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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안 Nov 16. 2024

자신만 아는 자 vs 자신을 아는 자

인류애가 상실될 때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까?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는 대체로 얄팍하면서도 넓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그러나 비록 데면데면한 얄팍한 관계일지언정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매너가 부족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종종 있다. 나의 시선에서는 대체로 인간은 두 가지 재질로 나뉘어진다.

‘자신만 아는 자’ vs ‘자신을 아는 자’ 두 부류인데, 후자인 사람의 경우에는 메타인지가 높고 자신을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잘 돌볼 줄 아는 사람이다. 나의 경우에는 후자에 속하는 ‘자신을 아는 자’ 유형이다. 나는 매일 자신을 알아가기 위해서 노력을 한다. 매일 하는 일들 중 하나는 1. 운동 2. 인사이트발견 3. 일기를 비롯한 글쓰기 들인데, 이런 활동을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가장 크게 얻게 되는 것은 ‘자기애’이다. 먼저 운동을 하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관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건강뿐만 아니라 스트레스와 몸을 관리하는 자부심과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매일 운동을 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은 내가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가장 단기적인 생산활동이다. 운동을 하면 신체적인 매력도 올라가고 기분도 맑고 상쾌해진다. 또 기분이 안 좋고 활력이 없는 상태의 정신까지도 언제나 맑고 밝은 기운으로 대체시켜 준다. 20분 이상 러닝을 하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분비된다고 하는데, 그때 분비되는 엔도르핀들은 인생에 큰 고민이 아니고서야 웬만한 스트레스들을 극복할 수 있게 도와준다. 나는 매일의 삶에서 밝은 에너지를 잃지 않기 위해 운동을 한다. 또 운동을 하면 내가 고민하던 생각들이 대부분 정리가 되는 것이 느껴진다. 생각이 정리가 되면 그 자체가 인사이트의 발견이기도 해서 그런 내용과 기분으로 글을 쓰면 좋은 시너지가 생긴다.

  

  시너지가 만들어주는 글쓰기는, 삶에서 여러 가지 선물이 되어 준다. 내 삶의 꿈이 ’나 자신이 되는 것‘임을 기억하게 해 준다. 직장인이라는 정체성이 아닌 ‘나 자신’으로 살아가는 순간을 끊임없이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갖도록 만들어 준다. 일상을 관찰하고 느끼고 해석하며 내 삶의 주인공이 언제나 ’나 자신‘임을 기억하게 해 준다. 인생의 목표가 매일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살아가기 위해 개척하게 하는 삶을 살게 해 준다. 포괄적으로 내 삶의 에너지를 지금 현재뿐만 아니라 시간적 공간의 제약 없이, 저 우주까지도 나의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을 허용해 준다. 모든 것에 이름이 붙어 규정된 물질세상과 비물질세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꿈의 여정을 글쓰기를 통해 이루고 있다. 또 꾸준한 독서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가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이해까지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타인을 대할 때의 기본적인 언행을 나를 대할때처럼 맑고 밝게 하게된다. 내면의 소리처럼 아름답게 나가게 되니 대체로 사람들의 기분과 분위기를 잘 읽고 잘 맞춰줄 수 있게 된다. 이런 밝고 긍정적이며 공감능력이 좋은 성격의 사람들은 어딜 가나 환대받는 유형의 매력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나를 돌보고 성찰하고 즐거움을 찾는 나만의 여러 가지 방법들을 소개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이런 ‘자신을 아는 자’ 유형의 인간이, ‘나 이렇게 살면 손해 보는 거 아니냐’며 쉽게 직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인류애 상실에 대한 ‘짜증썰’을 풀어 보도록 하겠다. 오늘은 주말이다. 나의 직업은 3교대패턴으로 근무하는 공무원인데, ‘방호직공무원’이라는 직렬이다. ‘방어’와 ‘보호’를 한다는 뜻으로, 국가중요시설의 출입통제에 대한 보안과 경비업무를 주 업무로 하고 있다. 오늘은 한 달 중 3번 걸려버리는! ‘아침 일찍부터 출근해 24시간 당직근무’를 해야 하는 날이다. 당연히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오늘 첫 근무지는 보안출입증을 발급해 주는 곳이었는데, 어제 24시간 근무한 전근무자를 배려해 5분 일찍 교대를 해 주었다. 보통 주말근무는 한산한 편인데, 웬걸.. 오늘따라 회사 곳곳에 공사를 하는 날이라 사람이 엄청나게 몰렸다. 이미 40개 정도 되는 작업자출입증이 다 빠진 상황인 데다, 예비로 나가는 출입증까지 상당수 빠져있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많은 출입자들에게 하나하나 출입증을 발급해 주어야 하다니. 감기에 걸린 탓에 편도가 잔뜩 부어 말을 하면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오는 상황에서, 내 한 몸 질질 끌며 출근한 오늘의 컨디션으로서는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다. 그렇지만 그분들도 더 새벽부터 일어나 먼 길을 찾아주셨다는 것을 알기에 힘을 내서 열심히 출입증을 발급해 드리기 시작했다. 자, “ ㅇㅇㅇ님 ㅇㅇㅇ님.” 한 분 한 분 호명하기를 20여 차례가 끝나고, 이제 다음 민원인이 왔는데, 같은 직장의 다른 부서인 50대 남성공무원이었다. 등록정보를 받기 위해 이것저것 질문을 하고 있는 과정에서, 자기가 잘못 들어놓고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대뜸 반말로 짜증 나고 귀찮다는 듯이, “이름ㅇㅇㅇ 내선번호 ㅇㅇㅇㅇ!”라고 반말공격을 시전 하지 않는가? 자. 여기서 몸이 안 좋은 채로 질질 끌어 출근한 나의 인내심이 바닥났다. 혈압이 오른다는 게 이런 기분인가. 평소 트레이닝으로 심신을 오지게 단련해 오던 나도, 아픈 상황에서 만큼은 인내심이 한 번에 바닥을 치기도 하나보다. 화가 나니 몸이 더워지는 것을 느꼈다. 속으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얇은 패딩점퍼인 근무복을 벗었다. 얼굴이 울그락풀그락 했다. 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드디어 혼자 고요함을 보내고 있던 중에, 혼자 후폭풍이 온 마음의 소리들을 견디고 있었는데, 마침 근무지로 비품을 갖다 주러 오신 보기드문 인품의 따수운 선배분께 잠시 칭얼대며 tmi를 시전하고 위로를 받으니 마음이 1 정도 풀린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아직 스트레스는 99가 남아있는 채였으므로, 오늘만은 다이어트식단을 때려치고 맛있는 점심을 먹으러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인내심을 바닥까지 써버린 오전 근무가 끝나고, 나는 스트레스도 풀 겸 해장도 할 겸 근처 순두부 국밥집에 가서 야멸차게 얼큰이 순두부찌개와 비빔밥 세트를 먹으며 뜨거운 한국인의 매운맛으로 화를 달랬다.



순두부찌개집은 걸어서 작고 허름하지만 가성비 좋은 맛집으로 알려진 곳으로,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비는 한 골목길에 있었다. 그곳에서는 외국인뿐만 아니라, 근처에 사는 동네 주민분들도 모이는 곳이었다. 오른쪽 테이블에는 친어머니로 추정되는 분을 모시고 온 50대 부부커플. 왼쪽에는 40대 중후반의 여고동창모임. 뒤 테이블에서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앉아있었다. 작고 밀접한 가게 구조 탓에 각자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들을 수 있었는데, 오른쪽 부부커플테이블은 식사 중 스몰토크가 전혀 없는 반면, 왼쪽 동창모임에서는 대화 화력이 활활불 타오르는 게 느껴졌다. 들렸던 그들의 대화내용은 한분이 “우리 애가 이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니까 내 옆으로 와서 잘 안 놀려고 해서 좀 쓸쓸하고 외롭다”라고 하니, 극 T로 추정되는 다른 어머님은 “너도 너의 삶을 살아~! 왜 그렇게 의존적으로 살아~ 중학생이 되면 옆으로 오지도 않는다 야. 나는 남편이랑 애 없으면 그렇게 좋던데, 너도 너만의 것을 찾으면 되잖아!”라고 공감적 추임새 없는 해결책 제시를 시전 했다. 회사에서 이렇게 시달리다가 갑자기 다른 이들의 대화를 들을 수 있으니까 생각도 전환되고 기분도 나아졌다. 모두가 고민이 있구나.. 직장인이든 아니든, 모두 각자가 인간관계에서 맺는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구나 싶어 위로가 되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이성과 논리의 달인 T의 해결책은 따뜻하게 느껴지진 않는다만 맞는 말이었다. 관계를 통해 채우려 하지 않고 ‘나만의 것을 찾는다’는 말은 누구에게나 도움이 되는 말이다.


 밥을 먹고 시간이 남아 한숨 푹 잤다. 스트레스+매운 음식+재미경험+퀵스냅은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켜 나의 정신을 다시 원상태에 가까이 복귀시켜 주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 세상에는 ‘자기만 아는 자’가 있고, ‘자기를 아는 자’가 있다고. 후자의 경우 스스로를 사랑하는 만큼 타인에게도 공감능력이나 대화의 배려심이 많은 반면, 전자의 경우에는 그렇지 못하다고. 그것을 그냥 ‘손해’라고 생각하지 말고, ‘차이’라고 생각하자고. 물론 저렇게 이기적으로 막말하는 사람도 있고, 스트레스받기까지 하는데, 나만 배려심 있게 살면 손해 보는 거 아니냐며 억울함이 인류애를향해 고개를 쳐드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지만, 내안에 있는 인류애가 말한다. 자신만 아는 사람은 절대로 어딜 가서 환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그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유형들은 대체로 그와 비슷한 유형일 테니까. ’ 자신만 아는 자‘들의 모임이라니. 그가 내뱉는 말을 통해 느껴지는 그가 살아가는 세계는, 그처럼 자신만을 알고 타인을 대하는 사람들과 함께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 또한 그 삶의 피해자와 희생자가 될 경우가 많을 것이라 생각하니 가엾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는 ’ 자기를 아는 자‘로부터 환대받지 못할 것이다. 오늘부터 나도 그를 보고도 환대할 수 없을 첫날을 보낼 테니까. 이렇게 또 하나의 인간관계를 망친건, 역시 ‘자기만 아는 자’ 유형의 사람의 당연한 업보였다. 짠한 그를 위해 잠시 침묵의 묵상시간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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