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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해경

기면증

우리는 종종 거대한 서사에 의해 조그마한 본질을 잊곤 한다. 물론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그 본질을 감싸고 있는 서사를 벗겨내는 것은 필연적일 테지만, 우리는 그 서사를 본질로 착각하기 마련이다. 19세기 프로이센의 한 청년이 그의 일생을 바쳐가며 자본주의에 맞서 싸울 때도, 1871년 파리에서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인민들이 자유를 외칠 때도, 20세기 독일의 로자와 남미의 에르네스토가 죽음을 불사하고 총을 들었던 것도 인간과 생명, 사랑이라는 본질을 위함이었다.


발터 벤야민은 마르크스주의와 유물론을 접한 그의 중기와 후기에도, 이미지와 기억이라는 개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히 마르크스적이었지만 동시에 신화적이었고, 유물론자였지만 개인을 경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벤야민의 변증법적 이미지, 비자발적 기억과 인간학적 유물론의 사유는 [일방통행로]로 저술되었고, 그 저서에서 사용되었던 알레고리와 아포리즘의 방식은 미완의 대작 [파사젠베르크]로 이어진다.


이 시리즈도 그 방식을 충실히 따르려고 노력했다. 물론 벤야민의 방식보다는 더 직설적이고, 비유 대신 직접적인 표현 방식을 사용했지만 필자의 무지의 소산이기에 아쉬움이 남는다. 45개의 짧은 텍스트로 이루어진 이 글은 서정적인 글과 정치적인 선언문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불규칙한 타일처럼 배치되어 있지만, 그 불규칙함 속에는 결국 기억과 역사, 인간과 사랑이라는 본질이 담겨져 있다. 글을 해석하는 것은 독자 개인의 전적인 책임이다. 몇몇 글에서는 방향성과 그 목적이 뚜렷하게 드러나지만 매우 추상적이고 그 목적을 알 수 없을 듯한 글 역시 존재한다. 이 글을 통해, 무의식 속에 잠들어있던 독자들의 진실된 기억이 섬광처럼 도래하길 빈다.


기면증은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급작스럽게 잠에 드는 질환을 의미한다. 나는 이 글이, 독자들에게 하나의 기면증이 되길 바란다. 그 어떤 의지가 개입되는 순간 기억은 그 본질을 숨긴다. 그리고 이 현실 속에서 우리의 사유는 의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이 독자 개인이 아닐지라도, 외부 세계가 독자들에게 강제하는 의지는 분명히 존재하기에, 진실된 기억을 위해서 우리는 이 현실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 이미지들이, 독자들에게 하나의 기면증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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