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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샵레터 Jun 29. 2023

조율이란 무엇인가

40호 VIEW


                                       

                                    글 ∙ 에디터 S

                                              에디터





이 글은 음악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저의 이야기에요. 그렇지만 저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니 어쩌면 음악에 관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악에 관한 것이든 그렇지 않든,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제 이야기에 귀 기울여 줄 것 같았어요. 이 지면에 이런 글이 어울릴까 한참을 머뭇거렸습니다. 마감을 사흘 앞두고서야 자판을 두드리는 이유입니다. 제 이야기는 6월 초 다녀온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전시 ‘전자적 숲; 소진된 인간’에서 시작됩니다.





어리숙한 중생의 명상 체험기


‘전자적 숲; 소진된 인간’은 5월부터 내년 2월까지 4부에 걸쳐 진행되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장기 프로젝트입니다. 전 ‘1부. 백남준과 함께 (전자)명상하기’, 그중에서도 1-3 ‘<블루부처>의 허밍’에 다녀왔어요.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 <블루부처>에 살라만다, 씨피카, 아나 록산느 세 아티스트의 앰비언트 음악이 결합된 전시였어요. 전시? 흠. 글쎄요. 전시를 가장한 명상 체험이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하겠네요. 전시장에는 부처를 형상화한 미디어 아트가 놓여 있었어요. 여러 대의 작은 텔레비전 화면 속에선 수많은 이미지들이 쉴 새 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현란하게 재생되고 있었고요.


‘<블루부처>의 허밍’ 전시장 ⓒ 에디터S 직접 촬영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는 걸 보니 이제 시작인가 봐요. 텔레비전 속 이미지들을 응시하면서 소리를 들었어요. 사실 무얼 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저 백남준의 <블루부처>가 음악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팔짱 끼고 삐딱하게 관찰해보는 것 밖엔요. 그렇지만 얼마 안 가 화면 속 빠르게 스쳐 가는 이미지에 눈이 피로해지기 시작했어요.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는 소리에 온 감각을 집중시켰어요. 15분쯤 지났을까? 슬슬 지루함이 몰려옵니다. ‘하, 이거 한 시간이나 들어야 하는데. 벌써 지루하면 어쩌지? 이미지도 대강 봤고, 소리도 좀 들었고. 이제 뭘 더 해야 해?’ 무얼 하든 그것을 하는 ‘이유’, ‘목적’이 필요한 제게 가만히 있는 시간은 그 자체로 쉽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아! 지금 할 수 있는 게 생각났어요. 계속 미루어 왔던 스스로의 숙제가 있었거든요. 이전에 비하면 신체도, 정신도 꽤 건강해지고 안정화되었지만 최근 알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이 불쑥 올라와 불쾌해지곤 했었어요. 그게 도대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하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미루던 참이었거든요. ‘지금부터 한 40분. 그 생각을 좀 해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1분 1초도 허투루 쓰지 않겠다!’ 지금에야 돌이켜보니 나란 인간 참 지독하다 싶지만, 어쩌다 보니 그 시간은 제 마음을 가장 투명하게 관찰하는 기회를 가져다주었어요. 음악의 힘일까요? “아무리 가부좌 틀고 앉아 명상하는 흉내 좀 낸다고 해 보았자 마음속은 온갖 너저분한 생각들로 시끄러운 중생들!” 이렇게 비웃는 듯한 백남준의 미디어 부처 앞에서, 발광하는 빛과 요란한 이미지들의 방해를 뒤로 하고 저는 음악 소리와 함께 깊이, 더 깊이 제 마음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지금은 마음속 탐험중


ⓒ Unsplash

여러분. 지금 여기는 제 생각 속이에요. ‘<블루부처>의 허밍’의 전시장 안에서 갈팡질팡 대던 생각은 순식간에 어느 한 시점으로 이동했어요. 때는 바야흐로 박사 논문을 쓰던 약 2년 전. 네, 저의 암흑기입니다. 그때 정말 힘들었거든요. 결과물의 질적 수준이 어떻든 간에, 졸업 논문을 쓰는 그 과정은 저를 몹시 황폐화했습니다. 일도, 공부도 ‘빨리’, ‘잘’ 하고 싶은 욕심이 컸던 게 문제였어요. 겉욕심이라고 하죠. 자기 분수에 넘치게 탐하는 것. 부끄럽기 짝이 없는 졸업 논문을 마친 후 참석한 첫 주일 예배의 설교 주제는 ‘과유불급’이었어요. ‘탁!’ 쇠망치가 머리를 때리는 것 같았어요. 많이 하는 것, 빨리하는 것,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나의 한계가 어디인지를 아는 것, 어디까지 가야 하고 어디서 멈추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라는 말은 제 마음을 뜨겁게 위로해 주었습니다. 악기만 조율이 필요한가요? 어리석은 중생의 한없는 욕심이야말로 조율이 필요합니다.


그 후 저는 ‘과유불급’과 ‘절제’를 제 마음에 새겼어요. 그리고 그러려고 노력했어요. 재미있게 공부하고 열심히 일하고 신나게 놀면서도, 나의 한계를 넘어선다고 생각되면 멈추었어요. 차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주변에서도 좋아 보인다고들 했어요. 안전한 속도와 은은한 에너지. 모든 게 완벽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매끈한 표면에 거칠한 돌기가 도드라지기 시작했어요. 안락한 저를 한 번씩 툭 건드리고는 불쾌한 마음을 일으킨 게 바로 그 돌기였어요. 이게 도대체 뭘까. 가만히 관찰해 보려는 그 순간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서 무언가가 훅 올라왔어요. ‘대충하는 마음!’ 절 불편하게 만든 건 안전한 울타리 안에 어느샌가 자리 잡은 대충하려는 마음이었어요. 그걸 알아차린 순간 믿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이내 생각하기를 멈췄어요. 그냥 느꼈어요. ‘그게 불안했구나.’ ‘무섭고 두려웠구나.’ 음악만 조율이 필요한가요? 대충하는 마음과 공들이는 마음이야말로 적정선을 향한 조율이 필요합니다.





정성을 들이세요


제 마음의 돌기가 무엇인지 알아차린 후로도 계속해서 생각했어요. ‘왜? 좀 편하게 하면 안 돼?’ ‘꼭 잘해야 해?’ ‘많이 하는 게 능사가 아니잖아?’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한 거 아냐?’ 그렇지만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었어요. 대충하는 마음은 남을 속이는 일이었어요. ‘이렇게 아무렇게나 해도 되나?’ 하는 마음은 곧 ‘어? 이게 되네?’ 하는 사기꾼의 마음으로 이어졌어요. 그리고 그 사기꾼의 마음은, ‘대충 해. 아무도 몰라.’ 이제는 나 자신까지 속이기 시작하더군요. 전 그게 무서웠어요. 겉으로는 무언가 그럴듯하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텅텅 비어 위태로운 것. 당장 붕괴되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아슬아슬함. 지난 씨샵레터 37호 VIEW에 실린 정경영 연구소장의 글 ‘챗GPT가 말하는 법’을 읽고 몸 둘 바를 모르겠더군요. 제가 하는 일련의 작업들은 아무 의미 없는 말을 그럴듯하게 늘어놓는 챗GPT의 말하기와 다를 게 없었어요. 정신이 바짝 들었습니다.


ⓒ Unsplash


찬찬히 돌이켜 보니 전 제가 맡은 일이라면 그게 너무너무 중요한 일이든, 혹 좀 가벼운 일이든 정성껏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어요. 바이올린을 하던 시절에는 활 연습, 음계 연습 같은 기초에 가장 많은 시간을 들였고요. 운동을 할 때는 ‘자극을 느끼면서 정성껏 몸을 움직여 보세요’ 라고 하는 요가 선생님의 말이 좋았어요. 그 말을 들으면 정말로 건강해지는 것 같거든요. 그림 그리기를 시작하고서는 선 긋기 시간을 무척 소중하게 여겨요. 오래 전 서예를 할 때도 그랬어요. 글자를 쓰는 일보다 선 긋는 연습이 즐거웠어요. 물의 농도와 붓의 탄력과 종이의 질감이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탐구하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그 시간들이 저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 줄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이렇게 공들이는 마음이 어느 순간 남을 속이고 나를 속이는 사기꾼의 마음으로 변질된 거예요.




인생은 조율 (근데 이제 정묘함을 곁들인..)


저는 이런 제 이야기를 친구들과 자주 나누어요. 부족한 나의 모습이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지는 경험은 불완전한 제 존재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해 주거든요. 사기꾼의 마음에 관한 제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해주었어요. 많이 하고, 빨리하고, 그럴듯해 보이게 하려는, 곧 대충하는 마음은 늘 불안에서 비롯되지만 그 불안이야말로 결국에는 나를 더 나아가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아니냐고요. 그것은 ‘제대로’ ‘정성껏’ ‘공들여’ 하는 마음과 극단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둘을 잘 조율하는 일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요.


ⓒ violinist.com


그분은 제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정묘함’이라는 말이 떠올랐대요. 정묘함? 처음 들어보는 단어였어요. 사전을 찾아보니 ‘깨끗하고 묘하다’, ‘청정하고 무구하다’ 라는 뜻이래요. 여전히 잘 와닿지 않는다고 했더니 ‘농부가 되고자 할 때 진짜 농부가 되는 것’이래요. (응?) 농작물을 건강하게 길러내기 위해 땅을 비옥하게 가꾸고 씨를 뿌리고 참되게 보살피는 것 말이에요. 초심을 잃고 대충하거나, 딴 맘 먹고 수확물로 부자가 되려는 게 아니라요. (아하!) 요령 피우거나 다른 궁리하지 않고 시작한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 전 정묘한 인간이 되고 싶은 걸까요?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해요. (돈도 많이 벌고 싶어요!�) 그렇지만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요? 불순물 없는 안락함은 또다시 사기꾼의 유혹에 빠질 텐데요. 그렇지만 ‘정묘함’을 표지판 삼는 일은 값지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하는 나의 마음이, 나의 태도가 정묘함을 향해 있기를 바라요.











40호_VIEW 2023.06.29.
글 ∙ 에디터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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