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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샵레터 Dec 19. 2024

음악학자 계희승 인터뷰 PART II

작곡가의 문제, 음악이론가의 질문

      

                         계희승·에디터S

                   공동연구원·책임편집





일시: 2024년 10월 15일 (수) 15시-17시
장소: 한양대학교 제2음악관 계희승 교수 연구실


벌써 학위를 딴 지 3년이 다 되어 가지만, 강의실에 앉아 계희승 선생님의 수업을 듣던 때를 선명하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네, 저는 〈씨샵레터〉의 편집자이기 이전에 대학원에서 음악학자 계희승 선생님의 수업을 매 학기 수강한 제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수업은 읽을거리가 많은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개강을 앞두고 먼저 받아 든 강의계획서를 보고 있자면, 이것을 과연 한 학기에 끝낼 수 있을까, 걱정 먼저 들기도 했죠. 또 때로는 믿을 수 없이 넓은 관심사에 놀라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인데 어떻게 그토록 다양한 것에 관심을 둘 수 있는 것일까. 그 폭넓은 관심은 그의 책장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음악 관련 서적을 물론이거니와 철학, 과학, 의학 서적과 심심풀이 매거진까지. 한편에는 저로선 읽을 수조차 없는 일본어책도 꽂혀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읽을거리를 많이 내어주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죠.


음악학자 계희승과의 인터뷰 PART II에는 작곡가이기도 했던 음악학자 계희승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의사를 준비하던 어린 시절부터 피아니스트와 작곡가를 거쳐 음악이론가가 되기까지. 이 일련의 이야기는 그의 삶에 궤적처럼 새겨져 있는 넓은 관심사, 달리 말하면 새로운 것을 향한 끊이지 않는 호기심을 투명하게 보여줍니다. 지난 달 공개된 인터뷰 PART I “의사가 될 뻔한 음악학자 이야기”에는 음악학자 계희승의 어린 시절 기억부터 작곡가가 된 여정이 담겼는데요. 인터뷰 PART II는 줄리아드 입학 후 작곡가 밀튼 배빗과의 작곡 레슨부터 음악이론가가 되기까지, 그리고 음악이론가로서의 심도 있는 질문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조명합니다.



밀튼 배빗과의 작곡 레슨

에디터S: 대학 생활에 대해서도 듣고 싶어요. 이제 본격적으로 작곡을 공부하기 시작한 거잖아요. 밀튼 배빗(Milton Babbitt, 1916~2011) 선생님과의 만남은 어땠는지도 궁금해요.

계희승: 일단, 줄리아드에 원서를 쓸 때 원하는 지도교수를 1지망부터 3지망까지 쓰게 되어 있는데, 저는 1지망, 2지망, 3지망에 전부 배빗, 배빗, 배빗 적어서 냈어요. 그때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 상주하던 입학 사정관이 있었는데, 절대 그러지 말라고 했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배빗이랑 안 할 거면 거기 갈 이유가 없었어요.


서류 심사에 합격한 후에는 작곡가 선생님 다섯 명과 1:1 인터뷰가 있었어요. 배빗하고 할 차례가 돼서 들어갔는데, 별로 관심 없는 것 같더라고요. 사전에 악보 제출한 것도 있었지만 들어본 것 같지 않았고요. 그러다 인터뷰가 끝나갈 때쯤 “그래서 너는 최근에 어떤 음악을 들었니?” 이렇게 묻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엔 퍼니호흐(Brian Furneyhough) 곡이 좋아서 듣고 있다”고 했더니 갑자기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고등학생이 퍼니호흐 거론하는 건 들어본 적 없다면서, 그제서야 제 음악을 들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쓴 음악이, 짧았지만, 명확한 논리를 갖고 썼던 곡이거든요. 배빗이 기가 막힌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던 게, 곡의 전반부에 나왔던 모든 수수께끼가 딱 해결되는 부분 딱 듣더니 “네가 뭘 하려는지 알겠다” 그러고서는 “퍼니호흐 음악 좋다고 하고, 음악도 이런 식으로 쓰는 거 보니 너 책도 많이 읽겠구나. 요즘에 뭘 읽었니?” 하고 묻더라고요. 음악도서관에 가면 악보도 많지만, 그 옆에 학술지 같은 것도 많았거든요. Perspectives of New Music 이런 거 그땐 뭔지도 모르고 막 봤었어요. 그래서 “조엘 레스터(Joel Lester)의 20세기 음악 테크닉에 관한 책 재밌게 보고 있고, 최신 정보는 Perspectives of New Music 이런 데서 보고 있다”고 했더니 막 웃으면서 다음 학기에 보자고 하더라구요.


계희승 교수 연구실에서. 이미지 출처: 에디터S

에디터S: 작곡가로서의 대학 생활은 어떠셨어요? 


계희승: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확인하고 싶은 게 하나 있었어요. ‘내가 혹시 운이 좋아서 여기 붙었나, 아니면 내가 붙을 만한 최소한의 실력이 있는 건가’ 하는 거였어요. 마침 작곡과에서 매년 열리는 관현악 작품 컴피티션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거기 선정된 작품은 링컨 센터에서 연주되고요. 학년 제한이 없어서 학부 1학년부터 박사 과정까지 다 낼 수 있었어요. 그걸 해 봐야겠다 싶어서 1학년 1학기 동안은 그 작품 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어요. 그랬는데 그게 된 거예요. ‘그렇지, 이건 실력이었어’ 그렇게 생각했어요. 물론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것 역시 다 운이었지만요. 하여튼 그렇게 해서 1학년 2학기 때 링컨 센터에서 제 작품이 연주됐고, 그렇게 1학년이 끝났어요.


그러고서 2학년부터 4학년까지는 방황의 시간이었어요. 굉장히 새로운 곡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강했는데 그게 잘 안 돼서 곡을 설계하는 데만 거의 한 학기 다 보내는 식이었어요. 레슨 때 지금 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지 이야기 하는데, 그러면 배빗은 뭔가를 자꾸 읽어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계속 읽다 보면 ‘내가 바본가?’ 하는 순간이 온단 말이에요. 무슨 말인가 하면, 보통 학부생들이 그러잖아요. ‘아, 나는 음악에 대해서 모든 이치를 깨달았어.’ 그러고 있을 때였는데, 정말 좋은 이론가가 쓴 정말 좋은 글들을 읽다 보면,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쥐 오줌 만큼도 안 된다는 걸 자꾸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런 글들을 읽을 수록, 음악에 대해 아는 게 많아질수록 곡 쓰는 게 겁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내가 이 정도까지 치밀하게 음악을 쓸 수 있나’ 그런 생각을 한 거예요. 물론 그럴 수록 더 집요하게 곡을 썼어요. 4학년 때는 1년에 곡을 이렇게 많이 쓴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곡을 정말 많이 썼어요. 지금까지 생각했던 건 일단 전부 다 곡으로 옮겨야겠다 싶어서 그걸 실천한 거예요.




새로운 듣기를 지향하는 음악분석

에디터S: 작곡만이 아니라 글도 많이 읽으셨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들을 읽으셨는지 궁금해요. 음악이론가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특정 글일 수도 있겠고요. 선생님께 인상 깊이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계희승: 당연히 있죠. 몇 가지 있어요. 지금까지도 저한테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이론가 데이비드 르윈(David Lewin)이에요. 음악이론가들이 쓴 글을 보면 대부분 둘 중 하나에요. 아주 이론적이지 않거나, 이론적인데 별로 음악적이지 않거나. 그런데 르윈의 글은 치밀한 이론을 바탕으로 한 분석인데 너무나 음악적이었어요. 그 글을 읽으면 ‘이 사람은 자신이 뱉은 말들을, 말하자면, 정말로 실천하는 사람이구나’ 이런 걸 느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정말 이 사람은 음악을 어떻게 듣는지가 절실한 사람이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그게 지금도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이론 내지는 분석이에요.



에디터S: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계희승: 보통 20세기 음악 분석한 글은 종이 위에서 보면 그럴 듯해 보이는 경우가 많잖아요. 앞에 나온 이것과 뒤에 나온 이것이 어떤 관계가 있고, 또 그 관계가 다른 곳에서도 나오고… 이런 식으로요. 다 좋은데, ‘그래서 그 관계를 들을 수 있어?’ 정도의 문제만이 아니라, ‘이게 정말 더 나은 듣기 내지는 새로운 방식의 듣기를 지향하는 분석인가?’를 생각해 보면 대부분 아니라고 답할 수밖에 없단 말이에요. 그런데 르윈의 분석은 모든 게 듣기에서 출발해서 듣기로 끝나는, 그런 분석이었어요. 그 분석에 따라 음악을 들으면 이렇게 들을 때와 저렇게 들을 때 한 음악이 어떻게 다른 음악이 되는지, 그런 것들을 배운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잘 모를 텐데, 르윈이 20세기 음악만 하드코어하게 수학적으로 다룬 걸로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조성 음악 분석도 많이 한 사람이고, 또 르윈이 하버드에 있을 때 유명했던 수업은 바흐 코랄 분석 수업이었어요.



에디터S: 저 르윈을 잘 모르니까 그냥 아무렇게나 여쭤볼게요. 르윈의 이론적 방법론이 있나요? 그러니까, 일반적으로 폭넓은 음악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이론을 확립하는 게 음악이론가에게 중요하면서도 도전적인 목표라고 할 때, 르윈의 경우도 그런 식으로 정립된 이론이 있나요? 현대음악만이 아니라 조성음악, 그리고 바흐 코랄 이런 음악 분석도 다룬다고 하셨는데 이런 것들은 하나의 툴로 설명하기 어려운,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은 음악들이잖아요. 


계희승: 그걸 다루는 게 『일반화된 음정들과 변환들』(Generalized Musical Intervals and Transformations, 1987)이라는 책이에요. 보통 약자로 GMIT라고 부르는데요. 변환이론이라고 하죠. 이 책에는 그 이론에 관한 A부터 Z까지 다 들어 있어요. 아주 기초적인 내용부터 시작해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저 먼 곳까지 가요.


(좌): GMIT 표지 / (우): GMIT의 일부.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이렇듯 복잡해 보이는 공식과 도식을 찾을 수 있다. / 이미지 출처: 에디터S


에디터S: 첫 장을 'Mathematical Preliminaries'로 시작해서 저는 금방 닫아버리게 되는데요. 

계희승: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첫 장을 딱 펴고서 다시 금방 덮고는 다시 쳐다보지 않지만, 그 두려움을 약간 무시하고 정신 바짝 차리고 읽어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에디터S: 르윈은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정말 달라 보이는 폭넓은 음악들을 이 이론으로 분석한다고 이해하면 될까요? 


계희승: 기본적으로는 그래요. 르윈의 변환이론은 어떤 음악이 됐건 이론을 음악에 대입하면 답이 나오는, 그런 식의 도구라기 보다는, 음악에 대한 사고 자체에 전환을 가져다 준다는 것에 더 가까워요. 이 책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렇다고 제가 다 이해했다는 건 아니겠지만) 혹은 이 책을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자주 인용하는 도식이 있어요.



에디터S: t는 time인가요? s는 space? 


계희승: 그렇지 않고요. s와 t는 말하자면 집합이에요. 쉽게 생각하면, 하나의 음들의 집합 혹은 화음들의 집합일 수도 있고, 아니면 조성의 집합일 수도 있겠죠. 어쨌건, 그 음악의 정체성(identity)을 갖고 있는 것들의 집합을 의미해요. t는 또 다른 음악적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들의 집합이라고 볼 수 있고요. 그렇다고 할 때, 지금까지 대부분의 음악이론은 s와 t가 무엇인지, 그것들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혈안이 되어 들여다봤다면, 르윈은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봐야 할 건 s와 t 사이에 있는 화살표, i에요. 여기서 i는 인터벌(interval)인데요. 르윈은 s라는 음악적 정체성에 무엇을 했을 때 또 다른 음악적 정체성을 갖는 t가 되는가를 살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게 하나의 음에서 또 다른 음이 될 수도 있고, 화음에서 화음이 될 수도 있는 거죠. 어떤 음악적 집합(s)이 있을 때 거기에 무엇을 했기에 다른 음악적 집합(t)이 나오느냐에 관한 것이 이 책 전반에 걸쳐서 하는 이야기에요. 그렇게 생각하면, 분석하려는 음악이 조성 음악이 됐건, 조성이 없는 음악이 됐건 장르 불문하고 어디에도 대입할 수 있겠죠. 



에디터S: s에서 t라는 게 하나의 음악 전체일 수도 있고, 아니면 섹션에서 섹션, 더 작게는 프레이즈에서 프레이즈일 수도 있는 건가요? 


계희승: 그럴 수 있겠죠? 심지어는 한 작품과 다른 한 작품일 수도 있어요. 이 이론을 이해하고 나면, 이를테면 베토벤 같은 작곡가가 여러 차례에 걸쳐 어떻게 소나타 형식을 실험했는가가 보이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1번 ‘발트슈타인’ 1악장의 소나타 모형하고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다른 소나타 1악장이 하나 더 있어요. 16번 1악장에서 실험한 소나타 형식을 21번 1악장에서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보면 베토벤이 어떤 작곡가인지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에디터S: ‘모형’이라는 게 ‘구조’ 같은 건가요? 


계희승: 구조라고 이해해도 되고요. 그러니까 음악의 구체적인 요소들을 다 지우고, 모양만 놓고 보면 두 소나타가 완벽하게 포개지거든요. 이런 걸 보면, 두 소나타의 전체적인 모양은 같지만 베토벤이 그것을 구현하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차이 나는지, 이런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거죠. 




'안다'는 것의 한계

에디터S: 르윈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작곡에서 음악이론 이야기로 넘어온 것 같은데요. 음악이론가로서 선생님의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음악이론가로서의 학문적 목표라든가요. 

계희승: 사실 저는 곡을 더 잘 쓰고 싶어서 이론 공부를 시작했어요. 음악에 관한 아이디어는 명확한데 이걸 소리로 구체화할 수 있는 테크닉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전 석사까지도 작곡을 전공했지만 제가 석사를 공부한 학교는 음악이론으로 더 유명한 학교였고, 그때 사실 이론 전공하는 친구들보다 이론 수업을 더 많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이론을 열심히 공부했던 그때 저의 궁극적인 목적은 곡을 더 잘 쓰고 싶어서였던 거죠.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긴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곡을 쓰고 싶은 욕구가 아직 조금은 있는 것도 같아요. 요즘 그냥 막연하게 ‘은퇴하면 뭘 하고 있을까’, 생각하면, ‘곡 쓰고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이 최근 들어 조금씩 들더라고요.



에디터S: 음악이론 공부가 작곡하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었나요? 


계희승:  그게 어려운 문젠데, 애초에 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어요. 당연히 이론 공부가 작곡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했지만, 알면 알수록 곡 쓰기가 어려워지는 문제도 생기니까요. 어려워지는 건 뭐 그런 걸 거 아니에요. 너무 뻔히 아니까, 그리고 더 잘 쓰고 싶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테크닉이 필요해서 공부를 했는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것과 더 멀어지게 되는… 그런 상황인 거죠. 어느 정도 이상의 치밀함을 갖는 작품을 쓰고 싶고, 또 이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좀 알겠고, 그러면 그걸 곡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알게 된 만큼 쓰고 싶은 음악의 이상도 다시 한번 멀어지는 것 같으니. 뭐 그런 어려움이 있죠.

계희승 교수 연구실. 이미지 출처: 에디터S


에디터S: 무슨 말씀이신지 이해가 가요. 현직 작곡가만큼이나 작곡 공부를 치밀하게 하셨지만, 그럼에도 지금은 음악학자로서, 음악이론가서로서 자리매김하고 계시잖아요. 작곡과는 별개로, 음악이론가로서의 선생님의 질문이 무엇인가도 궁금해요. 


계희승: 요즘 자꾸 던지는 질문은 이런 거예요. 아시겠지만, 우리가 아직 음악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을 어느 순간 뼈저리게 느끼게 되잖아요. 아는 게 별로 없다는 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어요. 역사적으로 우리는 아는 게 거의 없어요. ‘거의 없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에요.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아요. 그게 역사적 관점에서도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어떤 음악이 왜 그런 식으로 완성되었을까’에 대한 질문에 있어서도, 전 여전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작곡가가 아닌, 그러니까 표준 레퍼토리에 포함되지 않은 작곡가의 음악을 많이 듣다 보면 그렇게 생각하게 돼요.


 전 그렇게 표준 레퍼토리에 포함되지 않는 작곡가의 작품을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이 듣는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듣거든요. 그러면 어느 순간 보인단 말이에요. 들린단 말이에요.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작곡가들 사이 사이에 난 구멍들, 그러니까 베토벤 시대에 베토벤과 다른 식으로 음악을 했던 사람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음악이 베토벤의 음악과는 아주 달랐다는 것이 들린다는 거죠. 그럼 이렇게 물을 수 있잖아요. ‘이 사람들은 음악을 왜 이렇게 썼을까?’ 혹은 ‘왜 베토벤의 음악은 살아 남고 이 사람들의 음악은 사라졌을까?’


KBS Classic FM 2022년 여름음악학교 건반 위의 클래식 진행 장면. 이미지 출처: 유튜브 KBS Classic FM 영상 캡처

에디터S: 선생님이 KBS 클래식 FM 라디오 출연도 오랫동안 하고 계시잖아요. 〈KBS음악실〉에서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1)로 매주 방송하시는데요. 그 방송에서 베토벤 시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가의 작품을 많이 소개하시더라구요. 라디오에서 그 코너를 운영하시면서 그 엄청난 양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시간도 확보하셨을 것 같고, 또 잘 알려지지 않은 음악들의 스펙트럼도 넓어지셨을 것 같은데요. 라디오를 통한 활동이 선생님이 가진 문제의식의 계기가 된 건가요? 

(1) 안타깝게도 KBS 라디오의 다시 듣기 서비스는 종료되었지만, 〈KBS음악실〉의 ‘계희승의 음악 허물기’ 코너에서 소개되는 음악을 여기에서 들어볼 수 있어요.


계희승: 아주 확실하게 그렇다고 얘기할 수 있어요. 라디오를 시작했던 초반에는 사람들이 잘 모를 만한, 그렇지만 너무 좋은 음악들을 소개하는 게 취지였어요. 그리고 거의 20세기 음악 위주로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소개할 수 있는 음악은 좀 한정적이더라구요. 그래서 사람들이 잘 모르지만 들어볼 만한 음악을 소개하는 것이 이 코너의 기조니, 그걸 굳이 20세기에 한정하지 말자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어요. 그러면서 베토벤 동시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들의 음악을 정말 많이 듣게 된 거죠.


 그 음악들을 그렇게 늘 듣다 보니, 라디오 출연 3~4년 정도 지났을 때 이제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그 시대의 여러 관계 아닌 관계들, 그리고 그동안 서양예술음악 논의에서 제외되어 왔던 것들이요. 그래서 이 작업을 단순히 일주일에 한 번 라디오 진행을 위해서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해 볼 가치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코너를 위해 일주일에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하는데, 이걸 어떻게든 제 연구와 연결해 보면 좋겠다 하는 의식적인 부분도 있었고요. 저 혼자 스스로 설득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진짜 학자라면 이게 분리되어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요. 자기합리화인가 싶어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에디터S: 그런 관심들이, 선생님이 〈언뮤 뉴스레터〉(2)에서 소개한 필립 유엘(Philip A. Ewell) 관련 논쟁(3)과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학자인 필립 유엘이 미국 음악이론계의 백인우월주의를 꼬집으면서 논란이 시작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선생님이 라디오 코너를 통해 하시는 작업이 넓게는 중심과 주변의 문제라고 할 때, 필립 유엘의 논의도 커다란 맥락에서는 그 문제와 결부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의 여러 글에서, 각 글들이 다루는 중심 주제는 전혀 다르더라도, 이 논쟁에 대한 관심을 살펴볼 수 있더라구요. 방금 언급한 〈언뮤 뉴스레터〉만이 아니라 지난 씨샵레터 제65호 VIEW에 실린 "베토벤은 위대하다는 착각"이나, 2022년 논문 ""베토벤 계속 들어야 해?": 영화 ≪헌트≫의 수사적 질문에 대한 음악학자의 변(辯)", 또 2023년 논문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을 위한 공개음악학" 같은 글들의 주제는 아주 다르지만 서로 다른 맥락에서 꾸준히 유엘 논의를 끌어들이시니까요. 

(2) 〈언뮤 뉴스레터〉 제7호 (2021.08.23) 
〈언뮤 뉴스레터〉는 음악학자 계희승 선생님이 2021년 매주 한 번씩 정기적으로 발행하던 뉴스레터입니다. 제19호까지 발행되었고 지금은 발행 중단되었지만, 지금 읽어 봐도 여전히 유용하고 의미 있는 내용이 많아요. 기 발행된 뉴스레터는 여기를 눌러 확인할 수 있어요.

(3) 이 논쟁과 관련해서는 이 글들을 참고해 보세요.
계희승, “베토벤은 위대하다는 착각” 씨샵레터, 제65호 VIEW.  
계희승. ““베토벤 계속 들어야 해?”: 영화 ≪헌트≫의 수사적 질문에 대한 음악학자의 변(辯).” 『음악논단』 47 (2022): 1-26.   
신동진. “쉔커식 분석이론을 둘러싼 북미 음악이론계의 ‘백인종 프레임’(White Racial Frame) 논란.” 『음악이론포럼』 28/1 (2021): 163-184.   
Ewell, Philip A. “Music Theory and the White Racial Frame.” Music Theory Online 26/2 (2020)
지금은 발행이 중단된 〈언뮤 뉴스레터〉(계희승 발행)의 제13호 일부. 이미지 출처: 뉴스레터 캡처

계희승: 스티브 잡스가 이렇게 말했잖아요. ‘창의성은 점들의 연결’이라고요. 스티브 잡스가 말해서 유명해진 거긴 하지만 사실 훨씬 전에 다른 사람이 한 말인데요. 점들은 늘 같은 곳에 있고 그 점들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것이 나온다는 거죠. 제가 작동하는 방식이 약간 그런 거 같아요. ‘이것에 관심을 가지면 내 음악 공부에 도움이 되겠다'라는 목적으로 공부를 시작하지는 않아요. 그냥 그때 그때 ‘이거 재밌겠다’ 싶으면 파고드는 거고, 그래서 이것저것 관심이 많기도 하고, 그러다 보면 저에게 점들이 많아지겠죠? 그러면 그 점들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연결하게 되고요. 이런 식으로 반쯤은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앞에서 한 베토벤 이야기 마저 하자면, 진짜 궁금하잖아요. 베토벤이 정말로 뛰어난 혁신가라는 건 맞는데, 그렇지만 베토벤은 마지막까지 음악을 어렵게 썼던 사람이라는 건 명확하거든요. 그러니까 베토벤은 음악 잘 못 썼던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잘 쓰고 싶어했던 사람이고, 잘 쓰고 싶어서 온갖 것을 다 생각해 본 사람인 거죠. 베토벤 음악을 들어보면, 그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음악은 전혀 아니에요. 매끄러운 것도 아니고. 이렇게 저렇게 뜯어 고치고 고치고 해서 약간은 누더기 옷처럼 좀 조잡하게 들려요. 그게 매력적이라고 한다면 매력적이지만, 그 시대에 베토벤보다 훨씬 좋은 음악을 쓸 수 있던 작곡가들이 수두룩했다는 것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사람들이 종종 ‘오늘날까지 기억되는 작곡가들은 시대를 앞서간 사람들이다’ 이렇게 말하는 걸 듣곤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게다가 저는 지루한 걸 잘 못참고, 그래서 뭐든 금방 질려하는 사람이고(그래서 전공도 피아노에서, 작곡에서, 이론으로 바뀌었고, 심지어 고등학교는 두 군데나 다녔어요), 새 거 좋아하고 그러니까.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이 아닌 좋은 음악 쓰는 작곡가를 만나면 너무 신나는 거예요. 처음 들어보는 음악인데 ‘너무 좋다’, 그러면 일단 음악이론하는 사람으로서 좀 더 알고 싶고 ‘이 음악은 왜 이렇게 좋지?’부터 시작해서 ‘근데 이 음악은 왜 기억되지 않지?’ 이렇게 되는 거죠.




"인생의 8할은 다 운이에요"

에디터S: 재미있네요. 베토벤이 지금까지 중요한 작곡가로 남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추적하다 보면 '당대 혹은 지금까지 지나온 시기에 중요했던 가치가 무엇인가'도 자연스럽게 드러날 것 같아요. 동시에 ‘그렇다면 소외되어 온 가치들은 또 무엇인가’ 이런 것도 밝혀지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고요. 

계희승: 그래서 진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베토벤이 천상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나 같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고 베토벤의 삶을 생각하면, 그게 저절로 궁금해지거든요. 경제학자 김현철 교수는 “인생의 8할은 다 운”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어릴 때 어디에 살았고, 어떤 친구들과 어울렸고, 중간에 거쳐 가는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 누가 있었는지 이런 것들이 모두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요소인데, 베토벤에게는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을 리 없잖아요. 



에디터S: 그런 생각을 담은 것이 아까 잠깐 언급한 “베토벤은 위대하다는 착각”(씨샵레터 제65호)인 것 같아요. 이 글에 대해 좀 더 이야기 듣고 싶어요. 오늘 한 이야기의 많은 부분들이 이 글에 조금씩 다 담겨 있잖아요. 베토벤 이야기나 유엘 관련 논쟁, 그리고 운에 관한 이야기까지. 


계희승 교수 연구실에서. 이미지 출처: 에디터S

계희승: 운에 관한 이야기는 김현철 교수의 책 『경제학이 필요한 순간』(김영사, 2023)에 나오는 내용이에요. 의사 출신 경제학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요. 인생에서 운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학술적으로 명확하게, 납득할 수 있는 자료를 바탕으로 보여주는데, 그 주장에 따르면 모든 게 다 운이에요. “베토벤은 위대하다는 착각”에서도 그런 이야기 하는 거예요. ‘베토벤이 지금의 베토벤일 수 있던 것은 결국 다 운이 아니겠느냐.’


그 글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에 못 했던 게 있다면, 뭐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누구나 다 그런 시기가 있지 않을까 싶지만, 저도 한 30대 중반까지는 모든 게 제 능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만난 상황들, 혹은 좋은 결과들이 제가 잘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30대 후반 넘어가고, 40대를 지나면서 아주 진심으로, 진지하게, 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깨달았어요. ‘나 정말 운이 좋았구나.’ 


이것에 대해 돌이켜 보면서 쭉 정리할 시간이 있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보통 그런 건 어느 날 갑자기 탁 오거든요. ‘현타’라고 하죠. 김현철 교수도 이렇게 이야기해요. 인생의 모든 순간들이 다 다른 방식으로 풀릴 수 있었는데, 누구도 예측 못 한 어떤 우연한 계기들로 지금의 삶을 살고 있다고요. 저도 그랬던 것 같더라고요. 이를테면 ‘내가 만약 퍼니호흐 음악 안 들었으면 줄리아드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이런 거죠. 그런 우연의 계기들은 너무 너무 많아요. 내 능력으로 성취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뒤에서 힘이 되어주는 분들이 있었다든지, 그런 식의 크고 작은 일들이 아주 많다고요. ‘내가 잘 나서라기보단 사실은 모든 게 운이었구나’라는 걸 인정할 수 있게 되면서 마음도 편해졌어요. 무언가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 그런 상황을 좀 더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까요. 물론 그렇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 경우 대부분은 제가 알아요. 충분한 시간을 쏟지 않았거나 원하는 만큼의 완성도가 나오지 않았지만 적절하게 타협했거나, 그런 점들도 있었다는 걸요. 그렇지만 ‘그런 것에도 다 운이 작용했겠구나' 생각하면 타격감이 그리 크지 않은 것 같아요.


‘인생의 8할은 운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막살아도 될 것 같잖아요. ‘어차피 운인데 노력은 뭐 하러 하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에디터S: 그러니까요. 글의 결론부에서 또 다른 이야기를 덧붙이시잖아요. 


계희승: 운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영역 밖에 있는 문제에요. 결국 내가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건 노력뿐이에요. 내가 아무리 내 인생을 치밀하게 계획하고 설계해도 그게 실현되고 말고는 나의 능력 밖의 일인 거죠. 그런데 요즘엔 그 계획을 설계하는 데 너무 혈안이 되어서 본질을 놓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에디터S: 인생에 관한 한 대부분이 다 운인데, 그리고 그 운은 내가 어찌할 도리가 없는 건데,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말이 되게 좋더라구요. 위로가 되는 것도 같고요. 또 그런 생각이 선생님에게 중요한 여러 관심과 맞물려서 나왔다는 것 역시 독자로서 흥미로운 점이기도 했어요.

이야기가 좀 길어졌는데, 마지막 질문드리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할까 해요. 좀 거창한지 모르겠지만, 음악학자로서 선생님의 꿈은 뭔가요? 


계희승: 그런 게 있을까? 음. 궁극적인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게 학자로서의 꿈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적절한 단어가 생각이 잘 안 나는데… 조금 더 재미있게 음악에 관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거기에 기여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도? 그 방법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72호_VIEW 2024.12.19.

계희승·에디터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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