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오랜만에 후배 한 명에게 안부전화가 걸려온다.
"어~ 오랜만이야 땡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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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저는 결혼해서 남부끄럽지 않게 떵떵 거리며 사는 게 목표예요. 결혼하면 연봉이 두 배가 되잖아요? 매년 해외여행도 가고 차도 비엠따블유로 바꾸고 으리으리하게 살 거예요. 결혼하면 삶이 더 나아져야 하는 건데 왜 결혼 전보다 더 아끼며 살아야 해요?"
여자친구도 없는 애가 벌써 무슨 결혼 타령. 김칫국을 들이마시는 것으로 모자라 아예 김칫국으로 링거를 맞고 있네.
할 말이 많지만 할 말을 아낀다. 평소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 후배라 그냥 그러려니.
부끄럽고 아니고의 기준을 왜 남에게 갖다 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잘 사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보여주기 식의 소비를 한다는 마인드는 더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잘 살고 있다는 것을 꼭 남이 알아줘야만 하는 건가. 내 기준에서 '부끄러운 것'은 따로 있는데.
남에게는 얼마든지 부끄러워도 되지만
내 자식에게 부끄러운 부모는 되기 싫다.
얼마 전 '저축하는 습관'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글의 요지는 투자에 앞서 가장 먼저 들여야 하는 재테크 습관은 '저축'이라는 것이었다.
특히 신혼 초 저축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가듯 신혼 초 버릇 황혼까지 간다고 믿는 사람이라.
많은 결혼 선배들이 이야기해 주는 것 중에 하나가 결혼해서 돈을 모을 수 있는 황금 시기는 "아이 낳기 전"이라고 말한다. 그 이후는 그나마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라고.
아이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매달 돈을 안 까먹으면 다행일정도로 돈이 많이 들어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황금 시기인 신혼 초에 "남"에게 부끄럽고 싶지 않아서 보여주기식 소비를 한다고. 결혼하면 상황이 더 나아져야 하는데 왜 아끼며 살아야 하냐고?
훗날 아이가 생겼는데 신혼 초 잘못된 소비습관으로 모아놓은 돈도 없고 매달 카드값 막는데만 급급하고 있다면 과연 아이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 내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을까.
고 1 때였나.
배워보고 싶은 것이 생겼던 적이 있다.
학원을 다녀보고 싶었기에 그날 저녁 부모님에게 학원에 보내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나는 부모님의 표정을 봤다. 형편이 되지 않아 난처해하던 부모님의 표정을. 민망함+미안함+본인에게 화가 난다는 듯한 표정. 아마 그때 부모님은 나에게 부끄럽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날 친한 선배님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내 아이가 예체능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도 걱정이고 공부를 너무 잘해도 걱정이라고.
아이 뒷바라지도 하고 학원도 보내줘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안되기에 아이가 적당하게, 평범하게 성장해 주는 것을 바라는 부모가 많다고 한다.
아직 아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 입장에서 내 아이에게 해주지 못할 때의 그 미안함은 이루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아이에게 부끄러운 감정을 느끼기도 하겠지.
오랜만에 걸려온 후배의 안부 전화로 인해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이가 생겼는데, 그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을 금전적인 이유로 해줄 수 없을 때. 그리고 그 이유가 젊었을 때의 잘못된 소비습관으로 인한 것일 때. 얼마나 후회가 될지는 벌써부터 상상이 된다.
'남'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쌓아왔던 나의 습관으로 인해 훗날 '자식'에게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것이 사람 인생이라 욜로 하다 갑부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조금의 대비는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가 궁극적으로 열심히 재테크하는 이유를 잘 생각해 보면 당장의 부를 누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부터 차근차근 노후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기 위해.
자식 보기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