 농도로 노출되었는지에 의해 결정된다.

    과거 파라콰트 해독제로 규조토를 투약하도록 추천되었다. 이는 파라콰트가 토양에 닿으면 쉽게 분해되고 규조토에 음독한 파라콰트가 흡착되는 원리를 이용하고자 한 것이나, 이후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효과가 없어 폐는 것으로 밝혀졌다. 규조토로 위장 내 남아 있는 파라콰트를 줄일 수는 있지만, 이미 흡수된 파라콰트에는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파라콰트의 산화적 손상을 고려한 고용량의 항산화 비타민류를 투약하여 효과가 있었다는 보고가 있지만, 모든 경우에서 유효하지는 않았다. 파라콰트가 자연 분해 속도가 빠르고 농산물에 축적이 거의 되지 않고 탁월한 제초 능력으로 널리 사용되었지만, 음독사고가 끊이지 않아, 2012년 생산 판매를 중지되었다. 이 조치가 있기 전까지 파라콰트는 중독사 원인의 부동의 1위였으며, 생산 판매를 중단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파라콰트 중독사는 드물지 않게 보인다. 여전히 농가 어딘가에 파라콰트가 있으며, 몇몇 개발도상국에서는 여전히 판매되고 있어 밀수입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파라콰트는 자살 목적으로 뿐만 아니라, 불특정 다수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범죄의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콜라에 파라콰트를 섞어 먹도록 하거나, 생수에 섞은 사례도 있다. 한 여성이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과 시어머니를 독살하였으며, 딸에게 파라콰트를 소량씩 먹인 후 보험금을 타냈다. 전남편도 파라콰트에 의한 독살이 의심되었다. 사체가 백골화되더라도 많은 독성물질의 검출이 가능하지만, 화장한 탓에 입증하지 못했다. 백골화된 경우, 중독사 여부를 판정하기 위해 대퇴골이 사용되는데, 대퇴골은 부패과정 중에도 잘 밀폐되어 외부의 영향을 적게 받으며, 혈액과 성긴 골조직으로 채워져 있어 농도 변화가 있겠지만 내적을 구해 농도를 구해볼 수도 있다. 대퇴골에서 파라콰트가 검출된 몇몇 예가 있다. 특이한 사례로 대퇴골 안에서 여러 마리의 쥐며느리가 죽어 있는 사례가 있었다. 쥐며느리가 살아있는 상태였다면 이동했겠지만, 이미 죽은 상태로 지연독성이 나타나는 파라콰트 중독 가능성이 우선적으로 고려되었으며, 실제 파라콰트가 검출되었다. 중국에서는 아내의 거액의 보험금을 노리고 속옷에 파라콰트를 묻혀 사망에 이르게 한 예도 있다. 파라콰트를 쏟아 넓은 범위의 몸에 묻은 것을 바로 씻지 않아 사망한 사례도 있어 피부흡수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파라콰트의 독성은 파라콰트의 산화-환원과정에서 생성된 과산화물과 NADPH/NADP+의 감소로 산화적 손상에 대한 방어 능력의 약화에 기인한다. 독성이 지연되어 나타나는 이유 중 하나로 노출 후 시간이 지나 사망한 경우, 혈액에서 거의 검출되지 않더라도 근육에서 높은 농도로 검출되는 점 때문에, 근육에 있던 파라콰트가 지속적으로 공급되어 독성이 나타난다는 가설이 있지만, 이보다는 미토콘드리아의 산화적 손상에 의해 촉발된 세포 자살신호가 파라콰트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도 지속되는 것이 훨씬 영향이 크다. 파라콰트 중독 후 치료하더라도 대배분 수일~수주 후 간과 폐의 기능 상실로 사망에 이른다. 

 이 현상은 심정지 등으로 일정 시간 동안 세포에 산소 공급이 차단되면 나타날 수 있다. 일정 시간 동안 산소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세포는 에너지 부족 상태에 빠져 NADPH/NADP+ 비율 감소로 산소 노출에 따른 산화적 손상을 방어하지 못하게 되어 미토콘드리아에 의한 자살신호 촉발로 이어질 수 있다. 심정지시 저온치료의 기전에 대해 명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지만, 신진대사를 늦춤으로써 산소에 의한 독성 감소와 관련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적혈구를 제외한 NADH/NAD+는 주로 산화반응에 주로 관여하여 에너지 균형에 관여하고, NADPH/NADP+는 주로 산화환원 균형에 관여하여 세포의 산화적 손상을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NAD(P)+ transhydrogenase에 의해 NADP+와 NADH와 반응해 NADPH를 생성하기 때문에 에네지 고갈에 따른 NADH/NAD+의 감소는 미토콘드리아의 산화적 손상을 제대로 방어하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미토콘드리아는 산화적 손상은 미토콘드리아의 자살 신호를 촉진한다. 정상적인 수준에서는 미토콘드리아 수준에서 끝나지만 많아지면 세포 자체의 자살로 이어진다. 세포가 과도하게 자살하면 조직에 손상 손상이 되고 실질세포가 줄어들며 장기의 기능이 상실될 수 있다. 지속되면 전신 장기부전과 뇌사로 이어진다.

    산소는 우리 몸이 에너지원을 산화시켜 에너지를 얻는데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다양한 화학반응이 일어나는 세포 안의 산화환원 균형을 무너뜨리는 독소이기도 하다. 세포는 산소의 독성으로부터 세포를 보호하기 이해 많은 장치를 가지고 있으며 에너지를 소비해 산화환원 균형을 유지한다. 과도한 산화반응은 물질뿐만 아니라 단백질, DNA의 안정성에 영향을 주어 세포 수준, 조직 수준뿐만 아니라 개체의 생명까지 위협한다.     

 산소는 생명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생체의 산소 보호 기전이 약화하면 독성을 나타낸다. 정상적인 상태에서 세포는 보호 기전에 의해 충분히 보호되지만, 그 보호 기능을 무력화하는 독성물질에 노출 등이 있을 때는 생명 유지에 치명적이다. 대부분의 물질이 그러하듯 산소도 도움이 되는지 위해가 되는지는 물질 자체보다 상황이 결정한다. 산소는 에너지 생성이나 생체의 생화학적 반응에 중요한 원소이지만, 다른 원소에 비해 반응성이 크고, 자신보다 반응성이 큰 물질을 생성한다. 산소에 의해 생성된 과산화물은 반응성이 커서 노화와 암 발생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생체 내 세포는 개체가 죽기 전까지 분화하며 주기적으로 교체가 일어난다. 과산화물은 만성적으로 DNA 안정성에 문제를 일으켜 직접적으로 암 발생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단백질이나 지방의 안정성에 영향을 미쳐 세포 기능에 손상을 일으켜 세포 분화 주기를 촉진하여 간접적으로 암 발생 빈도를 높이고 노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산화물로부터 세포를 보호하기 위해 생명체는 산화환원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복잡한 체계를 발전시켜 왔다. NADPH/NADP+ 글루타치온과 같은 황화합물, 비타민 E와 비타민 C와 같은 비타민류, 각종 폴리페놀 성분이 이러한 과산화물로 인한 과도한 산화를 억제하며 SOD(super oxide dismutase)과 같은 효소가 작용하여 적극적으로 과산화물을 제거하여 세포의 산화적 손상을 방지한다.  

    파라콰트 중독과 같이 산화환원 균형의 붕괴는 혐기성 균이 진핵생물과 공생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미토콘드리아에 치명적으로 미토콘드리아가 내는 자살 신호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세포 자체의 자살로 이어져 조직과 장기 손상이 생긴다. 이러한 작용은 파라콰트의 혈중농도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노출되어 일정 수준의 흡수가 일어나 산화환원 균형이 교란되면 파라콰트가 몸에서 대사 되고 배설되더라도 진행하여 수일~수주 후에 간과 폐의 기능 부전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산소는 사람을 포함한 많은 생명체가 탄수화물 등 에너지원을 산화시켜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과정에 필수적인 원소이지만, 산소의 독성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엄청난 독으로 작용한다. 생명활동에 꼭 필요한 물질이라도 상황에 따라 치명적일 수 있는데 산소도 예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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