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에요!" 맞나요?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룹이 여럿 있습니다만, 그중 하나가 제 동료 통역사 그룹입니다. 제가 영어를 너무 어렵게 배워서 많이 모자란 실력이나마 잃지 않으려고 일주일에 몇 시간을 통역사로 일하고 있는데요. 능력이 출중한 분들이라 여러 가지로 배우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특히 영어를 잘하는 분들이 시라 종종 영어에 대해 묻기도 하고 토론도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최근에 "You're welcome!"을 어떻게 통역할 것인지에 대해 다른 통역사님들과 대화를 나누어서 제 독자님들과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아마 저를 포함해서 한국에서 영어를 배우신 분들은.
"Thank you!"
"You're welcome!"
이 조건반사적으로 나오는 가장 일반적인 표현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교과서에는 보통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라고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오지요. 그런데 통역사님 중 한 분이 이렇게 통역을 했다가 시비에 걸리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희 단톡방에서 자연스럽게 주제가 되었죠.
'천만'은 기본적으로 매우 많은 수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천의 만 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음'이라는 의미의 확장이 되면서, '아주' 혹은 '매우'라는 의미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위험천만하다'는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매우 위험하다'라는 의미가 되었죠. 이와 같은 선상에서 '유감천만이다'는 '(비교할 대상이 없을 정도로) 매우 유감이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예 외에도, ‘천만다행이다’나 ‘천만뜻밖이다’라는 식으로 일상 생황에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표현이 부정의 말과 같이 쓰일 경우, '전혀'라는 의미로 바뀌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만에'는 ‘전혀 그렇지 아니하다' 혹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뜻을 갖게 된 것입니다. ‘조선어사전’(1938)은 ‘천만에’를 ‘천만의외에’의 줄임말로 설명했습니다.
(Source: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805311083096617)
국립국어원도 ‘천만에’는 '전혀 그렇지 아니하다' 혹은 '절대 그럴 수 없다'라는 의미를 갖고, 상대편의 말을 부정하거나 남이 한 말에 대하여 겸양의 뜻을 나타낼 때 하는 말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와는 조금 다른 주장도 존재합니다. 한진욱 님은 ‘천만의 말씀’은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의 준말로서, ‘말 같지 않은 소리’의 공손한 표현이라고 주장하십니다. (Source: https://news.koreadaily.com/2002/04/15/society/opinion/171959.html) '천만에요'라는 말을 이런 의미로 받아들인 사람이 저희 통역사분께 항의를 한 것이었죠.
통역을 하면서 종종 느끼는 것들 중 하나는, 위의 '천만에요'에선 보신 것처럼, 하나의 어구가 다른 뜻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경우 분란이 되기도 하죠. 이는 영어에도 크게 다름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좋은 예가 "You're welcome!"인 것 같습니다.
"You're welcome!"이라는 말이 원래는 상당히 공손한 표현이고 널리 쓰이는 표현이지만, (특히) 요즘의 젊은 영어 세대에게는 그리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조사해 본 바에 따르면 이 welcome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저명한 Collins 사전에 따르면 welcome은 "People wanted it and are happy that it has occurred"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당연히 일어나리라고 기대하고 있었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서 행복하다"라는 뉘앙스를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You're welcome"이라는 표현은 "네가 너의 고맙다는 인사를 기다리고 있었고, 네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인사를 해서 내가 기쁘다"는 뉘앙스를 가지게 되는 것이죠. "당연히 해야 할 인사"를 강요한다는, 내가 너의 감사인사를 받을만한 일을 했다는 '우쭐거린다'라고 느껴지기 때문에, 젊은 세대가 사용을 꺼리고 예의 바르지 못한 표현이라고 느낀다는 것입니다. 좀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식당에서 젊은 웨이트리스에게 thank you라고 했을 때 you're welcome이라고 대답을 한다면 좋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젊은 세대들도 저처럼 나이 든 아저씨가 이런 표현을 쓰게 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젊은 세대들도 이 표현을 기성세대들의 자연스러운 표현으로 이해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또한 제가 주위에 물어본 바에 따르면, 노인 세대에는 이 표현이 아직도 예의 바른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비슷한 맥락으로 요즘 "Thank you!"에 대한 대답으로 "Of course!"라는 답변을 종종 듣습니다. 20여 년 전 친한 친구에게 이 표현을 들었을 때는, 이게 뭔 의미일까 했습니다. '고마워'라는 인사에 '당연하지'라고 대답하다니, 내가 인사하는 게 당연하다는 의미인가? 뭐 이런 생각도 했고요. 하지만 근래에 꽤 많이 쓰이는 이 표현은 "내가 당연히 했야 하는 일인데, 별거 아니야'라는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되겠습니다. 근래에 병원 등 매우 많은 장소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입니다. 위에 예를 들어던 식당에서의 상황으로 돌아가서, 젊은 웨이트리스에게 thank you라고 했을 때 of course라는 답변이 돌아와도 젊은 세대나 (저를 포함한) 중년 세대는 그 대답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노년 세대의 일부는 이러한 어구를 사용하는 사람을 '잘 교육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는 요즘 자주 쓰는 "No problem!"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알기로 이 표현은 호주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표현으로 알고 있는데, 어려서 이 표현을 쓰지 않았던 노년 세대의 일부는 이 표현을 쓰는 사람을 세련된 영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촌놈'으로 여길수도 있습니다.
이미 영어 공부를 수십 년을 하고 영어를 쓰는 북미에서 영어를 사용하면서 수십 년을 살았지만, 영어를 모국어가 아니라 제2외국어로 배운지라, 저에게는 영어가 늘 도전이 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나 이렇게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표현들을 볼 때면, 언어라는 것이 얼마나 살아있으며 생동감이 있는 것인지를 다시 느끼곤 합니다. 얼마 전 친한 지인분과 "fuck"과 같이 다재다능(versatile)한 단어를 제외하고 나머지 단어는 다음 세대면 또 다 바뀔 것 같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계속 살려면 저도 영어공부를 끊임없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추신: You're welcome 말고 "My pleasure!", "Think nothing of it!", "Don't mention it!" "Thank you!" 등을 사용하실 수 있고, 조금 더 편한 사이라면 "No worries!", "Forget it!", 이나 "Never mind!"와 같은 표현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주의: 전 영문학자가 아니고, 모든 사람의 영어를 알지도 못합니다. 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인터넷의 다양한 자료와 주위 원어민들의 자문을 바탕으로 작성한 글임을 명심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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