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책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언젠가 대항해를 떠나겠다는 원대하지만 막연한 꿈과 같았다. 그것은 활자를 제대로 읽기 시작한 어릴 적부터 나의 버킷리스트였으나나이를 먹을수록정신없이 바쁜 생활과 그 보다 진한 감도의 나태함에 묻혀 점점 삶의 후순위로 밀려났다.매년연말연초 결심의 소생기 때글을써보겠다는 구상을해봤지만매번작심삼분이었다.뭘 쓰나, 언제 쓰나, 어떻게 쓰나생각하다가 배에 오르기도 전에 멀미가 났다. 어지러우니까 일단 내일 생각하자. 그렇게 한 달, 일 년, N 년.. 책 한 권 써보리란나의 바람은단념과 망각 속에서 이번 생엔영영물 건너가는 듯했다. 내가 생각한 대항해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10년 근속이라고 감사패를 받았다. '헉, 벌써 10년이라니.. 말도 안돼! 아직 신입 같은데..' 심리 나이 20대에 멈춘 칠순 할아버지가 된 기분이었다. 직장인 10년이라는 타이틀은 나에게 뿌듯함 보다는 뭔지 모를 회한과 불안으로 다가왔다. 감사패는 집에 들고 가다가 중간에 그냥 버릴까 싶을 정도로 오지게 무거웠으나 한 명의 직장인으로서 10년이란 시간의 무게는 한없이 가볍게 느껴졌다. 반추해 보니그동안 울고 웃고, 걷고 뛰고, 내리락 오르락 나름 열심히 살아온 것 같은데그 소중한 기억들이 다 휘발되어 연흔만 남아있었다. 이대로 보내기엔 너무아쉬웠다. 조금 늦었지만, 더 늦기 전에 직장인 유철현의 지난 10년을 기념하고 싶었다.
그때 떠오른 게 바로 나의 너덜너덜 버킷리스트, 책 한 권 쓰기였다. 그런데 나 같은 쭈구리도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런 고민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아내가 말했다.
"그냥 시작해 봐!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오빠는 매일 글(회사 보도자료) 쓰는 일을 하지만 정작 오빠 글을 써 본 적은 없잖아."
돈 들어가는 일도 아니라는 아내의 말에 오히려 돈을 번 것 같은 환급 용기가 불끈 솟았다.문득 어느 여고에서 노총각 선생님이 정했다는 급훈이 생각났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너의 대학, 나의 결혼.' 나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나의 집필. 나의 출간.
그런데 무슨 얘기를 써볼까?뭐 쓰지? 음.. 뭐가 좋을까? 하다가 한 글자도 못 썼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났다. 아.. 이라믄 나가린데.. 고심하는 나에게 아내가 또 말했다. "편의점 써. 편의점.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의 두 번째 복음. 옳거니! 나는 편의점에 대해 쓰기로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10년 넘게-지금도 그렇고-편의점이란 세계에서살고 있다. 그 말인 즉, 지면에 털깨알 같은 얘기가 많다는 거. 편의점 홍보맨으로서 우리나라에서 편의점을 제일 잘 아는 사람 비공인 최소 열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으려나 하는 건방진 생각도 솔직히 조금 있었더랬다.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길거리에서든, 브런치에서든, 서점에서든 요즘편의점은 못 참지!
나는 초보 작가였지만 글을 쓰기 전 편의점 회사 직원 답게-어쩌면 초보 작가였기에 더욱 더-책을 하나의 제품으로 여기고 '책의 품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초보 작가라고 책도 초보 같으면 누가 읽겠나? 아니, 아예 출간이 안 되겠지. 물론, 그렇다고 나 같은 평민이 책의 품질을 가늠할 능력은 없었기에 기성 작가들의 책들을 연구하며 기준점을 삼을 수밖에 없었다. 분량부터 구성, 흐름, 문장 등등. 그리고 여기에 나만의 개성을 담는 것에 가장 중점을 뒀다(나중에 편집자님이 말씀하시길 이 글은 이 작가 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와 분위기를 담고 있는가가 픽의 이유가 된다고 했다). 나는 편의점을 소재로 하지만 우리의 일상으로 확장되는 보편적인 글을 쓰고 싶었다. 유쾌하지만 가볍지 않으며, 따뜻하지만 무겁지 않으며, 침대든 책상이든 방바닥이든 편의점처럼 늘 독자 곁에 가까이 놓여 있는 책.
밀리의 서재에도 등장! 1600개가 넘는 서재에 담겨 에세이 인기 도서와 밀리 픽에도 선정. 30대 여성 독자 분들이 많이 읽고 있어요.
그렇게 책을 낼 결심을 하고 나는 주로 출퇴근버스와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글을 썼다. 집중이 잘되고 안되고를 떠나서 회사 일과 가사, 육아를 본업으로 하다 보니 이때가 아니면 현실적으로 도저히 글 쓸 시간이 없었다. 왕복 2시간 남짓한 출퇴근 여정이 하루 중 나에게 허락된 유일한 집필시간이었다. 애초 대항해를 떠나리란 각오를 되새기며(나의 배가 거함은 아닐지언정콩나물시루 대중교통일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속이 울렁거려도 필사적으로 그리고 꾸준히 글을 썼다. 선릉역에 내려야 되는데 한 정거장 지나쳐 삼성역에 내려 지각한 일도 있었다.
집필은 아내가 마침 딸아이를 임신했을 때부터 시작한 터라 나 역시 임산부의 마음으로 글을 써 나갔다. 아내는 딸의 출산과 나의 출간이 같은 해에 성사된다면 출산 동기가 될 거라며 독려해 마지않았다. 주말에 내가 방에 틀어 박혀 출퇴근 길에 쓴 글들을 다듬고 있으면 아내는 슬며시 들어와 모니터를 가리키며-마치 태아 초음파 화면을 보듯이-‘이 아기는 몇 주 됐어요?(언제 마감?)’, ‘태명(가제)은 뭐예요?’, ‘출산 병원(출판사)는 정했어요?’라며 실없는 질문을 쏟아 냈다. 가뜩이나 글도 안 써지는데 이러쿵저러쿵 하도 시어머니처럼 굴어서 내가 더 심한 입덧에 시달렸다. 그렇게 계절이 하나둘 바뀌고 글이 쌓여가자 나의 서랍도 제법 묵직한 태가 나기 시작했다.
도중에 너무 힘들어서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그런데 글이 책의 약 절반 분량인 스무 꼭지를 넘어서자 그동안 써 온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중단할 생각이 쏙 들어갔다. 오히려 더 힘을 내자는 의욕이 생기고 속도가 붙었다. 이렇게 집필도, 인생도 보이지 않는 어떤 마의 구간을 넘기면 곧 순풍에 돛을 다는 때가 온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담금질의 힘인지 글을 쓰면 쓸수록 글의 퀄리티도 조금씩 더 나아짐을 느꼈다.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또 다른 고난이었다. 이전에 쓴 글들이 도저히 봐줄 수가 없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모두 새로 뜯어고치기로 했다. 흰머리가 핵구름이 되고 다크서클이 눈물이 되었지만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리셋. 이때 두 번째 위기가 찾아왔다. 출근할 때 포기하지 말자, 퇴근할 때 포기하지 말자를 하루의 열고 닫기로 되뇌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렇게 대망의 마지막 글의 마침표를 찍은 날 밤, 나는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거의 2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계산을 해보니 2.5주에 글 1개를 쓴 셈이었다. 태부족한 시간과 유리병 같은 저질 체력, 나약한 정신력으로 일궈낸 인간 승리였다.그 감격은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열악한 여건과 부족한 자질에도 이 집필의 시간을 버티게 해 준 건 '중글마'였다. 중요한 건 글을 쓰겠다는 마음!지치고 힘들 때마다 중글마가 나의 잠을 깨우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처음엔 책을 내겠다는 목표로 무작정 글을 썼지만 어느 순간 그 목표보다는 나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 과정에 흠뻑 빠졌던 것 같다. 고된 여행 속에서 대항해의 목적지 보다 내가 지금 떠 있는 바다를 진정 사랑하게 된 것이다.
중글마 덕분에 정말 많은 걸 배웠다. 생각은 넓어졌고 내면은 단단해졌으며 무엇보다 평소 무심코 지나친 소소한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됐다. 글이 나를 괴롭혔지만 글이 나를 안아주었고 그런 글이 생전 가보지 못한 새로운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었다. 그 속에서 만난 고마운 분들에게 받은 은혜는 또 어찌 갚아야 할까? 나는 과연 앞으로 또 이런 대항해를 떠날 수 있을까? 여전히 모자람이 많아 머뭇거리게 되지만 결국 그 답은 (카페인 보다) 또 중글마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