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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Dec 20. 2023

(육아회고 12) 개구멍의 기억

교육의 목적

제가 다닌 초등(국민) 학교는 정문과 후문 두 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집과 가까운 쪽에 있는 후문으로는 등교를 못 하게 했습니다. 아침잠이 많아서 종종 지각을 했던 저는 왜 집과 가까운 쪽에 있는 후문으로는 학교에 등교하지 못하게 하는지가 늘 궁금했고 불만이었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학교를 뺑 돌아서 등교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왜 후문으로 등교하면 안 되는지 답을 구하려고 했지만 아무도 답해주지 않았죠. 후문으로 이어진 길이 울창한 나무들이 심겨 있는 언덕 바로 옆의 길이라 나름의 운치도 있었고, 하교는 후문으로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등교는 못하게 하니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문에서 복장 단속을 하고, 6학년 선도부가 잔디 하나 심겨 있지 않은 운동장을 가로질러 등교를 하는 것도 막고 운동장을 뺑 돌아서 정해진 문으로 들어가야 했지만 아무도 "왜"라는 질문에는 답해주지 않았습니다. 효율적이지도 않고 그 이유도 명확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감독하기에는 상당히 좋은 방법이었고, 윗사람이 보기에는 예쁜 광경이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비슷한 기억은 중고등학교에도 이어집니다. 이상하게 그 당시 교장선생님은 병정놀이를 즐겨했던 것 같습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학생들이 그 조그마한 운동장을 돌면서 오와 열 그리고 대각선의 모든 사람의 발이 일렬로 될 때까지 사열을 시키는 걸 즐겨했죠. 흑먼지를 들이마시면서 왜 이런 줄들을 맞추는 연습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도 모르고 영문도 모른 채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렇게 두어 시간 팔과 무릎을 높이 들면서 운동장을 돌고 나면 파김치가 되기 일쑤였습니다. 

 

아이들이 쉽게 등교하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뚫어놓은 초등학교 펜스의 구멍들 (구글 맵)

 

그런 교육환경에서 자란 저에게, 이곳의 학교 담에 뚫려있는 '개구멍'들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또한 높은 담에 둘러싸인 좁은 운동장을 가진 학교만을 경험했던 저에게 넓은 녹지와 놀이터에 둘러싸여서 아이들이 언제나 신나게 놀 수 있고 아이에게 등하교 시 조금 더 짧은 샛길을 보장하는 개구멍을 가진 담벼락은 마치 자유를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후에 알게 된 사실은 아이들은 쉬는 시간이 되면 무조건 밖에 나가서 놀아야 하는 것이 규칙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밖의 기온이 영하 23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한 반드시 쉬는 시간마다 밖에 나가서 놀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늘 학교의 좁은 교실에 갇혀서 공부해야 했고, 쉬는 시간에 잠깐이라도 졸려고 하면 공부 안 한다고 혼났던 기억이 있는 저에게는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하지만 맨 처음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매우 비 민주적인 규칙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나가서 놀고 싶은 아이도 그리고 쉬고 싶은 아이도 있을 텐데 모두 다 하루에 3-4번씩 꼭 나가서 놀아야 한다는 것이 뭔가 이상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을 해보니 일견 이해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쉬는 시간에 노는 것도 하나의 사회 학습이라고 생각하니 이러한 규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아이가 산수나 영어를 싫어한다고 해서 그 아이에게 산수나 영어시간에 교실 밖으로 나가게 하지 않는 것처럼 다른 아이들과 노는 '공동체 학습'에서 아이가 싫어한다고 교실 밖으로 나가게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신 아이들이 밖에서 친구들과 어떤 방식으로 놀지는 아이에게 주어지는 자유였습니다. 어떤 아이는 친구와 노는 것을 포기하고 혼자서 큰 운동장을 하염없이 걷기도 하지만, 그 또한 자유 의지의 영역으로 남겨지는 것 역시 (부모가 그 모습을 보면 외톨이 아이의 슬픈 얼굴에 가슴이 찢어지지만) 뇌리에 상당히 오래 남았습니다. 


한국어로 훈육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discipline'이라는 단어를 쉽게 설명(layman's term)하면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은 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쉬는 시간을 통해서 학교와 선생님들은 아이들에게 훈육을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붉은 화살표가 개구멍이 있는 곳이고, 자세히 보시면 이 초등학교 운동장 오른쪽 아래에 축구장 3개가 보입니다. 가운데와 아래쪽에 있는 붉은 점 두 개는 야구장의 투수 마운드입니다. (구글맵)


왜 모든 학생은 꼭 정문으로만 등교해야 했는지, 그리고 왜 잔디도 없는 맨땅이었던 운동장을 가로질러서 등교하면 안 되었는지, 왜 교장선생님께 잘 보이기 위해서 오와 열, 그리고 대각선이 다 맞을 때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을 행진해야 했는지, 왜 학교 마당에 있는 잔디밭에는 들어가면 되지 않았는지, 왜 내가 같은 줄의 다른 학생이 숙제를 해오지 않아서 맞아야 했는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훈육과 교육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그런 것들이 왜 훈육에 필요한지 어떤 설명도 듣지 못한 채 폭력과 강제만이 난무한 학교생활이 아직도 제가 기억하는 학창 시절입니다. 어쩌면 그때의 교육과정도 저희들을 교육하고 훈육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제 학창 시절 동안 행복한 날은 매우 적었고, 학교를 가는 것이 재미없고 힘들었습니다. 




제 아이들은 미국과 캐나다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전 이곳의 교육이 완벽하다거나 한국보다 더 잘 가르친다거나 또는 이곳의 교육이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학교를 다니는 것이 너무 행복하고 재미있다고 합니다. "좋은 교육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는 많은 답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숫자만큼 다양한 정답이 존재할 것 같습니다. 제가 찾아낸 답은 "아이가 학교에서 배우는 것을 즐거워하게 만들어 주는 교육"입니다. 행복한 아이는 그곳에서 더 많은 것을, 효율적이고 긍정적으로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긍정의 에너지는 사회를 더 밝고 활기찬 곳으로 바꾸리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떠난 지 너무나 오래되어서 현재 한국의 교육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뉴스를 통해서 접하는, 그리고 친척과 친구들을 통해서 접하는 한국의 학생들은 아직도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의 공교육도 아이가 행복해지는 방법들에 대해서 고민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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