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
고된 하루를 끝내고 잠들기 전 와이프와 침대에서 나누는 대화는 늘 포근하다. 생산적이진 않지만 가볍게 킄킄 거리기 좋은 대화 주제들.
꼭 이 시간만 되면 소곤소곤 속삭이듯 대화를 나누게 된다. 누가 듣는 것도 아니고, 밤늦게 떠든다고 엄마한테 혼나는 것도 아닌데.
한 번은 별것도 아닌 것에 웃음보가 터져 새벽 한 시까지 잠에 들지 못한 적도 있다. 원래 웃음보라는 게 한 번 터지면 서로의 숨소리만 들어도 숨넘어가게 되는 아주 위험한 것이지 않나.
무튼, 오늘은 와이프가 나에게 이런 것을 묻는다.
"북꿈아, 우리가 오래 만나긴 했지만 내가 모르는 북꿈이의 모습이 있을까?"
배우자가 모르는 나의 모습.
생각해 보니 있는 것 같다.
매사에 담담하지만 가끔은 나도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는 거?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땐 혼자 쌍욕을 하기도 한다는 거?
그리고 매번 비장하게 축구하러 나갔지만 실상은 골키퍼였던 거..
와이프의 질문을 가볍게 받아쳐본다.
"있지 않을까? 부부라고 해서 모든 것을 공유하진 않잖아. 숨기고 싶은 모습도 분명 있을거구. 나도 내가 모르는 여보의 모습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와이프가 나즈막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고해성사하듯 나긋하고 죄지은 목소리로.
"사실 여보가 모르는 모습이 하나 있어.. 나 사실 여보 집에 없을 때 코딱지 겁나 파.."
충격적이다.
내가 그 모습을 모를 줄 알았다는 것이.
소파 밑에 잔해라도 남기지 말던가..
와이프가 말을 이어간다.
"북꿈이는 나 출근하고 가끔 집에 혼자 있으면 하루 종일 뭐 하면서 시간 보내?"
이내 의미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와이프가 느꼈는지 뱉은 말을 다시 주워 담는다.
"아아 뭐 할지 딱 예측이 된다. 나 출근하면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 정리하고, 청소기 돌리고, 동그란 안경 쓰고 책상에 앉아서 책이나 읽고 블로그 쓰겠지? 안 봐도 뻔해.."
정확하긴 하다. 와이프의 카톡에 답장이 느릴 때는 늘 책을 읽고 있거나 블로그를 쓰고 있었다.
"어 맞아. 특별한 일 없으면 그렇게 시간 보내는 것 같아. 나를 정확히 아네? 가만 보자.. 여보는 혼자 있을 때 뭐 할지 나도 맞춰볼게."
혼자 있는 와이프를 상상해 본다.
"다리 꼬고 발을 까딱이며 핸드폰만 보고 있을 것 같은데. 인스타 라이브 좀 보다가, 유튜브 브이로그 보면서 괜찮은 거 있으면 제품 정보 알려달라고 댓글 달고 있을 것 같고. 본인 mbti에 의구심을 품으며 몇 번이고 심리테스트 해보는 모습이 상상이 가.."
와이프가 정곡을 찔렸는지 근엄하게 이야기한다.
"불 꺼라. 자자."
생각해 보니 배우자의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예측 가능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같다. 가끔 연락이 잘되지 않더라도 불안하지 않은 사람.
연애할 때야 예측 불가 통통 튀는 매력의 이성에게 더 재미를 느꼈겠지만 결혼 후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상대방에게 불안함을 주지 않고 예측이 가능한 사람이 좋은 배우자다. 뭘 해도 안심이 되는 사람, 아니 뭘 하는지 몰라도 안심이 되는 사람.
와이프는 지인들과의 술자리에 가면 연락이 잘되지 않는 편이다. "어디에서 뭐 먹어요" 정도의 연락만 주고받는다.
처음 연애할 때는 이런 점에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면 그 자리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와이프의 성향인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는 술자리에서 연락이 잘되지 않더라도 걱정하지 않는다. 와이프의 모습이 딱 그려지니까.
깔깔거리며 분위기에 취해 있다가 기분 좋게 인생네컷을 찍으러 가자고 주도할 거고, 그 사진을 들고 집에 와서 또 "이놈의 사진은 매번 찍을 때마다 망한다"며 나를 쥐 잡듯 잡을 것이다.
그리고 진짜 자존심 상해서 인정하기 싫은데..
나 역시 오늘도 와이프가 예측한 대로 살아간다.
출근 전에 집에서 얌전히 책이나 읽고 블로그 쓰고.
https://brunch.co.kr/brunchbook/lovebookgg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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