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by 민해경

개인과 집단은 종종 대립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특히 근대 부르주아 혁명 이후 봉건적 집단주의에 종말은 이 대립의 불을 지폈으며, 무엇이 우선하느냐에 관한 논쟁은 현대 사회의 핵심적인 갈등이기도 하다. 인류가 문명을 구축한 이후, 인류는 그들이 자연의 지배자가 된 방식-사회와 집단적 활동-을 지속적으로 고수해왔다. 가족이란 소규모 공동체부터 국가라는 사회가 개인에 우선해 왔으며, 개인은 부차적인 요소로 간주되곤 했다. 이러한 전통을 붕괴시킨 것은 부르주아 혁명의 도래였다. 자유주의는 집단이 아닌 개인을 진리의 주체로 두었으며, 각자에게 합리성을 부여함으로써 개인을 사회에 우선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사회와 집단이라는 권위적 동일화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킨 것은 자유주의가 이룬 프로메테우스적 성취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집단이란 이름으로 개인에게 행해지던 폭력은 자유주의라는 검사에 의해 비합리적 권위이며, 범죄자임이 들추어졌으며 개인이란 노예는 노예주의 구속과 함께 해방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해방된 개인에게 돌아온 것은 자유인이 아닌 프롤레테리아의 지위였으며, 그 부르주아는 바로 자유주의였다. 자유주의는 권위와 억압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켰지만, 동시에 구속하였다. 사회적gesellschaftlich 존재의 인간을 고립된solitär 존재로 왜곡시켰으며, 이기심과 반anti사회적 욕구를 미덕으로 둔갑시켰다.


개인은 자유를 욕망하지만, 사회 없이 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이전에 집단주의 사회는 전자를 구속했다면, 현재의 자유주의 사회는 후자를 무시하고 있다. 당연스럽게도, 이러한 모순은 반동을 낳고 있으며 그 반동의 형태는 서구에서 파시즘으로, 동양에서는 유교적 권위주의로 나타나고 있다. 자유주의가 내재한 모순이 방대함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그 성취마저 부정할 수는 없기에, 이러한 주장이 무지몽매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정답은 어느 형태-집단이냐, 개인이냐-가 아닌, 동일성Identität의 문제, 즉 뿌리깊은 억압의 문제에 존재한다. 가장 이상적인 사회는 무엇인가? 매우 추상적이지만, 개인의 상이한 욕구와 사유가-즉 비동일자들의 순수한 비동일성Nichtidentität이- 상충되지 않으며 충족되는 사회일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를 위해선 개인주의가 필요하며, 개인을 위해선 사회적 연대가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이 둘은, 대립Gegensatz의 관계가 아닌 상보의 관계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유주의가 약속한 개인의 무한한 자유는 허상에 그치는 부르주아적 구호에 불과하며, 그 구호는 자유로운 개인이 아닌 자유에 종속된 개인을 만드는 부르주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그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구시대적 구호 역시 "부정한 것은 영원히 부정한 것"이라는 명제 아래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인지해야 한다. 인간은 자유롭기로 저주받은 존재이다. 그러나 동시에, 무한한 자유의 허상은 개인을 구속하는 족쇄이다. '나'가 존재하지 않는 사랑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나'는 기계로써 의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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