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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해경

헤어지지 못하는 두 사람의 마지막

마지막을 눈 앞에 둔 연인이 있다. 남들처럼 사랑이 식은 것도, 한 사람이 바다 건너 떠나가는 것도 아니지만, 그들은 마지막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짝이 있으면 넘보지 않는 게 예의라 하지만, 그 예의를 자연은 배우지 못한 거 같다. 입에는 연인의 입술이 아닌 딱딱한 플라스틱 모형을 달고, 차려입은 복장 대신 촌스러운 하얀 옷을 입은 상대를 위해 그는 오늘도 연인의 침실로 향한다. 그 연인이 눈을 뜨지 못해도, 반갑다는 인사가 아닌 모니터의 숫자가 그를 반겨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마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일상을 위해 떠나려던 찰나 기적같이 연인이 그의 이름을 부른다. 손을 떨며 다시 연인의 얼굴을 보았을 때, 연인은 그에게 손을 내밀며 말한다. 떠나라고, 이제 나는 묻어달라고. 다시 들을 수 있을지 모르는 연인의 목소리에, 그리고 그 처절한 부탁에, 그는 답해야 했다.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웠어". 그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전등은 여느 태양보다 밝게 연인을 비추었고, 연인의 입가에는 웃음이 번지었다. 그리고, 모니터의 숫자는 0에서 변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의 현재이며, 연인은 우리의 과거이다.


어느 명문대 앞 광장

학생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대학교가 있다. 캠퍼스는 아름답고, 그 대학교의 일원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훈장을 달은 듯한 뿌듯함을 주는 대학교. 오늘도 그 광장에는 많은 대학생들의 싱그러움이 내음새를 풍기며 푸르른 자연과 호흡한다. 싱그럽다. 그 싱그러움은, 그 생명의 향수는, 어느 청년의 생명을 내준 대가 아닐까. 그 광장에서 스러진 이한열이라는 청년의.


땀으로 젖은 침대

악몽을 꾸거나 자는 도중 괴로움에 빠지면 침대를 땀으로 적시곤 한다. 특히 악몽을 꾸고 돌아왔을 때 나의 침대는 소나기 내린 듯 젖어있다. 꿈의 괴로움이 현실에 전승되어 나타날 정도니, 꿈의 나는 얼마나 큰 괴로움을 겪은 것일까. 그 찝찝함을 뒤로 하고, 나는 현실로 돌아온다. 화창한 날씨에 밖으로 나갈 채비를 마치고 거리를 걷는다. 날씨가 좋아서일까. 거리의 사람들은 웃으며 한껏 행복한 모습을 보인다. 꿈은 그저 환상일 뿐이니, 나 역시 그 악몽을 털고 웃음을 장착하고 거리를 걷는다. 그리고 나의 등에는 다시-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휴대용 CD플레이어

나는 종종 앨범에 들어있는 CD로 음악을 듣곤 한다. 미디어에서 제공하는 음악 매체를 구입해두었지만, CD를 통해 듣는 음악이 주는 색다른 느낌이 내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비용상으로는 엄청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미디어는 나의 사용 시간과 관계없이 일정한 비용이 필요하고, 앨범을 구매하는 비용 역시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아날로그 앨범을 선호한다. CD를 끼워넣을 때의 감각, 그 CD에 그려져있는 이미지와 자연의 조화, CD플레이어가 내는 약간의 잡음이 모두 내게는 나만의 기억이기 때문에.


붉게 물든 하늘 아래를 달리는 열차

노을 아래, 무채색의 바다에 비추는 태양의 수줍은 얼굴 아래를 열차는 묵묵히 달린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모습을 기억한다. 누군가는 사진으로, 누군가는 본인의 손이 그려낸 결과물로, 누군가는 그 모습을 표현해낸 기호로. 그 수줍은 태양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 반대편에는 푸르런 잔디밭이, 그 어느 표현으로도 담아낼 수 없는 생명의 기운을 내뿜으며 잔잔한 바람에 몸을 맡기며 우리에게 인사한다. 순간, 열차는 멈추었다. 사람들은 당황했고 기관사는 열차의 수리를 위해 승객들을 잠시 그 자연에 내맡겼다. 열차에 나와 발을 내딛는 순간, 우리는 무엇에 홀린 듯이 기관사에게 외치었다. 기차의 브레이크를 놓지 말라고. 그러자 태양은 우리에게 웃어 보였고, 잔디들은 춤을 추며 생명의 향기를 우리에게 풍기었다. 생명의 순간은, 수리가 아닌 정지로써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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