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언어화 작업은 꼭 필요하다.
기억의 언어화 작업이 꼭 필요한 이유는,
나의 언어로 재정립해 달라진 변화에 새롭게 적응해 나가기 위함이다.
성폭력 사건을 신고하고 난 이후의 일상기록
성폭력 가해자와의 분리 조치를 진행한지 한달 남짓 지났다. 그러나 과연 이 이후에도, 또 다른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사건에 대해 분리조치를 요청했음에도 방임한 내부 '관리자'에 대한 징계 절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부 관리자가 이런 사건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재발방지가 제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선, 이 사건이 단지 어쩌다 일어난 '해프닝 정도'로 퉁쳐져 취급되지 않아야 했다.
또한 이 일에 대해서 누구도 징계받지 않고 넘어가게 된다면, 피해 사실에 대한 경각심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범죄 가해가 일어난 사실 등을 알고도 분리조치 등의 의무를 방관했던 관리자를 상위 기관에 다시 신고했다.
관리자 방임 신고 후의 변화와 달라진 시선
관리자에 대한 신고 이후, 소문이 난 듯하다. 다른 직원들이 교대할 때 나를 대하는 태도와 시선이 변화한 것이 느껴졌다. 주로 40~50대 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는데, 예전에는 편안하게 웃으며 대하던 그들의 표정과 말투가 사뭇 딱딱해졌다. 그중에는 부친의 장례식에 조의금을 보내준 사람도 있었고, 서로 잘 알지 못했지만 막연히 좋은 동료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있었다. 달라진 그들의 태도를 보며, 나의 심리적인 부분에도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변화된 행동에 대한 '비애감'이 든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나인데, 왜 나를 냉정하게 대할까 하는 슬프고 서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마주치는 것 자체에 주눅이 들기도했다.
한편으로는 그들을 이해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이 발생되면 모두가 예민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서 선이 명확히 그어져야 함을 인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록 그 일이 자신에게 직접 발생하지 않았더라도, 언제든 나에게도 발생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관리자의 징계로 인한 경각심 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1차적 경각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선을 넘을까 봐, 의도치 않게 선을 넘는 일이 생길까 봐 스스로 거리를 두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쩌면 '나에대한 배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배려를 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에 내가 서운해 한다는 건, 나를 배려하고 있는 그들의 복잡한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일일 수 있지 않을까‘싶었다. 그래서, 그러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나에게 선을 긋고 대할 수록, 조직 내 경각심이 잘 발현되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생각과 사실을 구분짓기,
공기를 읽지 않고 '마음을 내려놓을 것'.
사실, 모든 것은 나의 생각일 뿐이다.
모든것은 추론일 뿐이기에, 사실과는 구분되어야 한다.
누군가의 태도가 변할때마다,
그들의 의도를 끝없이 추측하고 추론하는 일은 스스로에게 진이 빠지는 일이 되는 것일 뿐,
나에게 이득이 될 만한 건 하나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배려가 아닌데? 라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그럴때마다 생각을 휙휙 바뀌고 그들의 얼굴을 보고 감정과 분위기를 읽어내는 일은 이 시점에서는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다.
사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도,
그래야 할 책임도 없다.
그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유일한 의무일 것이다.
내가 마주치는 직원들.
그들을 마주치며 어떤 감정이 올라온다면, 그것은 나에게 손해이지,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 일이 없다.
내가 적응해야 할 가장 큰 변화는 이것이다.
마주치는 사람이 좋건 싫건, 별로건 아니건, 그들의 공기를 읽지 않는 것.
내가 해야할 유일한 일은,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하든, 그것으로부터 선을 그어야 한다.
어떠한 영향도 받지 않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나 자신을 너무 힘들고 지치게 만들게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