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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샵레터 Jan 19. 2024

세계의 서사는 어떻게 소리가 되는가


                                            글 ∙ 소록

                                                     에디터





여러분은 소리를 어떻게 감각하고 계시나요? 자주 듣는 음악으로, 지나치는 거리에 울려 퍼진 배경음으로, 혹은 극 중 OST로, 자기 전의 ASMR로, 우리는 수많은 방식으로 소리를 감각합니다. 이번 호에서는 제가 소리를 감각하고, 사유하며 표현하는 다양한 작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 일환으로 청감 문화 브랜드 ‘사운드울프’를 창업한 과정까지요. 이 일련의 작업들 밑바닥에는 ‘이야기’라는 열쇳말이 관통합니다.




판타지의 세계, 극과 음악

극을 제작하는 건 한 편의 세계를 만드는 일이기도 해요. 저는 내러티브 기반의 음악을 창작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극에 들어가는 음악을 작곡하고, 극의 주제와 캐릭터, 서사에 걸맞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이죠. 연극과 뮤지컬, 영상 매체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은 늘 재미있고,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저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음악으로 순간을 재창조하는 것은 때로 제겐 극음악을 하는 이유이자 카타르시스가 되었죠. 그렇게 극과 이미지, 텍스트와 음악의 관계를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다루는 극음악 창작자로 예술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나의 세계, 역사, 그리고 소리

시간이 지나며 저의 작업 세계는 극으로부터 조금씩 확장되기 시작했어요. 허구의 세계뿐만 아닌 스스로가 실존하는 세계, 개인의 기억과 사유 너머의 제3의 공간, 동시대의 목소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죠. 그러다 문득 제가 발견한 세계의 소리 대부분이 일방향적이라는 생각이 일었습니다. 특히 일반적인 저널리즘에서 활용되는 사운드의 기록과 전달 방식은 대개 아나운서의 깔끔한 발화와 이미지 아래 깔린 소리는 분위기를 유도하는 BGM으로서만 기능한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사건의 사실적인 소리와 이미지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은 자연스럽게 새로운 작업으로 이어졌습니다. ‘동시대 사회 현상에 배제되고 가려진 소리는 무엇일까’, ‘소리를 기록하고 재현하는 것 역시 의미를 지닐 수 있지 않을까’하고 말이죠. 그렇게 사운드 르포르타주라는 장르 연구와 창작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동시대 현상에 대한 청각적 탐사보도와 사건의 본질을 소리로 치환하는 방식을 찾아나가는 저만의 과정을 찾아가고 있어요. 이를 토대로 개인의 역사적 서사를 기반으로 한 <잔상: 사라진 소리의 연대기>, 기후와 일상의 역추적기를 다룬 <상승과 소멸 2023><Glacier Buildinngs> 등 사운드 아트 작품을 제작했죠.




일상의 소리 디자인하기

이미지 출처: Hear the World Foundation

그렇게 여러 사운드 창작 작업을 해오면서 소리에 민감해진 걸까요? 문득 일상 속 생활 환경은 이상할 정도로 청각적인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청각에 민감한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 환경이었죠. 맥락을 고려하지 않는 소리가 즐비해 있는데, 도심 속에서 듣는 문화라는 건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 어떤 소리가 의미를 지니는 소리일까? 이런 물음 끝에 저는 ‘사운드울프’라는 브랜드를 만들기에 이릅니다. 소리 경험, 문화를 재고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의 필요성을 느낀 겁니다. 그렇게 시작한 이 사업은 듣는 문화, 통칭 ‘도시인들을 위한 청감 문화’(sound culture for city people)라는 방향성을 잡았어요. 내가 바라보는 세계를 소리와 음악을 매개로 표현하는 작품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일상 어디서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여러 방식을 모색하는 것이죠.




공간의 이야기를 담은 소리  

사운드울프 로고, CI. 이미지 출처: 사운드울프



공간이 지닌 문화와 맥락은 도시의 정체성입니다. “공간은 경험이다”라는 말이 있듯, 공간은 더 이상 일률적이고 획일화된 목적을 갖지 않아요. 코로나 시대 이후 오프라인 공간이 재부상한 것도, 많은 사람들이 특정 공간에서만 감각할 수 있는 고유한 경험을 원한다는 점을 방증합니다. 그렇지만 소리는 어떨까요? 소리는 인식하는 순간 부정할 수 없이 경험의 선호도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합니다. 잘못 디자인된 소리는 소음이 될 수 있고, 이런 점은 그 공간을 다시 찾고 싶지 않게 만드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죠.



그럼에도 우리 주변의 많은 공간을 채우는 소리들은 일률적인 배경음악 활용에 머뭅니다. 단순히 분위기를 유도하기 위한 배경 음악이 아닌, 가장 직관적 감각인 청각을 활용하여 공간의 숨은 판타지를 표현해 보면 어떨까요? ‘사운드울프’의 발단은 어쩌면 몽상에 가까운 상상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점차, 그 고민은 구체화된 방법을 실험, 연구하는 것으로 연결됐죠.




사운드마크와 청각적 쉼터

제가 사운드울프에서 처음 시도해 보고자 한 것은 현시대의 ‘사운드마크’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소리는 향유자와 감정적으로 연결되며 물리적 공간 너머의 상상 역시 가능케 합니다. 숲속에 있는 게 아니더라도, 새소리나 시냇물 소리를 들으면서 한적한 숲 한가운데 있는 경험을 느낄 수 있죠. 이렇듯 장소의 정체성을 담아낸 사운드를 곳곳에 배치해서 사람들이 더 입체적인 청취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의미와 맥락이 부재한 소리에 둘러싸이는 경험이 아니라, 잠시 멈춰 향유자들이 공간의 소리와 내밀하게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을 말이에요.


사운드울프만의 방식으로 변주된 사운드마크는 공간이 지닌 고유한 내러티브와 특성, 소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시그니처 사운드인 동시에 ‘청각적 쉼터’를 표방합니다. 특정 공간을 새롭게 체험할 수 있게 해주는 사운드 기반 설치물, 음악, 오디오 비주얼, 혹은 소리 그 자체죠. 환상성을 필두로 한 제한 없는 상상을 더해 “소리 식물”, “소리 향수” 등 독자적 색채와 개성을 지닌 사운드마크 모델을 개발하며, 소리를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아울러 다각적으로 구현합니다.




PAUSE AND LISTEN

2022년에 개최된 전시 〈소리 정원〉 스케치 (클릭)

지금까지 소개한 작업들은 모두 소리를 필두로 하지만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오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제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건 중앙화되고 균질화된 소리에서 벗어나는 것이에요. 소리가 분위기 형성을 위한 기능적 역할이 아닌, 새로운 세계와 연결해주는 포털로 자리할 수 있는 저만의 방법을 찾는 중에 있어요. “PAUSE AND LISTEN”. 수없이 많은 자극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잠시 멈춰서 귀를 기울일 시간을 선사하는 것을 목표로요. ‘나는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나의 관객은 누구일까?’라는 질문 하에, 자극적이고 재빠른 삶 속에서 잠시라도 소리를 통해 자신만의 정원을 그려낼 수 있도록, 그런 정원을 도심 곳곳에 심어보려고 해요. 일상 공간 속 소리를 통해 오롯한 자신만의 순간을 선사하길 바라면서요.







59호_VIEW 2024.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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