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소수자, 공무원 노동자의 이야기.
해리포터와 나의 이야기
영화 해리포터의 내용전개는 작은 소년에 불과한, 마법학교 학생. '해리'가 스스로 용기를 내서 볼드모트와 맞서 싸우며, 자신과 친구들을 지키고, 또 주어진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은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해리는 자신의 몸집보다 수백 배는 더 큰 바실리스크와 목숨을 건 대결을 벌이게 된다. 해리는 모자 속에 손을 넣어 용기를 떠올렸고, '그리핀도르의 검'을 얻게 된다. 그를 도와주는 불사조 '폭스'는 바실리스크의 두 눈을 부리로 쪼아 멀게 만들어 준다. 폭스의 도움 덕분에 해리는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서 싸울 용기를 점차 얻게 되었고, 불가능해 보이던 싸움 끝에 그리핀도르의 검으로 바실리스크의 두개골 정중앙을 꿰뚫는다.
이 장면이 가장 감동적이었던 이유는 작은 소년에 불과한 해리가 내면의 용기를 발휘해 자신보다 몇백 배나 더 큰 뱀과의 싸움을 감수해 냈고, 결국에는 승리했기 때문이다. 해리는 바실리스크와 오롯이 홀로 대면했으며, 폭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해리가 싸울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지원해 준다. 결국 그들은 불가능해 보이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지니를 안전하게 구출해 낸다. 그리고 몸에 박힌 바실리스크의 독니를 뽑아 볼드모트의 성물 중 하나인 일기장까지도 없애게 된다. 폭스는 눈물로 해리의 상처를 치유 해 주었고, 해리와 지니는 폭스와 함께 무사히 호그와트 성으로 돌아가게 된다.
보안직 공무원, 그리고 '여성'
나는 '서울청사관리소' 소속으로 정부서울청사에서 방호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여성 근로자이다. 이제 만 5년 차가 다 되어가지만, 나의 삶도 ‘해리의 삶’과 비슷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집단에서 소수 성별인 ‘여성’이라는 이유로 나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존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나는 집단 안에서 끊임없이 타자화되며, “여성이라서..”로 시작되는 말들이 심심치 않게 따라붙는다. 내가 하는 일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정부청사의 내부 보안요원으로서 청사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X-ray 검색을 통해 반입금지물품들을 확인하고, 순찰 등을 통한 화재위험감지, 각종 시설물을 관리하며, 출입 인원 및 데이터도 관리한다. 또한 내외부 고위직 공무원들의 의전과 민원 안내 등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전체 현장 업무 종사자는 약 90여 명이지만, 그중 현재 휴직중인 1명을 제외하고, 여성 근무자는 단 3명에 불과하다. 그중에서도 나는 유일하게 야간에도 교대근무를 하는 여성 근로자다. 내가 재직하는 동안 새로 채용된 남성 공무원은 10여명이 넘었던 것에 비해, 여성 공무원은 단 한 명에 불과할 뿐이었는데, 업무의 난이도가 그렇게 힘들지 않음에도 여성 근무자가 지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지 의아하기도 하다. 같은 관리소의 청원경찰 여성은 수시로 채용이 되는 편인데, 하는 일은 비슷한데 왜 그런지 의아하기도 하다.
여성이 소수인 탓인지, 타자화가 되는것은 일상적인 일이었다. 최근에는 한 부서장으로부터 들었던 말은 그 중 특히 잊혀지지 않는다. 그는 “다른 부서에서는 네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아주길 꺼려했으나, 내가 너를 특별히 받아준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치 나의 자격과 실력은 철저히 무시당한 채, 단지 성별 때문에 ‘특별히 시혜되어야 할 존재’로 여겨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여성 혼자인데 왜 야간에도 당직 근무를 하느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다. 이곳에 입사한 지도 이제 두 달 후면 이 곳에서도 4년이 되어가지만, 언제까지 이런 말이나 질문들을 들어야 하는지 답답할 때가 있다. 일반직 공무원들도 성별에 관계없이 당직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여성 보안직 공무원이 소수라는 현실이 이런 질문의 원인인 것 같다.
처음 인사교류로 채용될 시에 면담을 할 때에는, 담당 팀장으로부터 “당직 근무를 수행하면 안 된다”, “샤워실을 비롯한 숙직실 등 여건 조성이 어렵다”는 이유로 야간 근무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저연차 공무원이었던 나에게는 야간 근무 여부에 따른 임금 차이가 극심했기에, 야간 근무를 할 수 있도록 인원을 조정해 달라고 주장했다. 다행히 그 주장은 받아들여졌고, 나는 야간 근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야간 교대업무는 수면 불규칙이 크다는 점을 제외하면 크게 어렵지 않았고, 곧 익숙해졌다. 그러나 성별에 따라 업무의 내용이나 시간에 차이가 전혀 없음에도,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불편함은 여전히 존재했다.
가끔 선후배들과 사담을 나누다 보면 “이제 너도 취집(취업+시집)해야지”라는 발언을 듣기도 하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옷차림을 출퇴근할 때 입어보라며 권유하던 후배도 있었다. 업무적으로 무언가를 도와주면 “손이 예쁘다”는 말을 하거나, “여성은 신체 구조상 당직 근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라는 이상한 논리를 설명하는 선배도 있었다. 심지어 내가 등장하면 이효리의 텐미닛 노래를 틀어놓고 빤히 쳐다보는 등 불편한 상황도 종종 발생했다.
물론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전체 인원 중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착하고 다정한 선후배들이다. 부친의 장례식에 조문하러 와주는 동료들도 많았고, 같은 직장에서 생계를 이어가는 좋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런 발언들을 들었을 때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겼다. 화를 내기도 애매했기 때문이다. 보안직렬의 특성상 군대나 운동계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남성 문화에 길들여져 있고, 여성과 근무를 함께한 경험이 부족해서 나를 ‘동료’가 아닌 단순히 ‘여성’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한 탓이겠거니 하며 그러려니 하고, 이해하고 넘겼다.
끝없는 증명과 이중의 노동
또한 '그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하며 그런 말들을 묵묵히 듣는 것은, 남초 집단에서 성별 소수자인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여겼다. 직업과 성차별을 동시에 선택한 것이니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잘못된 신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성차별적인 발언을 들을 때면, ‘내가 일을 꾸준히 잘해 나가다 보면, 나에게 그런 말을 하던 사람들은 점점 사라지겠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다그치고 위로하기도 했다. ‘내가 잘 버티다 보면, 언젠가 보안 직렬에 근무하기를 희망하는 다른 여성 공무원 후배들도 늘어날 것이다’라는 희망을 품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주어진 노동과 여성이라는 성별의 한계를 넘어 같은 업무를 해낼 수 있다는 노동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해 내기 위한 이중의 노동을 수행하며 지난 시간들을 버텨왔다.
감당할 수 없던 사건
그러나 작년 늦가을쯤,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소규모 인원과 함께한 회식 자리에서 한 직원에게 물리적으로 구속당한 채, 강제 추행을 당했다. 그는 나의 신체를 움직이지 못하게 억제한 상태에서 추행 행위를 지속했고, 맞은편에 있던 동료는 그 장면을 보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방관만 하고 있었다.
다행히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칠 수는 있었지만, 그는 청사 앞 정문까지 따라와서 나를 끌고 모텔로 데리고 가려고 했었다.
이후 이 일을 안전하게 종결하기 위해서는 고단하고 멀고 먼 여정을 거쳐가야만 했다.
우선 그에게 사과를 받아냈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겠다는 약속을 문자 메시지로 남겨 두긴 했다. 그러나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하지는 못했다. 이미 나에게는 너무나 큰 개인적인 일들이 쌓여 있었고, 문자 메시지 등의 증거를 남겨둔다면, 그가 같은 행위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싶었다. 무엇보다도 그를 처벌하기보다는 술김에 한 번의 실수였겠거니 하고 용서해 준다면, 그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같은 일을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 그는 나에게 친절한 선배였고,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동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나는 정말 그것이 만취 상태에서 벌어진 단 한 번의 실수였다고 믿고, 이해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어야만 모두가 남성 동료뿐인 이곳에서 두렵거나 위축되지 않은 채 일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여성’이 아니라 한 명의 근로자로서 동료들과 사적인 자리에 함께해도 괜찮을 것이며, 그런 자리에서 범죄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내 생각과는 한참 빗나갔다. 수개월이 지나도록 그는 나에게 사적인 술자리를 다시 갖자고 요구했고, 내가 끝내 거절하자 나의 면전에서 철문을 쾅 닫으며 위협적인 행동까지 했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그에게 ‘그 일’이 정말 동료에게 저지른 실수였던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나를 끝까지 자신을 거절한 ‘여성’으로만 바라보는 것인지 큰 충격과 혼란이 밀려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후자에 가까웠다. 그날 맞은편에 앉아 있던 남성 동료에게는 단 한 번의 스킨십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를 용서하고 넘어가려 했던 나 자신에게조차 깊은 회의감이 들었다.
그와 마주치는 일이 너무 힘들었고 트라우마가 계속 올라와 더는 버티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조직 내 인사고충을 담당하는 간부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그는 그날의 술자리에서 2차까지 함께했던 사람이었다. 누구보다도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그에게 이 상황을 이야기하면, 계속되는 폭력 사건에 대한 보호조치를 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불안감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는 “그렇다고 그와 평생 얼굴 안 보고 살 거냐”, “관리과 누구? 누구한테 이야기를 했다고? ○○○?”, “지금은 부서를 바꾸고 싶어하는 인원이 없어서 안 된다. 네가 있는 부서로 오고 싶어하는 인원이 없을 것이다”, “전체적인 인사 이동이 있을 때만 이동 조치가 가능하다”는 식의 답변을 했다.
그는 단지 “다른 부서로 이동을 원하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겠다. 희망자가 있으면 임의 이동은 가능하다”라고 말했을 뿐, 실질적인 분리 조치를 해줄 수는 없었다.
팀 간부와의 면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불안감만 훨씬 더 커졌다. 분리 조치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혹시나 그가 내가 이 사실을 이야기한 것을 알게 되면 보복하거나 더 큰 사건이 터질까 염려스러웠다. 그저 아무렇지 않은 듯 조용히 넘겨야만 보복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결국 나는 간부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 실장과 부장에게 이 일에 대해 신경 쓰지 말고 평소대로 시간표를 짜 달라. 전체 인사 이동이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극심한 불안, 그리고 목숨이 걸린 선택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 2주 동안 나는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 극심한 스트레스로 잠시 기절하면서 도로에서 전신주를 들이받을 뻔한 사고가 날 뻔했다. 그제야 이게 목숨이 걸린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나는 출근길에 상위 부서의 성고충 담당자에게 SOS를 요청했다. 일을 하러 가다가 사고로 죽을 수는 없으니까.
다행히 그 담당자는 협조적이었고, 이 사건을 매우 심각하고 중요한 사건으로 인지했다. 나는 담당자에게 “그를 처벌하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현재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어 일을 쉴 수 없는 상황이다. 단지 빠른 시간 내에 노동자로서 업무를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길 바랄 뿐이다”라며 ‘분리 조치’를 요구했다.
결국 서면으로 정식 사건 신고까지 접수한 후, 나는 그와 방관자가 있던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었다. 현재는 이동한 지 약 3주가 지난 시점이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고, 더 이상 극심한 스트레스로 매일 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일도 사라졌다.
나로 인해 시작되는 성인지 감수성 교육
인사과에서는 나와의 면담 이후, 전 직원 대상으로 대면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시행한다고 했다. 처음엔 의아했다. 나는 단지 분리조치를 요청했을 뿐인데, 성인지 감수성 교육까지 시행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사유는 듣지 못했지만, 아마도 성폭력 범죄의 재발 방지가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도 나는 고민에 빠졌다. 모든 남성 직원들이 성인지 감수성 교육을 꼭 받아야 하는지, 나로 인해 나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은 동료들까지 이런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성인지 감수성 교육은 단순히 성별 차이를 존중하는 교육이 아니다. 그것은 성별을 초월하여 서로의 ‘경계’를 인지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에 가깝다. 경계란 누군가가 외부에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다. 각자의 내부에 존재하는 것이다. 나의 경계선을 인지하는 것부터가 그 시작이며, 내가 나의 경계를 인지하고 타인의 경계도 존중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폭력으로부터 보다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성별 소수자의 노동권과 동등함에 대하여
세상에는 나처럼 성별 소수자로서 집단에 존재하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성별이 소수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은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끊임없이 증명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다. 사실 주어진 일을 그냥 하면 되는 것이지, 그 이상의 증명을 해야하거나, 요구받아야 할 필요는 전혀 없다. 오히려 끝없는 증명을 해야한다는 강박은 당사자 스스로까지를 의심하게 만들고, 크나큰 스트레스를 안겨줄 뿐이다.
이제는 성별에 따른 타자화가 당연시되는 세상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가 동등한 권리를 가진 채 당당하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개인적인 경험이 곧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유명한 표어가 있다,
나의 목소리와 경험이 단순한 개인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글이 나와 같은 ‘소수자인 노동자’ 분들에게 용기와 희망의 불씨가 되길, 그리고 그들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힘이 되길 바란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싶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사건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처럼 폭력 상황에서 신고를 주저했던 누군가에게, 이 글이 희망의 불씨가 되어, 온전히 그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바실리스크’와 맞서 싸웠던 작은 소년, 해리포터에게 불사조 ‘폭스’가 나타나 그를 도왔듯이, 당신이 비록 작고 힘없는 개인처럼 느껴진다 해도 당신의 경험을 드러낼 용기를 두 손에 쥐고 싸움을 선택한다면 반드시 도움의 손길이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당신 곁에 ‘불사조’뿐만 아니라 ‘불사조 기사단’도 함께하게 될 것이다.
나부터도 언제나 당신의 ‘폭스’가 되어 응원할 것이다. 함께 뜨거운 연대의 세상을 만들어 보자. 그리고 어디서든 위축되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니자고, 힘껏 외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