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십 년 살아도 모르겠음
스몰톡은 어렵다.
너무 개인적이지 않아야하고, 그렇다고 너무 투머치 인포메이션을 묻거나 주지 않아야 하지만 서로 편안함을 느끼는 동시에 공통의 관심사를 찾아야 한다. 어렵다.
"너 무슨 팀 팬이야?"
미국에서 살면서 스몰토크 중 가장 흔한 건 어느 스포츠팀의 팬인지에 대한 대화다. 개인적인 상황에서는 물론 회사나 공적상황에서도 긴장을 풀기위해 흔히 사용하는 주제다. 자기가 팬인 팀의 옷을 입고 출근하는 날/아이들 학교 가는 날 등이 있을 정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적어도 자기가 좋아하는 팀이 하나씩은 있게 마련이고, 야구나 농구 얘기를 꺼내며 특정 팀 얘기를 하기도 하지만, 아마 보통 이 질문 자체가 내포하고 있는 건 미식축구팀이지 않나 싶다.
나는 스포츠에 큰 관심이 없다. 이건 미국에서만이 아니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올림픽 때나 월드컵 때 잠깐 열광하는 정도의 지극히 스포츠 알못. 이러면 좀 사회생활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생기기 마련인데, 지인이나 가족이 수퍼볼(미식축구 결승전) 파티를 열면 거기가서 참 할 말이 없는 건 물론이거니와, 남들이 풋볼 보면서 아-이번에는 이렇게 했어야 해! 라든지, 저 팀은 이랬네 저랬네 하는데 참 낄 수가 없다.
문제는, 미식축구는 당최 룰을 이해하고 싶은 동기가 안 든다는 거다. 야구도, 축구도 대충 룰은 안다. 룰이 분명하다. 선수들은 룰에 맞춰 움직인다. 반면에 미식축구는 선수들이 떼로 우르르 이리저리 돌진하며 싸우는 것 처럼 보인다. 어린이들과 함께한 커리어배경이 있는 나는, 미식축구 장면을 볼 때마다 '3살짜리 어린이 열댓명에게 공 하나를 던져주면 딱 저거랑 똑같지'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아무래도 서로 태클걸고, 넘어뜨리고, 공 들고 뛰고 밀치고 이러는 장면이다 보니 스포츠라는 느낌이 안 나는걸.
근데 주말에 미식축구를 보러갔다왔다.
주말에 할 거 없나 하다가 남편이 저렴한 티켓을 찾은 게 이유다. 원래는 안 땡겼다. 리바이스 스테디움은 샌프란시스코에서 차로 1시간은 걸리고, 이런 경기장은 주차비도 미쳤거니와 그걸 내고 주차를 하고 빠져 나오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주차비가 50불(!)이라는 사실에 남편이 적극적으로 알아보더니, 근처 트램 역에 차를 세우고 트램을 타고 들어가면 된다고 루트까지 알아왔길래 오케이 했다. 남편이 풋볼에 엄청난 팬이라서는 아니고, 아마 미식축구를 보러 간다는 건 정크푸드를 합법적(?)으로 먹을 수 있다는 전제 때문임이 뻔하다.
5시 경긴데 2시 반에 출발했다. 나는 일찍 도착해서 뭘 하냐고 근처 다운타운이라도 구경하다가 가자고 했다가, 굉장히 떨떠름한 남편의 반응에 혹시 줄이 길어서 늦어질 수 있나해서 바로 가기로 했다. 차를 타고 가면 1시간이지만 트램역에 차를 대고 트램을 타고 들어가면 30분이 더 걸렸다. 트램 자체는 편리하고 괜찮았는데, 도착하니까 소지품검사 하는 줄이 굉장히 길었다.
여기서 잠깐>
미국에서 이런 큰 이벤트를 갈 때는 보안이 엄격하기 때문에 짐을 어떻게 가져갈까를 잘 생각해야한다.
큰 가방은 안되고 손바닥 만한 작은 클러치는 괜찮다. 뭘 더 챙겨오고 싶으면 투명한 가방을 이용해야 하고 자른 과일 등의 간식을 가져오고 싶다면 이 또한 투명 비닐팩에 담아와야 한다. 음료는 열지 않은 새 물 외에 모두 반입 불가. 빈 통을 가져와서 물을 채우는 건 괜찮다.
리바이스 스테디움은 샌프란시스코 베이스의 풋볼팀 49ers의 홈구장이다. 팀 이름 49ers (Fortyniners)는 보통 줄여서 Niners라고 부른다. 이름이 뭐 이러냐고?
샌프란시스코는 사실 굉장히 작다. 가로세로 7miles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래서 대애충 7X7=49 제곱마일 정도 되는데, 49는 바로 여기서 왔다. 팀의 색도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색 - 골든게이트브릿지의 빨간색과 골드러시를 상징하는 금색이다.
소지품 검사 줄을 지나자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사람이 너무 많고 음악이 시끄럽고 넓고 정신이 없었다. 여기저기서 커다란 맥주와 술, 튀긴음식을 팔았다. 사람들은 빨간 유니폼과 정신없는 금색 장신구를 걸치고 "GO NINERS!!!!!" 를 외쳤다. 물론 그들의 손에는 감자튀김, 치킨텐더, 맥주를 한 가득 들고.
좌석을 찾아가야 하는데 정신이 없어서 한참을 헤맸다. 가장 싼 좌석을 구매했기 때문에 7층 높이까지 올라가야했지만 한 번 지나간 엘리베이터를 다시 찾을 수가 없어 계단으로 걸어올라갔다. 헥헥대고 위로 올라오자, 아까처럼 음식을 구매할 수 있는 다른 층이 보였지만 확실히 덜 붐볐다. 해당 좌석을 찾아 앉았더니 해가 쨍쨍 내리쬐서 경기가 시작할 때 까지는 그늘로 가서 뭐좀 먹고 오기로 했다. 남편은 버거를, 나는 룸피아(고기를 감싸서 튀긴 필리핀음식)를 사서 좀 덜 붐비는 곳에 가서 먹고, 자리에 가서 앉았다.
해가 쨍쨍한 것 외에는 사실 난 꼭대기 좌석이 맘에 들었다! 뷰가 좋고 사람도 좀 덜 많다. 시작하기 전 과 중간 간간히 치어리더 팀이 나와서 춤을 춘다. 치어리더팀은 Niners에 속하는데, 이름은 골드러시란다.
이 날 경기는 홈 구장에서 하는 홈팀 경기였기에 경기장은 전부 포리나이너 팬으로 가득찬 상태. 상대편 팀이 뛰어나오는데 관중들이 하나같이 "우우우우우우---------!!" 하고 야유를 했다ㅋㅋㅋㅋ 으엉?스포츠맨십 없어? 그냥 이렇게 대놓고 야유를 해? 하면서 내가 깔깔 웃자, 남편은 "원래 그래" 했다.
그러더니 자기네 팀은 엄청 성대하게 등장했다. 치어리더 팀이 죽 늘어서서 춤추면서 환영해 주고, 저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고, 깃발 뛰어다니면서 펄럭거리더니
엄청난 환호를 받으며 우리팀(?)이 등장했다ㅋㅋㅋ 경건히 일어나서 팀을 맞이하는 관중분. 이게 프로페셔널 경기라고? 어떤 면으로 참 유치뽕짝해서 나는 계속 깔깔 웃었다.
팀이 다 들어오면 이러저러한 안내 이후에 내셔널앤떰(미국 미국가?)를 연주하는데, 이 날은 네이티브어메리칸을 배경에 세워놓고 흑인 여자가 나와 색소폰을 불었다. 사람들을 의식해 마이너리티를 무대에 올리는게 그렇게라도 다양성을 존중해줘서 좋아해야 하는 건지, 보여주기식으로 세워놔서 불편해야 하는 건지 헷갈렸지만 뭐 어쨌든 신은 났다.
다 부르고 나면 폭죽도 터뜨리고 신난다.
경기는 세 시간 정도 진행된다. 한 팀이 공을 들고 전진하면 다른 팀은 그걸 막아야 하고, 마지막에 공을 가지고 맨 끝으로 가 터치다운을 하면 6점. 터치다운 후 공을 차 넣을수있는 보너스턴을 주고 성공하면 1점 추가. 터치다운을 하든 못했든 공을 차 골대에 넣을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때가 있는데, 그 때 공이 들어가면 3점이다.
처음엔 상대편이 터치다운을 하고 공을 차 넣어서 7점, 우리팀(?)이 공만 차 넣어서 3점이 됐고 왔다갔다 하기에 중간 즈음 되서 혼자 먹을 걸 사러 나왔다. 치킨텐더와 감자튀김을 파는 곳들은 줄이 너-무 길어서 실패하고, 아까 필리핀음식을 샀던 곳에서 치킨윙을 사가지고 오는데, 하필 그 사이에 우리 팀이 터치다운을 했다. 사람들이 다 환호하고 소리치고 난리가 났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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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한참 지나고 드디어 해가 넘어가서 좀 괜찮아졌다 싶었더니 이제는 쌀쌀해졌다.
경기내내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은 사실
"Who has the ball?" 혹은 "Where's the ball?" (누가 공 가졌어? 혹은 공 어딨어?) 였다ㅋㅋㅋㅋ 중계를 보면 알아서 공 가진 애를 카메라가 따라가 주고 설명해 주니까 보이는데, 경기장에서 보자니 공 가진 애가 보통 어디쯤 포지셔닝 해 있는 지 알 수가 없었다ㅋㅋㅋ 남편은 처음에는 "저깄어 저기" 하고 가리켜 주다가, 나중에는 점차 대답이 없어졌다ㅋㅋㅋ
빨강/금색이 포리나이너, 흰티가 상대편. 검은바지에 줄무늬 셔츠는 레프리, 공중에 매달린 건 카메라다. 레프리가 너댓명은 계속 따라다니면서 경기를 감시(?) 하는데, 반칙을 목격하면 노란걸 냅다 경기장 중간에 던진다. (사진에도 중간에 바닥에 노란 뭔가가 떨어져 있는 게 보임) 저게 한 개일 수도 있고 보이는 사람 전부가 던지니 여러개가 냅다 여러 방향에서 날아오기도 한다. 그러면 대장심판(?) 아저씨가 정리해서 몇 번 선수가 뭘 했고 어떤 패널티가 있다고 최종 발언 해 준다. 여기서도 심판이 우리팀 맘에 드는 심판 안 해주면 관중석이 단체로 또 야유를 한다ㅋㅋㅋ
경기는 10대 16. 6점차이가 커 보이지만 사실 상대편이 터치다운을 하면 단숨에 역전이 가능한 상황이고 점차 조여들어오고 있었다. 일찍 떠나려고 하다가 결국에는 마지막까지 관람했는데, 상대편이 터치다운에 실패하면서 우리팀이 이겼다.
이겨서 좋아서 다들 몰려나오고
Niners 이겼다고 전광판에 써붙였다. 사실 이 팀 작년에 결승까지 갔었고, 연장까지 한 끝에 아쉽게도 졌었다. 수퍼볼(결승) 갔을 때 샌프란시스코 사람들 난리 났었던.
나오는 길에 참 달이 밝았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말 풋볼 만큼 미국스러운 게 없다.
큰 덩치/장비를 가지고 공격적으로 밀고나가며 상대쪽으로 전진하는 경기
+ 각종 튀긴음식과 맥주
+ 분명히 프로페셔널한데 뭔가 좀 본능에 충실한 세팅에
+ 해골이 울릴만큼 큰 음악, 디제이
+ 근데 또 '모두를 위한 풋볼경기' 라며 아기, 어린이 환영
그래도 좀 재밌었다. 홈 경기에 홈팀이 이긴 경기니 어련하겠지만. 처음으로 좀 재밌을 때 까지 10년이 걸렸는데 20년 후 에는 나도 같이 야유하고 "아 저렇게 하면 안 되지" 하고 소리치고 있을까?ㅋㅋ
사실 그럴 것 같지는 않다ㅋㅋㅋ 그래도 가끔은 경기 보러 가는 것도 재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