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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Dec 26. 2023

(육아회고 13) 암기교육이 나빠요?

교육이란 무엇일까?

제가 하는 일 때문에, 어린아이들을 둔 부모의 교육관이 담긴 에세이를 읽을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제가 읽은 모든 에세이에서 부모들은 무작정 암기를 하는 교육방법에 반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암기하는 대신에 모든 것을 차근차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역사적인 사건이 있다면 그 사건외우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이 일어났는지, 역사가 그 방향으로 흘러갔는지를 설명해주고, 아이에게 그 시대의 종교나 정치적 상황을 설명해주어, 그 토대 위에서 아이가 그 역사적인 사건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무조건적인 암기교육, 천편일률적이 주입식 교육에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한국에서 폭력적인 주입식 교육을 받은 기억 때문에 외국에서 살기로 마음을 먹은 저 역시 암기위주의 교육에 반대합니다. 그렇기에 아이가 모든 것을 이해하도록 하는 교육관은 일견 참 올바른 생각처럼 보입니다. 저 또한 아이가 어려서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일견 좋아 보이는 이 교육관에는 몇 가지 중요한 맹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아이가 이러한 교육을 원할까요?"입니다. 두 번째는 "무작정 암기하는 것은 정말 그렇게나 나쁜 방법일까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아이에게 모든 것을 이해시킬 만큼 부모가 모든 것을 충분히 아는가?" 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아이가 모든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가?"이고, 마지막은 아이에게 이해를 시켜줄 만큼 부모가 충분히 알더라도 "아이가 그것을 이해할 준비가 되었냐?" 하는 것입니다.




제가 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다양한 지식들을 습득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가, 전공의 특성상, 경영이나 경제 같은 분야부터 화학이나 생물학과 같은 쪽의 지식도 쌓게 되었기 때문에, 지식의 깊이는 깊지 않더라도 지식의 폭은 상당히 넓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특히나 나무와 숲에 대해 오래 공부를 하다 보니 밖으로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보게 되는 나무와 숲에 대해서는 정말 아이에게 해주고픈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아빠로서 사랑하는 아이를 정말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많아서, 많은 것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제가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알게 된 것들을 아이에게 알려줄 수 있다면 아이가 많은 시간을 아낄 수 있다고도 생각했습니다. 또한 - 불행하게도 - 제가 남들에게 무언가를 설명하는 것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네, 아이에게 아주 조그만 과학적 하나를 이해를 시키려고 해도 아이에게 매우 많은 것을 비교적 긴 시간 동안 설명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제가 재미있고 쉽게 설명한다고 해도, 그것을 이해하기에는 아이의 집중력은 너무 짧았습니다. 게다가 점차 아이는 제 얘기들을 즐겁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전 오래지 않아서 제가 하는 행동이 아이의 발전을 돕지도 못하고, 오히려 아이의 호기심을 없애버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지식생활'에서 오히려 저는 방해물일 뿐이었던 것이죠.


중고등학교 때, 정말 많은 지식들을 외웠습니다. 제 기억에 고등학교 때, 17 과목을 배웠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미국에 유학을 와서 주기율표를 달달 외우고, 그 외에도 너무나 많은 것들을 외우고 있는 저를 보고 동양의 학생들은 천재들만 있느냐고 물어봤던 실험실 교수의 표정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네, 저도 고등학교 때, 그런 잡다한 것을 외우는 것이 싫었습니다. 하지만 주어진 시간에 많은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하는 고등학생으로서 외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외웠습니다. 그리고 가끔 선생님께 여쭈어 보면, 충분한 시간이 없으니 일단은 외우라는 말을 종종 듣곤 했죠. 그때 배운 것들을 20년 있다가 이해한 것들도 있고, 어떤 것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해한 것들도 있습니다. 왜 이걸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 주지 않았을까 하고 선생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때 외운 많은 내용 중 그때 설명을 들었어도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 많이 있었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예를 들어 중고등학교 때, 외웠던 많은 시의 숨어있는 의미들을 제가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게 되어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기다려서 충분한 경험이 쌓인 후에야 이해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어떤 것들은 이유를 알았다고 하더라도, 지식의 확장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You라는 대명사는 왜 단복수 형태가 한형태이고 be동사 역시 복수형으로 쓰는지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냥 외웠습니다. 만약 영어를 첨 배울 때, 단수 'thou (you)'의 be동사가 단수형인 art가 없어지고 복수형인 are만 남게 된 것은, 프랑스어의 영향을 받아서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고, 이를 이해하기 위해 역사적 이유와 사회상, 문화상에 대해 긴 설명을 듣는 것이 것이 정말 영어를 이해하고 영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혹은 영어 실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었을까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단언하건대 많은 과목에 있어서 암기는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저도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외우라고 말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몇몇 용어들(terminology)은 반드시 정의를 외워야 한다고 말해둡니다. 그러한 용어들의 정의를 알아두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고, 이런 것들은 외우는 것이 더 학습의 효과가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지식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면 골라낼 수 없는 거짓된 진실도 많이 퍼져 있습니다. 하물며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 교과서를 읽어봐도 진실이 아닌 내용이 있는 경우도 종종 발견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과거에는 진실이었지만,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새로운 진실이 나온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모든 과목의 최신지식을 익히면서 아이에게 정말 올바른 정보를 줄 수 있을까요? 아니요. 부모가 아이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이해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10명의 선생님이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합니다.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백과사전이나 위키피디아에 나올만한 그 방대한 내용을 모두 이해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수십 년간 제가 공부한 제 전공과목에 대해서도 위키피디아에서 새롭게 배우기도 합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이해한다고 아이가 더 행복해질까요?




네, 저도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외우도록 하는 교육에는 반대합니다. 그리고 수학조차도 암기과목이라고 주장하고 문제를 외워야 한다고 말하는 몇몇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그런 사람과 제도야말로 사회를 퇴보시키는 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각 교육에는 그리고 각 과목에는 교육의 목적이 있어야 하고, 그 목적에 맞는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암기는 나쁘고 이해는 좋다는 흑백논리가 아니라, 어떤 과목의 어떤 단원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러한 교육 방법이 더 옳지 않을까라는 사회적 담론이 더 건강한 것이고, 그런 담론을 자연스럽게 발의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의 교육은 아이가 호기심을 가질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암기가 그 기다림의 방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쉽게 도착점에 도달하고 나중에 스스로의 호기심으로 중간과정을 되짚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많은 음식을 먹은 사람이 배가 고프지 않듯이, 너무 많은 지식이 들어온 아이는 호기심이 없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아이를 교육하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교육하려는 부모의 '억지스러운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 호기심을 가지고 찾는 모습과 스스로를 교육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핸드폰으로 24시간 손에 잡고 있으면서, 아이에게 핸드폰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면 아이는 잘 듣지 않습니다. 아이가 책을 보기를 원하면 부모가 책을 보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교육이라는 이름하에서 억지스럽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방법들을 보여주면, 아이는 그중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들을 선택해서 자신만의 배움을 시작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아이가 흙과 같은 아이인지 물과 같은 아이인지도 모르는데, 한 아이의 속성을 예단하고 부모가 이미 재단한 '교육'을 통해서 아이를 틀에 가두는 행동은 아이의 배움을 도와주는 방법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와 같은 이유로 아이들 다른 아이와 비교하는 것도 올바른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아이를 아이로 키우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올바른 교육관이라고 생각합니다. 암기가 옳은지 이해가 옳은지 이전에, 아이의 발걸음을 바라봐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의 호기심에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호기심에 "아 그렇구나. 그런 생각을 못했네, 왜 그럴지 정말 궁금하네!"라고 하면서 아이와 동조해 주는 아이의 호기심 자체를 인정하는 것이 아이를 더 행복하게 하는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배움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버린 아이는 공부를 잘하기가 힘듭니다. 제가 겪어본 공부를 힘들어하는 많은 한국학생들은 - 불행히도 - 배움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버린 학생들이었습니다. 배움에 대해서 호기심을 잃어버린 아이는 다른 것에 호기심을 갖고 그곳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할 것입니다. 사람은 무언가의 행복을 가지고서야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이기 때문이죠. 전기차가 '전기'가 있어야 굴러갈 수 있듯이, 저는 '행복'이라는 동력이 있어야 사람들이, 특히 아이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만약 호기심과 같은 '비물질적인 것'으로 행복을 찾을 수 없다면 사람은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행복을 찾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2021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가 전 세계 17개 선진국 국민을 대상으로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였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가족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대답한 사람이 압도적으로 높았지만, 한국만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 행복 (material well-being)'을 삶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뽑았다고 합니다 (https://biz.chosun.com/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2021/11/22/M3CZGUSKIJDWDMR7AY5I23ECKY/). 한국의 교육적 가치관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아이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있는지, 교육의 진정한 목적에 대한 사회적인 동의가 이루어져 있는지 정말로 깊게 고민해 봐야 할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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