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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심이 Nov 01. 2023

시간빈곤

시간의 함정





시간의 함정





어느 날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잘 가고 어느 날은 시간이 너무 느리게만 간다.

매일 바쁘게 살다 보니 갑자기 여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면 막상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여유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시간인데 고작 TV를 보거나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다가 아무것도 한 것 없이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다. 그러면 또 죄책감이 든다. 이 아까운 시간을 허비했다는 마음에 괜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분명히 여유시간이었는데 말이다.

한가로움은 게으름으로 비치고, 생산적이지 못한 시간은 나태함으로 비친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은 버려지는 시간이 되고 그런 삶이 오랜 시간 지속되면 잉여인간처럼 느껴진다.




유난히 시간에 관대하지 못한 우리나라.

빨리빨리 민족답게 우리는 하루를 버려지는 시간 없이 아주 꽉 채워서 많은 일을 처리하면 알차게 보냈다고 스스로 만족감을 느낀다. 특히나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비극적인 경험이 많다. 끊임없는 전쟁과 기근, 수많은 수탈과 치욕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늘 위기를 극복하고 오늘날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낸 그야말로 한도 많고 아픔도 많은 민족이다. 이런 고난과 위기를 거쳐온 조상들의 DNA와 학습된 집단적 무의식으로 지금 후손 세대의 한국인들은 마음의 결핍이 큰 편이다.




한국의 경제가 고성장, 급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한 배경에는 늘 뺏기고 무시당하고 빈곤했던 우리 민족의 아픔의 역사가 존재한다. 세습된 무의식적 결핍은 남보다 앞서가야 하고 뒤쳐지면 안 되며, 빼앗기지 않으려는 마음은 물질적 풍요를 경험하면서 더욱 강한 물질적 소유욕으로 후손세대에서 터져 나오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근면성실함, 강도 높은 노동시간, 과도한 교육열, 사짜 직업(전문직) 선호 현상은 단순히 시대가 변해서 생겨난 문화적 특징이 아니다.

정보지식사회로 접어들면서 한국의 경제도 선진국 반열에 올라 안정기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겉으로 볼 때는 단시간에 이루어 놓은 것은 많지만, 급격한 경제 성장 과정에서 한국사람들은 시간적 여유를 잃어버렸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보면 문명을 타지 않은 인도의 작은 소수민족 지역인 라타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고갯길의 땅’이란 뜻의 그 이름처럼 라다크는 지리적 폐쇄성으로 인해 오랫동안 문명의 손길을 타지 않았다. 작은 티베트라 불리며 티베트의 고유문화와 풍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으며 티베트 불교를 믿는 종교적 색채가 아주 강한 지역이다. 이곳은 발전은 더디지만 삶의 만족도와 행복의 수준은 어느 민족보다 높다. 산업화와 정보지식사회라는 문명은 인간에게 편리함을 가져다줄 수는 있지만 절대 라다크 사람들의 사회보다 우리가 문화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문명이 가져다주는 온갖 편의를 누리고 살지만 삶에 대한 만족도와 행복감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아직도 한국은 2003년부터 지금까지 OECD 회원국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라다크는 우리가 볼 때 매우 불편하고 느리고 속 터지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마음부자, 시간부자 행복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필요이상으로 재물을 축적해두지 않으며, 자원을 고갈시키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자급자족하는 검약적 삶을 산다. 한국인들처럼 결핍의 욕구로 가득 차 있지 않으며, 무언가 잃어버리거나 빼앗길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도 없다.




이룬 것은 많으나 삶의 여유 없이 늘 시간에 쫓겨사는 사람과, 발전이 없는 듯 하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사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누가 더 풍요롭고 풍족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마 후자의 사람이 더 풍요롭고 만족감이 높을 것이다. 만족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으로 모든 기준은 외부가 아닌 나의 마음의 판단으로 정해진다.




시간부족을 겪게 되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내 삶의 주인이 나인건지 내 시간을 돈으로 바꾸면서 노예로 살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워지며,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의 마음이 커지면 삶에 대한 상실감이 든다. 그리고 시간이 많아져도 그 시간을 주체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며, 과도한 여유로움에 죄책감을 느낀다. 주어진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는 방법을 모르니 또다시 타인의 명령이나 통제가 이루어지는 환경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과연 이런 객체로 사는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돈 부자는 시간부자를 이길 수 없고, 시간부자는 마음부자를 이길 수 없다.














왜 항상 시간은 부족하게 느껴질까?



시간은 돈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시간은 신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부여한 자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을 목적으로 시간을 판다. 즉 내 시간을 팔아서 돈으로 바꾼다.

그런데 자산이라는 개념은 돈도 자산이고 시간도 자산임을 의미한다. 이것은 시간=돈, 돈=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루 24시간은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한정적 자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보다 눈에 보이는 돈을 추구하기에 나에게 주어진 시간자원을 최대한 끌어다 돈으로 바꾸고 정작 시간의 곳간은 텅 비어있다.




그런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들은 시간빈곤자로 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시간을 주체적으로 쓰기 때문에 좋아하는 일을 하는데 시간을 씀으로써 시간을 돈으로 교환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행위를 하는데 시간을 씀으로써 돈은 결과물이나 사은품처럼 따라오는 부수물이다. 예를 들면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하는 것은 오로지 자신의 즐거움으로 자기 시간을 투자하는 행위로 당장에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돈으로 교환되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시간과 노력이 축적된 그림이 사람들에게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이자 붙은 명예와 돈이 따라온다. 물론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금수저가 아니라면 돈으로 바꾼 시간이 적으니 자신의 행위자산이 불어나는 동안 물질적인 빈곤의 시기를 거친다. 무명의 예술가를 떠올리면 가난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이유다. 물론 이들 중에서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 행위하는 시간이 빨리 돈이 되어 돌아오길 노심초사하거나 진정한 만족감으로 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결국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쳐 다시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시간빈곤은 돈을 목적으로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일에 내 시간을 파는 사람들에게 두드러진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우리는 시간=돈이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바쁘게 사는 것이 당연하고 보편적인 것처럼 인식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바쁘다는 것은 근면함, 성실함을 의미하고 그렇지 않은 삶은 게으르다고 취급하는 보편적인 인식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과연 인간은 자신의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돈과 바꾸기 위해 태어난 존재일까? 왜 어려서부터 우리는 성공의 기준을 물질적인 축적에 맞추도록 강요받으며 자라고 있을까? 이게 정말 내가 추구하는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맞을까? 그렇게 열심히 앞만 보고 시간을 돈으로 바꿔서 내가 원하는 만큼의 물질을 얻는다면 과연 만족스럽고 행복할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돈이 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돈이 있어야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고, 돈이 있어야 내 시간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돈으로 행복도 살 수 있다는 오류에 빠져있다. 그러니 내 인생의 시간자원을 어떻게 나를 위해 쓸까 보다 어떻게 돈을 위해 쓸까를 우선시하게 된다. 직장생활을 몇 년 해도 생각대로 돈은 모이지 않는다. 일이 힘들어서 좀 쉬고 싶은데 모아둔 돈이 없어서 그만두지도 못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퇴근 후, 주말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내 시간을 판다.




그런데도 생각처럼 돈이 모이지 않는다. 하고 싶은걸 다 참아가면서 시간을 돈을 바꿨지만, 그 돈이 나를 위해 쓰이기도 전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적인 변수들을 만나 자꾸 내 손을 떠나간다.

본인 스스로가 돈개념이 없어 소비를 통제하지 못하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가족이 아프거나, 집구석이 망하거나, 부모님의 경제력이 사라지거나, 투자에 실패하거나, 식솔이 늘어나거나, 미래의 시간까지 팔아서 대출을 받아 집도 사고 차도사고 명품도사고 워라밸도 즐겨야 한다. 그러면서 점점 자신도 모르게 미래 시간까지 저당 잡힌 시간거지가 됩니다. 아무리 돈을 벌어도 벌면 벌수록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없어진다.

이는 결국 욕구의 불만으로 이어진다. 인간은 욕구에 불만이 생기면 스스로 결핍을 채우려는 행위를 한다. 시간의 여유를 갖기 위해 일을 서두르고, 급하게 처리하려고 한다.




그런데 우주의 에너지는 인간의 생각에 반응하지 않고 감정에 반응하여 작용한다. 즉 내가 서두르고 조급한 마음을 느끼며, 시간이 부족하다고 여길수록 불만족스러운 상태라는 마음의 에너지를 방사하게 된다. 그러면 오히려 내가 방사한 에너지와 유사한 상황이 현실에서 일어난다.

결국 서두르다 실수를 해서 다시 반복하느라 시간을 빼앗기고, 갑자기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겨 오히려 시간을 더 지체된다. 내가 쉬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도 돈이 없을 것에 대한 불안한 마음, 돈이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면 현실은 계속해서 나에게 돈 때문에 불안을 느껴야 하는 일들을 내 앞에 창조해 냄으로써 쉬지 못하는 하는 상황, 물질의 결핍을 느끼게 하는 사건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 돈이 먼저고 돈이 내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는 생각이 오류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열심히 돈을 위해 내 귀중한 시간을 갖다 파는 것은 결국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시간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내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닌 삶. 내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는 삶은 결국 자신에게 의미 없는 삶이 된다.

열심히 살아왔지만 정작 자신에게 쓸 시간자산은 텅 비어있기 때문에 나중에는 부족한 시간을 벌기 위해 내가 모아둔 돈을 다시 시간으로 바꿔야 한다.




가장 보편적인 모습이 돈 번다고 오만 고생 다하며 몸을 혹사시킨 결과 병을 얻어 병원에 들어앉거나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나는 모습이다. 그럼 그동안 내가 모아둔 돈을 병원에 지불해서 팔아버린 내 시간(수명)을 다시 사야 한다.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참고 스트레스받아가며 돈으로 바꾼 결과가 고작 이런 거라니 멈추고 나니 지나온 삶이 허무해지기까지 한다.  돈 벌다 건강 잃어본 사람들은 이 마음을 안다.




물론 돈 버는 것 그 행위 자체가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돈이 있으면 삶의 질이 높아지고,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는 부분들이 분명히 존재하며 돈으로 시간도 살 수 있기에 돈이 있는 삶이 더 풍요로운 것이 사실이다.

돈은 당연히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하며 우리가 가진 시간 자원을 돈과 바꾸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다만 돈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도와주는 수단일 뿐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거나 내 삶의 경험보다 우선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돈에 매몰되어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포기하거나 미루며 사는 사람, 지금은 여건이 안된다며 자신을 돈벌이에 합리화시키는 사람, 신세한탄만 하며 아무런 변화도 꾀하지 않는 사람, 몸이 아파도 먹고사는 게 우선이라며 자신을 학대하는 사람, 늘 바쁘다,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사람 이중 어느 하나라도 해당이 된다면 정말 자신이 절대적 시간의 양이 부족한 건지 마음이 느끼는 상대적 시간의 여유가 없는 건지 돌아보길 바란다.




시간이 돈이라는 말은 거꾸로 돈이 시간이다라는 말이다. 도대체 무슨 말인가?

아직도 이해가 어렵다면 [인타임]이라는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영화 속에서는 정말 시간이 돈의 역할을 한다. 물건을 구매하는 것도, 용역의 대가를 받는 것도 모두 돈이 아닌 시간으로 거래된다. 그 시간은 곧 나의 생명이며 가진 시간이 모두 소진되면 죽는다.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는 노화가 없다. 성인이 되면 몸은 더 이상 늙지 않는다. 천년을 살아도 만년을 살아도 20대의 모습으로 살 수 있다. 그러나 그곳에도 역시 시간의 부익부 빈익빈은 존재한다. 부자는 몇천 년의 시간을 가지고 호화롭게 살아가지만, 시간빈곤자들은 불가촉천민처럼 분리된 하위 클래스의 세계에서 하루살이처럼 자신의 노동을 시간으로 바꾸며 살아간다. 길거리에는 시간이 모두 소진되어 죽은 사람들이 흔하게 널려있어 매일 타인의 죽음을 눈앞에서 마주한다. 아주 직관적으로 시간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볼만한 영화다.














절대적 시간 VS 상대적 시간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일까?

물리적으로 보면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흐르고 있으며 연속성을 가지며 존재하며 절대적인 시간의 양으로 도 존재한다. 그러나 시간은 계속 흐르는 것으로 실제 우리는 그 시간이라는 것을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일 뿐 과거와 미래를 넘나 들 수 없는 우리는 4차원이라는 세계를 경험할 수 없다. 그저 우리는 지금, 현재, 여기 공간 속 3차원 안에 존재할 뿐이다.  




결국 절대적 시간은 반복되는 낮과 밤, 계절의 변화, 태양과 달, 별자리의 변화를 관찰함으로써 양적으로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만들어낸 관념일 뿐이다.

만약 우리에게 시간을 측정할 수 있는 시계와 같은 기계적 장치가 없다면 매시 매분 매초 단위로 시간을 관측하는 행위자체가 사라진다. 시간을 알 수 없던 시대의 사람들처럼 대부분 상대적으로 자기 시간을 체험할 것이다. 어르신들이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하실 때 시간을 모르니 아침에 닭울 때, 소밥줄 무렵, 해 넘어갈 무렵, 저녁밥 먹을 시간등으로 기억하는 것처럼 말이다.




상대적 시간은 똑같은 1시간도 어떤 사람에게는 충분히 여유롭고 만족스러운 시간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에게는 너무 짧아서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저마다 체감하는 기준이 다르니 같은 시간의 의미도 개인마다 각각 다르게 작용한다.


A는 퇴근 후 1~2시간 정도 운동을 한다.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해진 몸과 거울 속에 몸매를 보면서 만족을 느낀다.

B는 퇴근 후 저녁시간을 책을 읽거나 하거나 자기 계발을 하는 데 사용한다. 매일 발전하는 자신을 보며 뿌듯하다.

C는 퇴근 후 잠들기 전까지 모바일 게임을 하거나 TV를 본다. 매일 같이 늘어져 있는 자신을 보면 게으르다는 생각과 운동이라도 좀 해야지 라는 생각이 들지만 딱히 뭘 하긴 귀찮다.

D는 퇴근 후 부업으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친구들의 연봉보다 자신의 연봉이 낮은 편이라 알바라도 해서 그 갭을 메꾸고 싶다. 가끔은 알바까지 해야 하는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진다.



이 중에서 A와 B는 주어진 시간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만족감을 느끼고 있고, C와 D는 만족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차이는 그뿐이다.

무엇으로 시간을 쓰든 간에 시간을 여유 있게 쓴다는 건 시간을 아까워하거나, 후회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는 늘 절대적 시간이라는 함정에 빠져서 자신에게 고유한 상대적 시간을 깨닫거나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시간빈곤의 개념은 결국 상대적 시간을 이야기한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후회, 아쉬움, 어떠한 욕구적 결핍과 삶에 불만족이 없다면 그 사람은 하루에 12시간을 돈과 맞바꾸고 살아도 시간빈곤자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거다.



상대적 시간의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요즘 많은 성공이야기나 자기 계발서를 보면 미라클 모닝을 강조한다. 새벽시간은 만물이 깨어나는 시간으로 그 시간을 활용하면 독서, 명상, 자기 계발에 몰입하기 좋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를 계획적으로 시작하니 스스로 성취감을 느끼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시작하는 아침이 매일 반복되면 더욱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아먹는다며 기적의 아침을 외치며 유행처럼 미라클 모닝을 실천한다.



과연 성공한 모든 사람들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미라클 한 아침의 기적을 만들었을까?

이 세상에 나는 오직 하나뿐이다. 모든 사람들은 다 유일함을 가진 개인이며 우리가 가진 삶의 기질과 행동특성, 성격, 외모는 모두 다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성공은 그 사람의 방식과 운이었을 뿐 절대 나의 성공방식이 될 수 없고 성공법칙, 성공방정식이라고 말하는 모든 개념들은 성공의 길을 걸어본 사람들의 삶의 방식 중 우리가 배울만한 것들을 열거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정말 수학, 과학처럼 어떤 공식대로 했을 때 모두 같은 답이 나오고, 그 방식을 그대로 따라한 모든 사람들이 성공한다면 저런 자기 계발서들이 한참 인기를 끌고 시간이 지나면 책장 구석에 처박힌 퇴물이 되지 않았을 테니까.




미라클 모닝을 잘 활용하려면 무조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 전에 독서하고 명상하고 확언하고 자기계발하고 하는 것으로 잘 못 받아들이지 말고, 상대적 시간의 개념으로 접근해서 자신의 생활 패던에 맞는 시간을 미라클 루틴으로 정하는 것이 맞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이 미라클 모닝을 하겠다고 새벽 4시 30분에 기상을 하면 오히려 컨디션이 망가지거나 오후시간에 능률이 떨어지게 되기도 한다.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늦게까지 활동을 하기 때문에 퇴근 후 저녁 8시 이후 시간을 활용해 미라클 나잇을 하던지,  남들이 다 잠든 시간에 쌩쌩해지는 사람은 미라클 미드나잇을 하는 것도 방법이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이 꼭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다. 부산에서 서울로 향하는 사람이 가는 길이 개성에서 서울로 향하는 사람과 다르듯 자신의 환경과 조건에 맞추는 것이 우선이다.




사람은 저마다 고유한 성격적 행동적 기질과 특질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잘 맞는 방법을 찾고 자기 방식을 만드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타인의 경험은 참고서는 될 수 있지만 내 스토리가 될 수는 없다.

늦게 일어나도 먹을 수 있는 벌레는 무한하고 늦게 자는 새는 남들 잘 때 많이 잡아먹을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게 되면 결국 상대적 시간은 마음의 여유에서 나온다. 1년의 절대적 시간을 주어도 자신의 마음에 얼마 큼의 여유가 있는지에 따라서 누군가에게는 10년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여유가 없는 누군가에게는 한 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절대적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딱히 할 일이 없거나 지나가버리는 시간을 아까워하거나 낭비한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마음의 여유가 없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다고 느끼지 않는다.

즉 시간빈곤은 충분과 불충분을 느끼게 하는 자신의 여유와 마음상태에 따라 다른 것이지 절대적 시간은 큰 의미가 없다. 마음의 여유가 많은 사람은 시간의 여유가 많고,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은 시간이 아무리 많아도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사는 것이다.















시간부자



결국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을 할 때 느끼는 감정이며, 시간을 뺏긴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할 때 느끼는 감정이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일 즐거워하는 일을 하는데 시간을 쓰는 사람들은 시간적 여유가 있기 때문에 자기 시간을 갖는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일상의 모든 경험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남들이 볼 때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돈이 없는 상태에 대한 걱정도 내 마음의 여유가 있으면 굳이 부정적으로 의식하지 않는다. 얼마를 버는 것, 무엇을 성취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는 그 순간순간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남이 정한 스케줄과 통제에 맞추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어 일정을 계획하고 원하는 일을 하는 데 시간을 쓰기 때문에 일하고 싶으면 일하고, 쉬고 싶으면 쉬고, 놀고 싶을 때 놀고, 가끔 빈둥거려도 시간을 낭비했다는 최책감을 느끼지 않고 그 경험조차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관념적, 절대적 시간의 함정에서 벗어나 시간적 자유를 누리면서 살게 된다.

이는 선순환으로 작용해서 내 풍요로운 감정의 상태에 따른 에너지를 방사한다. 즐거운 감정 행복한 감정 불평과 불만이 없는 상태의 에너지는 내가 그런 상황을 체험하도록 그 주파수에 맞는 입자를 불러 모아 실제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움을 경험하는 사건으로 드러난다.




그러니 결국 중요한 것은 모두 내 마음에 있으며 나는 늘 나의 마음 상태에 주의를 기울이며 부정적인 마음이 들었음을 알아차리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를 갖기 위해서는 욕심의 크기를 줄여야 한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돈은 바닷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갈증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 명성도 이와 마찬가지다. "라고 말했다. 욕심이란 절대 채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시간을 아무리 팔아서 돈을 먼저 채우고 난 후 남는 시간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는 생각은 현실화되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나의 시간을 돈으로 환산할 가치가 떨어지면 그때는 절대적 시간의 여유를 얻을 수는 있지만 지키지 못한 건강과,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마음빈곤이 계속 당신을 시간거지로 만든다.

주변에 수많은 노인들을 봐라. 멀리 찾을 것도 없이 우리 부모님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나이가 들어 절대적 시간이 많아질 뿐 여전히 시간빈곤, 마음빈곤에 허덕이고 있다. 내가 젊어서 이걸 못한 게 살면서 가장 후회가 된다고 말한다. 그러니 주어진 시간을 돈으로 바꾸는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것에도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돈이 많은 돈부자가 반드시 시간부자는 아니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는 물질적 여유를 만들어 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시간을 충분히 쓰면 남는 시간은 다 여유시간이 된다. 다시 남는 여유시간은 자신을 위해 쓰거나 타인을 위해서 쓰거나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돈으로 바꾸거나 결국 자신의 행복감을 높이는 시간으로 쓰게 된다.

그러니 마음부자가 되려면 욕심의 그릇을 작게 줄여 작은 것에도 만족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국 현대인들이 시간빈곤에 허덕이는 이유는 편하게 행복하게 살고 싶은 나의 욕구를 오로지 돈과 물질이

해결해 줄 거라는 잘못된 믿음에서 출발한다. 그 과정에서 주어진 시간을 돈으로만 바꾸려 하기 때문에 누구보다 자기 자신에게 인색하게 군다. 나중의 행복을 위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다 뒤로 미루고, 스스로 행복하게 살지 못하게 억제하고, 억누르고, 강요하고, 통제한다. 아주 자발적으로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든 우리는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아니다. 즉 시간을 넘나드는 4차원을 체험할 수 없다. 간혹 영성이 발달해서 유체이탈을 통해 아스트랄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은 있지만 그것 역시 육체는 3차원에 머물기 때문에 완전한 4차원으로의 이동이라고 볼 수 없다. 때문에 인간은 오로지 3차원 안에서 존재하며 우리가 인식하는 시간은 지금, 여기, 이 순간뿐이다. 그러니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미래에 행복하기 위해서 현재를 불행하게 만들고, 과거에 행복을 재현하기 위해서 현재를 미련하게 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현재를 살지 않는 사람들은 영원히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아마 죽을 때까지 오지 않는 행복을 기다리면서 하기 싫은 일만 하다가 인생을 마무리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장 우리가 내일 죽는다면 가장 행복한 사람은 주어진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절대적 시간의 함정에서 벗어나 시간의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행복의 파랑새는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우리 곁에 있다. 내가 파랑새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찾아와 주길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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