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보면 내가 보여.
*이 소설을 사실과는 전혀 무관한 100% 픽션입니다.
일요일 아침, 다음달에 있을 공연준비로 댄스팀과 새벽연습을 마치고 아침에 들어온 고등학교 2학년인 아이에게 엄마의 날카로운 잔소리는 지칠 줄 모르고 쏟아진다.
아이는 방문을 쾅 닫고 책상에 털썩 앉았다.
'엄마는 진짜 나를 하나도 안믿어줘. 이제 열일곱씩이나 됐는데...! 아직도 또 또 저놈의 잔소리!!!!'
숨을 크게 고르고 심호흡을 한다.
"내가 안 들어주는 게 아니라, 네가 말하는 게 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 그렇지! 너 그렇게 공부는 안 하고 춤만 추겠다고 하면 엄마가 뭐라고 해야겠니?! 공부 열심히 하는 조건으로 엄마가 댄스학원 보내준다고 했지?!"
"춤이 나쁜 거야? 대체 왜 내가 하는것마다 방해하는 건데! 내가 어디에 있는지 다 실시간으로 보고하고, 친구랑 여러번 통화도 했잖아!!!"
아이는 침묵끝에 억울함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엄마는 대꾸 대신 방문을 부서질듯 세게 두드리며 말했다.
"넌 왜 이렇게 고집이 세니? 너희 아빠랑 똑 닮아서 말이야. 현실적인 걸 좀 생각해! 엄마가 춤은 취미로만 하라고 했지! 그렇게 늦게까지 새벽연습을 하고 아침에 들어오고, 대체 공부는 언제 하려고 그래? 이걸로 먹고살 수 있겠어??!"
아이의 가슴은 와르르 무너졌다.
'엄마는 자기 인생이나 행복하게 살지, 왜이렇게 쉴새없이 잔소리를 쏟아내는거야!!! 언제나 내가 뭘 원하는지에 대해선 전혀 신경 쓰지 않잖아... 담임선생님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댔어. 엄마의 잔소리에 절대로 절대로!!! 지지말자. 더 열심히 해서 이번에는 중간고사에 꼭 1등을 할거야!!! 꼭 공부도 춤도 둘 다 잘 해내 보이겠어!!'
아이는 이글이글 투지를 다지며, 방을 둘러본다. 방 안에는 정리되지 않은 연습복과 스피커가 어지럽게 놓여 있었고, 책상 한쪽에는 밀린 구몬일본어가 가득 쌓여 있었다. 아이는 눈물을 훔치며 연습복을 하나씩 하나씩 방 한켠에 개놓는것 부터 정리를 시작했다.
한편으로 엄마는 방문 밖에서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춤이 뭐가 그렇게 좋다고... 좋아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춤은 취미로만 생각하게끔 해야 돼. 이제 막 고등학생이 돼서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밤샘연습이라니..'
엄마는 표현하는 방법이 서투른 사람이었다. 사실은 아이가 춤에 대한 재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무척 자랑스러웠지만, 아이를 걱정하는 방식이 늘 지나쳤던 것이 문제였다. 넉넉하지 않은 살림 형편 때문에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었지만, 아이가 잘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공부에 소홀하지 않도록 잔소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갈등의 여운이 남은 집안은 한동안 조용했다. 아이는 방 안에서, 엄마는 주방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침묵을 유지하고 있었다. 문득 엄마는 작게 중얼거렸다.
"언젠가 내 마음을 아이도 알아주겠지..."
그 순간, 방 정리를 마치고 책상 앞에 앉은 아이도 구몬일본어장에 고개를 푹 파묻은 채 속삭였다.
'엄마는 진짜 나를 이해 못 해. 나를 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할까? 왜..왜.. 내가 열심히 하고 있다는 건 봐주지 않는 거지?'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자신이 하는 일을 진심으로 인정해주고 응원해줬으면 했다.
특히 엄마가.. 하지만 엄마는 늘 현실적인 이야기만 꺼냈고, 아이는 그럴 때마다 자신이 혼자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침대에 몸을 기댄 채 천장을 바라보던 아이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가 내가 춤추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말을 한 번이라도 해줬다면, 이렇게 외롭지는 않았을 텐데...'
사실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 사랑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엄마의 걱정과 잔소리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걸 잘 알면서도, 그 속에 숨겨진 믿음이나 응원의 말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의 눈가가 붉어지며 작은 속삭임이 방 안에 울렸다.
"엄마가 날 조금만 더 믿어주면 좋겠어… 조금만."
아이는 거울에 비친 장미를 바라본다.
장미는 춤을 추고 있었지만, 그 모습은 춤이라기 보다는, 흡사 행사장 앞에있는 공기인형과도 같았다.
쉴새없이 박자를 놓쳐대는 저 몸짓.
실수를 연발하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 하는 모습.
이것보다 더 쉽게 알려줄 수 없을거라 생각하며 가르쳐봐도,
실수를 연발해대는 제멋대로의 동작들.
장미는 어디하나 빠질것 없이 '완벽한 몸치' 그 자체였다.
장미가 춤을 시작한 이유를 이야기했을 때, 아이는 그 말이 가슴에 사무치게 다가왔다.
"저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까 싶어서요.."
얼마나 깊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아이는 장미의 그 한마디에서 그녀가 얼마나 외롭고도 간절하게 살아왔는지를 느꼈다. 세상에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내겠다는 마음은, 얼마나 무겁게 그녀를 짓누르는 '짐'이 될 지 아이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저 나이에 저런 마음을 품고 춤을 시작했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이는 가슴이 먹먹해지면서도 동시에 애틋한 감정이 일었다. 그녀가 엉성하고 서툰 몸짓으로라도 움직이려는 그 의지를 보며, 어쩐지 마음이 따뜻해지면서도 아팠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조심스러움과 걱정이 일어났다. 아이는 장미를 볼 때면, 늘 어딘지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내가 그녀를 완벽하게 구해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그녀의 노력을 진심으로 지켜봐 주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줄 순 있겠지.'
"장미야."
아이는 다가가 그녀의 눈높이를 맞추며 부드럽게 말했다.
"네 선생님, 무슨 일이세요?"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 춤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너를 기다려주는 존재야. 천천히, 네 속도대로 하면 돼. 네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거야.. 잘하고 있어."
그 말은 장미를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과거의 자신에게도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그래도 스승과 제자는 선이 있어야 해. 내가 아무리 공감한다 해도, 그 선을 넘으면 안 돼.'
아이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각오를 단단히 다지기로 결심했다.
'장미가 하고싶은것을 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면,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응원이겠지. 내가 할 일은 그녀가 혼자서도 그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