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편의점>이 출간된 지 3개월이 다 되어 간다. 책을 출간한 이후 내 인생이 '확연히' 바뀌었냐고 하면 '명확히' 그건아니다. 나는 '여전히'직장인이고 편의점 홍보맨이며 한 가정의 구성원이다. 단지, 남들이 나를 부를 때 '작가'라는 호칭이 하나 더 생겼고(회사 화장실에서 마주친 법무팀장님이 '오~ 작가님!'이라고 부를 때 그 공공의민망함이란!) 소소한 세간의 관심이 늘어난 정도다.홍보맨으로서 그동안 음지에서 양지를 비추는 일만 해왔는데 내가 직접 수면 위로 올라와 나란 사람을 펼쳐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신선하면서도 부끄러운 경험이었고 영예로우면서 꽤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책은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신인 작가임에도여러 매체에 기사와인터뷰가 실렸고 라디오에도 출연했으며, 공중파 뉴스와 팟캐스트에도 소개됐다. 얼마 전엔시흥의 한고등학교에 강연도 다녀왔다. 다행히 반응이 좋았다. 강연이 끝나고 책에 사인을 해달라는 학생들이 몰려와 예상치 못한 짧은 북토크(?)도 하게 됐다. "오늘 강연 재밌었어요.", "(옆에 친구를 가리키며) 얘가 이 책 재밌다고 꼭 읽어 보라고 추천해 줬어요.", "작가님 다른 책은 또 없어요?"라는 얘기를 들었다. 아, 그리고 "이 책 진짜 집에서 냄비받침으로 쓰고 있어요?"라는 질문도(이 물음의 배경은 책에 나와 있는데 답은 아래사진으로 갈음하겠다).
딸의 장난감 소품을 담아둔 박스의 1, 2쇄 더블 받침. 책이 왜 저기 있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쓰임이 많다는 건 아무튼 좋은 일이다.
아마 책을 낸모든 작가들이 그럴진대,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온라인 서점에 올라오는 판매 지수부터체크하게 된다.공들여 쓴 내 책이 얼마나 독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지 궁금한 건 어느 작가나 마찬가지일 터.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의 휴대폰에도 예스24와 알라딘, 교보문고 앱이 깔려 있을 것이다. '난 아닌데 니 무라카노?'라고 한다면 스미마셍. 초연한 하루키 선생은 아닐지 몰라도 촐랑방구인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세 곳을 들락거렸다. 나는 출간 이후 딱 3개월, 12주 동안만 판매 지수를 기록해 보기로 했다.
*지난 3개월(3/4~5/31) 간 <어쩌다 편의점>의성적표!
- 예스24: 최고 4,899(e-book: 31,308)
- 알라딘: 최고 4,075
- 교보문고(시/에세이 순위): 최고 68위
그런데 이 지표들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오름과 내림세에 따라 나의 기분도 등락을 반복했다. 책에보이지 않는 근저당이 설정된 사람처럼 전전긍긍. 관여도가 높은 만큼 집착도 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맞아요. 제가 이리 그릇이 작습니다ㅠㅠ). 잘 나가던 숫자가 갑자기 후룸라이드를 탈 때면 나는 복부에 메이웨더의 펀치라도 맞은 듯켁-꼬꾸라져 슬퍼했다.
@무연고, @천재작가님 이렇게나마 인증합니다^^ 그 외 브런치에는 정말 훌륭한 작가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이런 나의 푸념을 듣던 아내가 말했다.
"오빠 뭐 돼?(요즘 인터넷 밈)"
"나? 나는 그냥유추헝(딸이 막 말을 시작했을 때 불렀던 내 이름)인데.."
"그러니까 그런유추헝씨가 책을 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 대단한 거야. 글을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아. 오빠는 버킷리스트를 이룬 거잖아. 한 달 만에 2쇄 찍고 지금도 잘 나가고 있는데 그렇게 마음 졸일 거 없다구. 누구보다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는 거야.이젠 렛 잇 고!"
정확한 진단이었다. 역시 아내는궁상맞은 내가 이 땅에반듯이 서 있을 수 있도록 정신을꽉 잡아두는 지평좌표계였다(아내와 있다면 나는 귀신에 홀릴 일은 없을 것이다).
출간은 나에게 기적이었고 내 생에 가장 큰 사건이자행복이었다.나도 충분히 알고있었지만 언젠가부터 이상한작가병에 걸려 눈앞의 진짜 행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던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판매 지수에 연연해하지 않기로 했다.산은 산이요 책은 책이로다의 마음으로 번뇌를 훌훌 털고 그간의 성취와 행복을 소급해느끼기 시작했다.한 땀 한 땀 꿰어진 <어쩌다 편의점>의 행적들이 나에게 준 감미롭고 풍요로운 감정들을. 하마터면 놓치고 지나칠 뻔했다며 품에 꼭 끌어안았다.
특히, 독자들의 리뷰는출간 작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예스24 <어쩌다 편의점> 페이지에는 총 523개(5/31 기준)의 리뷰와 한줄평이 달렸다. 딱 하나 '그저 그렇네요'란 리뷰를 빼고 나머지 522개 리뷰는-누가 보면 댓글 공작소라도 고용했나 싶을 정도로-모두 다 긍정적이었다. 사실, 갓 나온 무명작가에겐 과찬도 그런 과찬들이 없었다. 편집자님도 말씀하시길 아무리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라도 사람들의 관점과 취향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렇게 압도적 호평을 받기는 어렵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리뷰 몇 가지 소개해 본다.
이 분은 과연 무슨 책을 읽으신 걸까? 제 책은 에세이입니다만 아무쪼록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가 된 이후 내 삶의 가장 큰 변화는 글쓰기 실력이 더 늘었다거나 미디어에 자주 나오게 됐다거나 편의점 전문가로서 유명해졌다는 것이 아니라 글 짓는작가로서품격과 마음가짐을 다잡게 됐다는 것이다.바쁘게 살아온 날들에 잠깐 쉼표를 찍고 나 자신과 내 주변을 돌아보며 겸손과감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 시간은 내가-나 자신과 다른 이들에게-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익어가는 과정이었다. 작가란 꼭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는 정의가 있는 건 아니지만 각자 글쓰기 농사를 지으며 행복을 찾아가는 사람이니까 나는 그 힘으로 계속 글을 써 나갈 것이다. 낮은 자세로 담백하고 씩씩하게.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 나의 아내와 딸, 가족들. 지인들과 브런치 작가님들, 출판사 돌베개 관계자 분들. 그리고 모든 독자님들.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P.S. 저는 잠깐 휴식기를 가지며 다음에 또 어떤 글을 써볼까 구상하려고 합니다. 요즘은 소설과 장르물에도 관심이 생겼어요. 제가 즐거운, 제가 잘할 수 있는, 제가 성장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글쓰기를 하고 싶습니다. 일단 지금은 좀 놀구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