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의 차이
광복절 당일, 처가 식구들과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부동산에서 연락이 온다.
따르르릉.
"안녕하세요 북꿈씨, 잘 지내셨죠? 지금 신혼부부 손님이 있는데 집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14시쯤 시간 될 것 같습니다."
사실 약 한 달 전에 실거주하고 있는 집을 부동산에 내놨다. 이사 갈 집을 정해놓은 것은 아니다.
그냥 추후 월세로 거주하며 종잣돈을 쥐고 다른 더 좋은 자산을 취득해야겠다는 목적에서 매도를 결심한 것이다.
장을 보고 있는 와이프와 장인 장모님께 사정을 이야기하고 혼자 집으로 향한다. 다행히 청소할 것은 별로 없다. 늘 외출 전에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 놓고 외출을 하기 때문에.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청소기만 한 번 돌린다.
띵동.
곧이어 부동산 아주머니와 신혼부부가 도착한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스포츠머리의 예의 바른 청년과 그 뒤에 새댁이 수줍게 들어온다. 이 더운 폭염 속 둘 다 양말을 신고 있다.
결혼 전, 여름에 집을 보러 다닐 때 맨발로 남의 집에 들어갔다가 혼난 적이 있다. 그 이후로 나도 집을 보러 다닐 때는 늘 양말을 챙겨가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 신혼부부는 참 예의가 참 바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의 바른 청년이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본다. 사실 집을 내놓고 한 달 동안 일주일에 2~3팀은 집을 보고 갔지만 이렇게 적극적인 사람들은 처음이다.
느낌이 온다.
이 사람들, 매수하겠구나.
다음 날, 부동산에서 연락이 온다.
역시 내 느낌은 적중했다.
"사장님, 어제 그분들이 매수하고 싶어 하세요, 그런데 현재 가용할 수 있는 금액이.."
나름 합리적인 가격에 매물을 등록해놨는데 거기에서 천만 원을 더 깎아달라 한다. 그래도 올해 단지 내 최고가이기에 마음 같아선 응하고 싶지만 우리도 사정이 있으니 어쩔 수 없다.
"죄송합니다. 그 가격은 힘들 것 같아요. 저희도 지금 급한 게 아니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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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또다시 전화가 온다.
"그 신혼부부가 정말 마음에 들어 하는데 최대로 양보해 주실 수 있는 금액이 어느 정도세요..?"
그래도 몇 년 전 나를 보는 것과 같은 신혼부부기에 700 정도는 양보하겠다고 한다.
부동산 아주머니가 좋아하시며 전화를 끊는다.
매도가 될 것 같은 분위기에 우리 부부도 월셋집을 한 번 보기로 한다. 저렴한 구축 아파트부터 신축 아파트까지.
그런데 집을 보면 볼수록 와이프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남편인 나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 근심이 가득하고 어딘가 우울해 보이는 그런 표정.
집에 돌아오는 길에 와이프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여보, 무슨 걱정거리 있어? 표정이 안 좋네."
약 30번의 대화 시도 끝에 와이프가 드디어 입을 연다.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은 다 옛말이다. 요즘엔 30번은 찍어야 한다.
"근데 왜 우리가 우리 집 두고 더 안 좋은 월셋집 살아야 해? 욕심 버리고 그냥 차근차근 자산을 불리면 되는 것 아니야?"
와이프에게 설명하려면 복잡한 비과세, 기존주택 처분 조건, 대출 후 추가 주택 금지 조항, 대전 부동산 시황 등등이 있지만 모두 생략하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만 한다.
"실거주와 투자를 분리해야 빠르게 자산을 증식할 수 있어. 우리가 이 집에 깔고 있는 목돈을 잘 굴려야 나중에 더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다구."
여기서부터는 와이프가 블로그에 담지 못할 비방용 이야기를 많이 했다. 공영방송은 물론 아프리카 티비에서도 영구정지 당할 그런 이야기들.
밤이 찾아오고 우리는 여전히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부동산을 자산 증식의 도구로 보는 남편과 주거 공간으로 보는 와이프. 가치관이 조금 다를 뿐 누구 하나가 틀린 것은 아니다.
아직 아이가 없고 젊을 때 적극적으로 자산 증식을 하고 싶은 내 입장도 이해가 가고, 안정적인 주거 공간에서 평온한 삶을 지향하는 와이프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실거주 갈아타기를 하면 간단한 문제지만 현재 명의와 대출, 세금 문제로 갈아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긴 이야기 끝에 서로 원만한 타협점을 찾는다.
많은 유튜버들이 부동산은 실거주와 투자를 분리하라고 이야기한다. 공감하는 부분이다.
빠른 자산 증식을 위해서는 내 돈을 깔고 앉아 있으면 안 된다. 조금 더 우량한 자산을 취득하여 들고 있어야 하니까.
그러나 결혼을 한 입장이라면 다르다.
특히 부부의 가치관이 다르다면 더더욱.
부동산은 기본적으로 주거의 공간이다. 그 공간에서 삶을 살아간다. 아늑한 우리 집에서 평온한 삶을 지향하는 사람에게 남의 집 살이는 거주하는 내내 불안함을 안겨다 줄 것이다.
궁극적으로 내가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북꿈이네는 와이프와의 좀 더 윤택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 부자가 되고 싶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와이프를 행복하지 않게 만들 필요는 없다. 먼 미래를 대비하자는 핑계로 매일 부부 싸움을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결국 우리 부부는 실거주 매도를 보류하고 다른 방법으로 자산을 증식해나가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그때, 부동산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온다.
"사장님~ 매수인이 700 양보해 주신 것 너무 감사하다고 해요.. 그런데 조금 더 깎아 달라고 하네요.. 200만 원만 더 깎아주실 수는 없으세요..?"
부동산 아주머니와 매수인에게는 죄송한 마음이 들지만 매도를 보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다. 매도 보류 의사를 밝히니 그냥 계약을 진행하자고 한다.
집을 사고팔 때는 타이밍도 참 중요한듯하다. 가격을 흥정하는 사이 서로 다른 사정이 생길 수도 있는 거니까.
어쨌든, 주말 내내 오랜만에 와이프와 부동산을 돌아다니며 진지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덕분에 우리의 계획은 조금 더 명확해졌다.
계획대로 잘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