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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심이 Sep 05. 2023

돈 그릇.

운명은 정해진 것일까? 내가 선택하는 것일까?

 




재물운, 금전운을 묻는 심리



 사주상담을 하다 보면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묻는 것이 재물운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에 뭔가 특별한 드라마가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그리고 저마다 크건 작건 자기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로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그런데 사람들이 기대하는 건 잔잔한 휴먼다큐가 아니라, 인생한방, 인생역전, 인생대반전 판타지를 기대한다. 안타깝게도 성공은 100% 운의 작용으로 한방에 만들어지는 그런 판타지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지금 당신이 갑자기 큰돈을 벌 수 있는 것은 로또나, 투자성공, 일확천금, 유산의 상속이 아니라면 오로지 자신의 직업활동을 통한 방법뿐이다. 살면서 자신이 일확천금의 기회를 만날 수 있을 가능성이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는가? 거의 없다. 특히 삶의 목표자체가 부자나 돈인 사람은 더더욱 큰돈을 만날 수 없다.

만약 만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돈그릇이 그것을 감당하지 못해 탕진하거나, 돈 벌고 건강을 잃거나, 일장춘몽처럼 허무하게 돈이 사라진다. 돈이라는 건 강력한 살기를 가진 물질이다. 말도 안 된다고? 그럼 갑자기 떠오른 스타들이 구설에 휘말려 활동을 못하고 사라지거나, 갑자기 인기를 얻은 후 불치병에 걸리거나,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이 다시 평범 이하의 삶으로 전락하거나, 투자로 큰돈을 번 사람들이 투자로 더 큰돈을 날려 개털이 되는 건 무슨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까?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세상에 우연은 없다.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결국 당신이 지금 가고 있는 운명 노선의 행선지 중 하나일 뿐이다. 지금의 삶이 너무 불만 족스러워서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변화해야 한다. 즉 갈아타는 곳, 때가 왔을 때 노선을 바꿔 타야 인생이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늘 같은 열차 같은 자리에 앉아서 순환하면서 주변 풍경이 달라지길 원한 다는 건 당신도 판타지를 꿈꾸고 있다는 것이다. 





그놈에 두려움, 그놈에 안정감


 사람들은 불편한 것과 변화를 두려워하며, 늘 편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이건 나이가 들수록 더 심하다. 편하지 않다면 경험에 의존할 수 없는 것들은 대부분 선택지에서 배제시킨다. 가장 흔한 예를 들면 늘 먹던 음식을 주문하거나, 늘 가던 길로만 가거나, 익숙한 것들을 선호한다. 뭔가 새로운 선택을 해야 할 때는 나보다 앞서 경험해 본 사람들의 후기를 살피거나, 타인의 경험담에 의존한다. 

이런 일상에 사소한 소비조차 타인의 경험, 자신의 경험에 의존하는 세상인데 더 큰 결정이 필요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는 어떨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점점 자기 자신의 결정권은 줄어들고 타인의 결정을 따르며 마치 자신의 결정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든 선택을 자신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앞선 누군가의 판단이고 선택이었을 뿐 나는 결국 그 사람의 판단과 선택을 따른 것뿐이다. 그리고는 결과가 마음에 들면 "역시 내 안목이 좋았군" , "이번 쇼핑은 성공적이었어. 특템했네."라고 말하거나 마음에 안 들면 "아! 낚였네." "나랑 안 어울리네", "나랑은 안 맞네", "별론데?", "후회되네"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 어디에 자신의 선택이 있었을까? 맨 처음 내가 지금 이게 필요해라고 자신의 의도를 가진 그 그 순 간 말고는 모든 과정이 다 타인의 선택을 따른 것뿐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당장 오늘 하루만 돌아봐도 다들 그렇다.




 타인의 결정을 무의식적으로 따르고 자기 주체성이 사라졌다는 사실은 과연 이런 사소한 소비의 측면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직업, 진로, 꿈에 대한 부분에서는 더욱더 심각하다.

당신이 의식을 하던 못하던 우리는 의무교과과정을 마치면 대부분 대학에 진학한다. 그리고 학위를 받으면 취업을 하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는다. 조금 더 돈 많이 주고 사람들이 인정해 주는 대기업에 가려면 고교시절 성적이 좋아야 한다. 그래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대기업, 공기업에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떡잎부터 다른 친구들은 나름 안정적인 루트를 따라 1 급수로 빠진다. 그럼 나 같은 평범이 들은 2 급수로 걸러진다. 딱히 공부머리도 별로 안되고, 특출난 재능도 없고, 늘 언제나 중간역할을 담당한다. 그래서 적당히 지방국립대나 수도권 내에 사립대에 가서 학위를 받는다. 전공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2 급수의 수준에 맞는 중간레벨 직장에 취업해서 그래도 안정적으로 밥벌이는 한다. 여기에도 못 들면 3 급수로 분류되어 일단 부모의 기대와 사회적 명분을 위해 지잡대라 불리는 대학으로 가서 일단 학위를 따고 뭐가 되었던 전공 불문의 취업을 한다. 그리고는 1,2급보다 낮은 처우지만 공부를 안 했으니 나 말고는 탓할 것이 없다며 그래도 밥벌이할 수 있음에 만족하며 역시 평범한 월급쟁이가 된다. 

그럼 이 아래로는 4 급수로 분류된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만 이 등급부터는 위에 해당되지 않은 사회적으로 낮은 직군을 담당하게 된다. 도급업체, 영세사업장, 민원처리, 고객응대, 서비스, 현장직, 등등 업무의 강도대비 낮은 급여를 받게 된다.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다.

이 부류 안에도 들어가지 못하면 나머지는 가장 하급수로 음지에서 불편법적인 일을 하거나, 안정성이나 영속성이 떨어지는 직업, 사회적으로나 스스로가 딱히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애매한 포지션의 상태로 전전하게 된다. 

물론 위에 언급한 레벨은 특기자들, 금수저들, 전문직들, 자영업자들은 여기에서는 논외로 치자. 

지금 나는 보편적인 한국의 임금근로자들의 상황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돈그릇을 이해하려면 자기 직업과 절대 분리할 수 없다는 걸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재물의 그릇이라는 것은 태생이 금수저라 유산을 상속받거나, 특정 분야에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거나, 복권이나 주식코인으로 벼락부자가 된 게 아니라면 대부분은 20대와 30대에 이런 과정을 거쳐 자신의 손으로 재물을 일구기 시작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재물그릇은 자기 직업활동을 통해 소득을 얻는 것이므로 재물의 크기는 직업활동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앞서말한 보편적인 한국의 교육과정을 통해서 임금근로자가 되는 보편적 과정속에 자신의 선택이 있었다고 생각하는가? 주체성은 상실되었고, 남들이 가는 길이 내 길이라 생각하며 그저 목적없이 같은 방향으로 갔던것은 아닐까? 특히나 한국은 공동체문화중심의 사회적 풍토가 있어 개인의 차별성과 톡특함에 이질적인 감정을 가진다. 4차원이니 아웃사이더니 다양한 말들로 개성을 조롱한다. 개인마다 가지고 태어난 성향과 기질이 다름에도 남들과 같아야함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모두가 같은길을 향해서 뛰어간다면 결국 1등은 1명이다. 그러나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에게는 경쟁보다는 목적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내가 1등이다. 지금의 세상은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세상이다. 그것은 인플루언서, 유튜버, 작가, 강사 등 다양한 형태의 직업으로 무형의 환경에서 크리에이터(창조자)가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있으며 그들이 사회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음을 보면 알 수 있다. 




 자 그럼 지금 자신이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자신의 재물그릇이 어느 정도인지는 이제 감이 좀 오나?

길게 이야기했지만 직장인 에게는 직장에서 벌어들이는 소득 수준이 곧 자신의 재물 그릇인 것이다.

올해 재물운이 어떤가요?를 묻는데 이 말인즉슨 내가 횡재수가 있냐? 손재수가 있냐? 를 묻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당신의 연봉 수준이 예측가능한 당신의 재물 크기라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직장생활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소득은 너무나도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기 재물운을 궁금해 할 필요도 없는 얘기다.

뭐 물론 영업직의 경우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나 수당을 받을 수 있어서 조금은 그릇을 넓힐 가능성은 갖고 있지만 지금까지 만년 직장생활자가 영업능력으로 근로소득만을 통해 큰 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영업도 앞으로 버는 만큼 뒤로 빠지는 돈이 상당이 큰 업종이다.

재물그릇을 늘리려면 결국 자기 사업을 하거나 부업, 재테크를 통해 다른 소득원을 만들어 놓아야 한다. 이제 평생직장은 없다. 자신만의 직업과 전문성을 갖지 않는 다면 우리 같은 평범이 들이 일확천금을 꿈꾼다고해서 그런 횡재가 당신에게 이루어질 확률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음을 명심하자.




 살면서 누구나 3번의 기회를 만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맞는 말일까? 나는 아니다!라고 정확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는 적어도 3년에 한 번씩은 노선을 갈아 탈 변화의 기회를 만난다. 대부분 그 기회를 알아보지 못하거나,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변화나 변동에 두려움을 느끼며 거부한다. 특히 직장생활을 오래 하는 사람일수록 더욱이 안정적인 월급에 익숙해져서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삶과는 거리가 멀어진다. 자 그럼 지금 당신이 급여소득자라면 정말 당신이 원했던 인생이 지금처럼 현대판 노예로 사는 삶이었던가? 누군가 지나간 길, 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는 길을 가는 것이 당연히 맞는 길이라고 여기고, 믿으며 내 자유의지로 선택한 결과라고 여기며 살아왔던 것은 아니고?

다른 노선을 타고 가는 사람들의 삶은 어떨지 궁금하다면, 지금 당신이 사는 세상이 너무 좁게 느껴진다면

알을 깨고 나와서 더 큰 세상으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변화와 경험은 하라고 있는 것이지 두려워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신이 비행기를 타는 것이 두렵지 않은 것은 이미 비행기를 타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다 경험해 볼 가치가 있고, 인간의 삶은 무한하지 않다. 언제까지 운명의 수레바퀴만 돌리고 있을 것인가? 죽는 순간에 가서야 해보지 못한 것들, 과감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후회의 기억만 가지고 갈 것인가? 삶은 하루하루가 축제이고 같은 하루란 없다. 그저 당신이 편안함이라고 포장한 현실에 변화에 대한 두려움을 아닌 척 숨기고 사는 것일 뿐.

 당장 모든 걸 그만둘 수는 없고, 인생은 바꾸고 싶다면 지금 하는 일 하면서 진짜 원하는 일을 딱 3년만 준비해 봐라. 진짜 하고 싶은 걸 찾는다면 예상했던 3년보다 준비가 빨리 끝날 수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면 책이라도 읽어보자. 그러다 보면 스스로 생각하게 되고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삶에 대한 질문을 자꾸 던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더 빨리 찾아질 것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치러야 할 값은 비싸진다.




 20대나 30대 초반까지는 비교적 변화에 잘 순응한다.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고 다른 직장을 찾거나, 자신의 적성에 안 맞으면 새롭게 무언가를 배우기도 한다. 아직 나이가 젊고, 대부분이 미혼이라 개인이 짊어져야 할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운 편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는 적당한 직장생활을 통해 세상경험을 쌓는 것은 오히려 좋다고 생각한다. 남 밑에서 종노릇도 해봐야 자유가 귀한 줄도 알게 되고, 세상 다양한 놈들을 다 겪어봐야 인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지나친 자유의 추구는 자신의 곳간을 텅텅 비게 한다는 것도 배우고, 적당한 통제는 절제와 버티기를 배우게 한다. 몸소 세상 경험을 통해서 사회적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으니 많은 실패와 좌절을 사서경험하는 나이다. 그래서 이 시기에는 치러야 할 값이 싸다. 그러니까 가격이 쌀 때 이것저것 마음껏 다 해보고 즐겨보고 경험도 쌓아야 한다. 나는 20살이 넘으면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서 날갯짓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인간의 수명이 길어진 만큼 생애주기가 길어져 부모가 자식을 30살까지 키우고 있는데, 이건 자연의 순환에서 보면 상당히 비정상 적이다. 에너지의 균형이 깨진다는 이야기다. 꿀벌이 내 새끼가 귀하다고 다 자란 자식을 일 시키지 않고 가만히 앉혀두고 꿀을 따다 먹인다면? 뭐 생태계가 난장판이 될 것이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인데 인간 역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살아야 한다. 때가 되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부모와 자식도 결국 각자의 삶을 사는 주체이다. 소중한 자녀가 조금이라도 행복한 삶을 살길 원한다면 일찍부터 스스로의 선택과 책임을 가르쳐야 하며, 자녀의 독립성을 키워주어야 한다. 부모로부터 독립이 10년이 늦어지면 자녀는 자신의 삶에서 20년을 잃어버린다. 새장의 문이라도 열어두길 바란다.




 40대가 되면 부류가 나뉜다. 

첫 번째는 자신의 재능이나 적성을 찾지 못해서 유난히 한 직장을 오래 다니지 못하고 적성을 찾아 여기저기를 떠돌며 직장을 전전하는 떠돌이파가 있다. 다양한 경험을 해본다는 측면에서는 좋지만 딱히 직장생활에서 배운 기술은 그 직장을 떠나면 써먹을 일은 많지 않다. 더구나 나이가 들면 점점 몸값을 낮추어야 하니 대체로 서비스직, 비정규직, 계약직등 고용의 형태가 지속 불안정한 수준에 머문다. 경력단절 여성들이 재취업을 할 때 대부분 이 부류에 포함된다. 

 

두 번째는 내 적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안정적인 월급이 최우선이다. 돈이 적성이다. 한우물에 오랫동안 머물면 직장에서 고인 물이라도 될 수 있으니 버틴다. 그러다 보면 승진도 하고 월급도 오르니 적어도 자기 생계는 유지할 수 있다. 회사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과장, 팀장, 부장급 이내가 이런 부류에 해당된다. 그래도 이런 부류들은 나은 편이다. 여기저기 떠돌면서 적성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세 번째는 전문직 종사자이다. 이들에게 직장의 의미는 중요하지 않다. 자기 기술이 있으니 비교적 자유도가 높다. 어딜 가도 본인의 전문성에 따른 몸값을 받으니 선택권은 넓은 편이다. 다만 내가 직접 몸으로 뛰어야 하니 어디라도 아프거나, 자신이 일을 쉬게 되면 직접적으로 소득에 타격이 생긴다. 1인 자영업자들도 이 부류에 포함된다.


 두 번째나 세 번째 부류는 그래도 한우물을 오래 파왔으니 자기가 몸담아온 분야에서 익힌 고급기술이나 전문성을 유사직종의 다른 회사에 가서도 써먹을 수 있으니 이직 정도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도 있다. 

가장 걱정스러운 부류가 첫 번째 부류다.

나이가 마흔이 되는 동안 오랜 시간 동안 봉급생활을 했지만 월급의 수준에 큰 변화가 없거나, 특별한 재주나 기술이 없어 그저 자신의 시간을 계속 돈으로 바꾸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생업에 가깝다. 말 그대로 생계유지를 위해 돈벌이를 한다. 각종 대출, 카드값, 공과금, 생활비를 쓰고 나면 수중에 돈이 없다. 그래서 다시 일하지 않으면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영향을 받는다. 이 상황에서는 자신의 꿈이고 나발이고 그냥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돈 때문에 일한다. 재물의 그릇이 넓어질 시간도 여유도 없다. 두 번째 세 번째 부류에 속하더라도 실제 사는 모습이 이들과 같다면 안전장치만 튼튼할 뿐 결국 자신의 의지로 이끄는 삶이 아닌 누군가의 삶에 종속된 고용인일 뿐이다. 충격적인 건 대부분이 다 이렇게 산다는 거다.

월 1천만 원을 벌어도 월 100만 원도 저축하지 못한다면 자기가 살림의 규모를 조절할 줄 모르기에 자신의 재물 그릇을 늘리지 못한다. 월 300만 원을 벌어서 100만 원을 저축하는 사람보다 돈그릇이 크더라도 그 무게가 가볍고, 그릇의 내구성이 약하다. 돈은 모으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런 40대에 접어들면 기존에 해오던 것에 대한 관성은 더욱 세진다. 충분한 경험이 있다고 착각하고,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1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40대가 되면 현타가 찐하게 오기 시작한다. 남들과 가진 것을 비교하기 시작한다. 30대 때는 고만고만했던 친구들이 이제 나보다 앞서가는 친구가 생기고, 아예 눈앞에 보이지 않을 만큼 멀리간 친구도 들도 생긴다. 그런데 나는 아직도 월급쟁이에 매달 갚아야 하는 차대출, 집대출은 산더미다. 몸이라도 건강하면 좋으련만 서서히 자신의 건강에 대한 자만함을 꺾는 건강불안이 현실로 나타나고, 평생 곁에 있을 것 같았던 부모님들은 병들거나 죽는다. 친구들은 어느새 각자의 삶을 사느라 연락이 뜸해지고,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했지만 신혼의 단꿈은 끝나고 이젠 서로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는 사이가 된다. 자식들은 커갈수록 돈 들어갈 일도 많아지고, 잘 살아보자고 했던 투자는 실패하고, 월급 몇 푼 더 벌겠다고 돈을 따라가느라 그 안에 나는 없다.

가장 슬픈 건 이렇게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지만 제자리 뛰기를 하는 것 같은 자신을 발견했을 때다.


  


 내가 이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고 삶에 분노한다고 하여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 이미 당신을 세상을 바꿀 의지를 품기보단 현실에 순응하며 자신과 타협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 기 때문에 굳이 바꿀마음도 바뀔 마음도 없다. 남 들다 그렇게 살기 때문에 이네 평범하게만 살아도 잘 사는 것이라 생각하며 자신을 위로한다. 또다시 타협으로 끝난다.

맞다. 당장에 큰 것을 욕심낸다고 달라질 것도 없다. 불만족의 늪에 빠지느니 그것에 만족한다면 그렇게 살면 된다. 하지만 운은 내가 선택한 안전지대보다 자유지대에 더 많은 기회를 가져다준다. 왜냐하면 운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즉 균형이 깨져있는 곳에 균형을 맞추기 위대 더 많은 에너지를 부여하는 것이다. 안정이라는 것에 기대어 미래까지 저당 잡혀 있기 때문에 40대는 새로운 시작이나 도전을 할 때 30대보다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러니 나이가 치러야 할 값이 쌀 때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쌓아둬야 한다. 그때 산 경험은 내가 언제고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할 때 반드시 비싼 값어치가 되어 나를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저도 돈이 필요한데요? 평범한 직장인이라고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저도 부자를 꿈꾸고 부자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그 평범함과 안정적인 삶은 그 자체를 균형상태로 본다.

1의 노동(고통)을 1의 대가(쾌락)로 지불받고 있기 때문이다.

운이 작동하려면 균형이 깨져야 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반대되는 힘이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작동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스스로 경제적인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가 무진장애를 쓰고 있다. 신용카드와 부채로 이미 미래소득을 당겨 쓰고 있으니 그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매달 봉급생활을 이어가야 한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면서 미래에서 이미 즐거움을 당겨오고 있으니 스스로가 균형을 아주 잘 맞추고 있지 않은가?







욕심을 버리고 그릇의 크기를 키워라.



 아니 그렇다면 진짜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한쪽으로 많이 기울었으니 운이 균형을 맞춰준다면 상황이 나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람은 저마다 돈그릇이 다르다. 애석하게도 돈그릇이 원래 작게 태어난 사람, 돈그릇이 커도 구멍이 난 사람, 그릇의 재질이 후져 내구성이 떨어지는 사람,  작은 그릇에 비해 많은 것을 채운사람 등 저마다의 용도와 상황이 다르다.

그릇이 작은 사람들은 반대에서 작용하는 힘도 딱 그만큼이다. 왜냐면 이런 사람들에게 자기 그릇이 감당하지 못할 운이 주어진다면 결국 그 그릇은 더 망가지거나, 깨진다. 그래서 그릇이 작은 사람들이 운에서 갑작스러운 횡재를 만나면 그 결과는 더욱 처참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릇이 큰 사람들은 그만큼 돈그릇이 크고 단단해서 주어진 재물을 감당하고 사는 것이다. 그렇기에 부자가 더 큰 부자가 되는 이유는 이미 큰 그릇에 균형상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재물을 비워도 다시 채워진다. 세계적인 부자들이 그렇게 사회에 기부를 하는대도 끊임없이 다시 그릇이 채워지는 이유는 바로 순환의 원리를 알기 때문이다.

이미 부자가 된 사람들은 자신의 운을 경영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즉 돈을 무작정 쌓아두려 하지도 않고, 재물의 형태가 현금보다 문서재물이 많으며, 먼저 잘 쓰고 잘 베풀고 잘 나누어 선순환을 시킨다. 그렇게 나간 재물은 다시 주인의 그릇으로 돌아오게 하는 운의 원리를 알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돈은 목표가 아니다. 그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한 수단일 뿐 자신의 재물을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곳에 써야 하는 자신의 사명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보통의 사람은 돈 그릇을 더 튼튼하고 크게 키울 수는 있나요? 가능하다면 방법은요? 운을 경영한다니 어떤 노하우가 있는 건가요? 뭐 궁금한 점이 많겠지만 그에 대한 답은 오로지 배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눈에 보여야 믿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믿지 않는다. 과학이 발전하면 할수록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위대함을 알려하지 않는다. 가설이 증명되고 입증이 되어야만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입증도 되지 않는 비과학적인 영역에 신념을 두고 살아간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신의 존재를 누가 증명할 것이며, 무속이나 점성술은 누가 입증할 것인가? 예술가들의 영감은 관측이 가능한 것인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있지도 않은 직감은 왜 아직까지도 인간의 모든 결정을 좌우하는가? 세상 모든 만물이 처음부터 존재했다고 믿는가? 결국 누군가의 생각에서 현실로 창조되어 나온 것 들이다. 

자연은 음과 양으로 존재하며 음이 있어야 양이 있다. 음이 양을 잉태하며 곧 세상에 드러나게 하는 것이다.

밤이 없다면 낮이 있을 수 없고, 여자가 없다면 남자는 있을 수 없다. 겨울이 없다면 여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죽음이 없다면 삶을 인식할 수 없다. 결국 모든 것은 無에서 有가 되는 것이다.

작가들의 머릿속에 생각들이 글로 드러나 창작이 되고, 철학자들의 깊은 내면의 사유가 삶의 통찰을 주며, 예술가들의 영감이 감동의 가치로 전달되며, 학자들의 연구가 선구안을 키우게 해 준다. 

지금의 발전된 과학과 기술을 보라. 불과 10년 20년 사이에 세상은 아주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온라인이라는 무형의 세계에서 소통하며, 현실의 내가 아닌 가상의 id를 가지고 살아간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의 성장속도는 훨씬 더 빠르며 세상으로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의 가치는 무한하다.


 그릇의 크기를 키우고 싶다면,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만 쫓는 것을 멈춰라.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성장시켜라. 사람은 20대에 신체적인 외적 성장이 끝난다. 그 이후에는 내적인 성장을 해야 한다. 삶은 보이는 것들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신의 내면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적으로 크게 성장하는 것이야 말로 그릇의 크기를 키워가 느 것이고 그렇게 커진 그릇은 경험이 더해질 때 탄탄해진다. 많이 실패하고, 많이 도전하고, 다양하게 경험하고, 배우고 느끼는 모든 것들은 양질의 에너지이며, 더 오래가고, 더 강하다.

운의 에너지는 나의 동정을 살핀다. 살다 보면 동(動) 해야 할 대가 있고, 정(靜)을 해야 할 때가 있다. 이 또한 음양이다. 잠을 자야 깨어나서 움직일 수 있다. 이때 내가 움직인다면 운은 내가 나아갈 에너지를 부여한다.

내가 멈춘다면 에너지 또한 최소한으로 유지된다. 즉 내가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고 움직임을 시도하고 있다면 운은 언제든 내가 원하는 것을 가져다주기 위해 움직이며 좋은 에너지를 가져다준다.

반대로 내가 안정에 머무르고 움직이려 하지 않고, 시도하지 않으며, 배우려 하지 않는다면 정지상태로 생각하며 최소한의 에너지만을 부여하고, 함께 정체된다.

이해가 안 된다면 대부분의 노인들을 보라. 나이가 들어도 계속 배움을 추구하고 새로운 하루를 사는 노인과 그렇지 않은 노인의 삶. 당신은 어떻게 나이 들어가고 싶은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새로운 시도와 경험을 치르기 위해서는 목숨값을 내어 놓아야 할 만큼 비싸진다는 말이다. 




 늘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면 그릇은 자연스럽게 크고 탄탄해진다. 배우는 것은 그것을 익히는 것 까지가 배움이다. 머리로만 알고 경험이 없다면 난해한 칸트의 철학처럼 어렵다.

우리의 삶은 어렵지 않다. 스스로 세운 기준의 벽을 허물어라. 자의식을 해체하고, 자신이 부여했던 모든 중요성을 내려놓아라. 그저 하루하루를 욕망이 아닌 자신의 소망으로 채워나가다 보면 삶이란 선물이며 세상은 놀이터다. 그렇다고 쾌락을 좇으며 방탕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늘 열린 자세로 배움을 대하고, 즐기는 자세로 경험을 맞이하고, 마치 세상이 나를 행복하게 하기 위해 수작을 부린다고 발상의 전환하고, 스스로를 믿어라.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매 순간을 살아라. 그리고 주어진 삶에 감사하고 모든 것을 용서하면

진정한 사랑이라는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물론 살아온 습을 허무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평생을 습에 젖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만 조금이라도 어릴 때, 젊음과 열정이 살아있을 때, 기존의 습에서 빠져나와라. 그 과정에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찾고, 비로소 타인이 가는 길, 다수가 따르는 길이 아닌 자신만의 길을 보게 되고 반대로 가게 된다.

돈은 더 이상 목표가 될 수 없으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이다. 세상은 당신을 힘들게 하지도 불행하게 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 삶은 축복이자 선물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이자, 불행의 늪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당신의 두려움이 만들어낸 결과일 뿐이다.

진정한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두려움을 정복하는 것이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치열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배워야 하며, 익혀야 하며, 악습을 끊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돈이 필요한가? 아니다. 심지어 모든 것은 무료다.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도서관을 가면 되고,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면 정보를 찾으면 된다. 세상 친절한 기버들이 유튜브나 블로그등 당신이 검색만 하면 줄줄줄 나오는 정보를 무한대로 쏟아내고 있다. 

삶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모든 과정이다. 그래서 삶은 재미있고, 새롭고, 흥미롭고, 어렵고, 답답하고, 반복하게 한다. 하지만 한하던 것을 할 때 인간의 뇌는 풀가동 된다.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야 하며,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하고 연결한다. 그 과정에서 더욱 창의적인 사고를 하며 통찰력이 높아진다.

이제 당신도 금전운 재물운을 따지지 말고, 운이 와도 큰 그릇에 크게 받아먹을 준비를 해라. 인생은 새옹지마라 행운은 불행의 모습으로 가장해서 다가올 수 도 있고,  대가를 치름으로써 더 크게 돌려받을 수도 있다. 

멈춰 있는 것에 에너지는 없다. 움직이는 곳에 에너지가 흐르며 에너지가 있는 곳에 운이 흐른다. 당신의 그릇이 크고 탄탄해져 운을 많이 벌어 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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