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형이 아닌 삶에 대한 예찬
우리 손으로 뜯어고친 작은 시골집이 EBS <건축탐구 집> 방송에 나가고 나서 생각보다 많은 분들의 응원과 관심을 받았다. 애착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공간이기에 ‘참 잘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마치 내가 낳은 자식이 칭찬을 받는 것 마냥 기분이 붕 뜨기도 한다.
집을 고치면서 잊지 못할 순간을 수없이 맞이하였다. 처음으로 이 집을 만난 날, 집을 사서 등기권리증을 손에 쥔 날, 집 앞에서 남편과 사진을 찍었던 날, 집이 어느 정도 형체를 갖추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쁘다는 칭찬을 받은 날, 처음으로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집에서 잠을 잔 날, 새소리에 눈이 떠진 날. 아이러니한 것은 이토록 아름다운 날들을 뒤로하고 집의 침수 이력을 알았던 순간부터 이 문제를 고쳐보고자 때때로 좌절과 원망을 이겨내며 절박하게 뛰어다닌 시기가 기억에 아로깊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고쳐서 사는 삶의 재미를 깨달은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까. 문제가 있는 것을 애써 무시하고 지나치거나 버리지 않고, 고쳐서 쓰는 것, 기회를 주는 것,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믿어보는 것, 이 모든 과정이 얼마나 사는 일을 풍성하게 하는지 깨달아버렸다.
나와 남편은 ‘가꿔가는 삶’을 애정한다. ‘가꾸다'의 사전적 의미는 '좋은 상태로 만들려고 보살피고 꾸려 가다'인데, 우리는 이런 삶을 예찬한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갖춰진 완성형의 삶 보다 우리가 생각하는 삶의 이상을 품고 하루하루 가꿔나가는 삶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살아내는 게 당연하고 그렇지 못하면 좋아 보이게 ‘잘라내기’ 해야 하는 것이 트렌드가 된 것 같다. 사회초년생인 청년과 신혼부부가 넓은 신축 아파트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 명품을 n개쯤 소유하는 것, 투자에 성공하여 엄청난 수익을 거두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그런 완성형 삶이 받는 관심과 그에 대한 관심도 높은 것일 수도 있겠다만.
이 집의 처음 매입부터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과정을 공유하는 데엔 그 이유도 있다. 우리 시골집의 가장 예쁜 모습만을 보여주며 이런 세컨드하우스쯤 하나 가지고 유유자적 여유롭게 사는 삶을 사는 편을 연출할 수 있었겠지. 하지만 낡은 것을 고쳐 쓰는 삶, 가꿔가는 삶을 감사히 여기고 있으며 이 과정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
도시에서 지칠 대로 지쳐 밀려나 시골에 헐값의 집 한 채 마련하며 ‘이것도 집인데, 나도 자가마련했다!’며 쓴웃음을 짓고, 그 마저도 침수되는 집이라 사서 고생하면서도 살려보겠다고 아등바등했다. 공사비를 아껴보고자 두 손 두 발 걷고 나서고 쥐똥에 먼지 뒤집어쓰며 뚝딱뚝딱 숨 돌려보니 집은 비로소 살 만한 곳이 되어 있었고, 특이한 이력이 되어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삶이 언제부터 완성형이었던가? 언제부터 완성형 이어야 했던가? 가꿔나가는 삶, 미완성의 삶이 가져다주는 아름다움. 우린 그렇게 가꿔나가며 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