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호 VIEW
얼마 전 어떤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가 만난 배우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네요. 어떤 배우가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홍보하면서 꼭 ‘극장’에 가서 보시라고 당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도 꽤나 놀라웠습니다. 처음부터 이 영화가 극장 스크린과 사운드 시스템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는 것이었죠. 아, 그러니까 핸드폰으로 보면 안 되겠구나. 제가 극장에서 구현되는 기술들을 잘 모르니 그냥 끄덕이고 넘어갈 수밖에요.
사실 제 머리는 배우의 논리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보다도, 극장에서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지? 한참이 지나서야, 제가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코로나가 아직 한창이었던 작년 여름, 칸 영화제 수상으로 화제를 모았던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라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최신 영화를 영화관가서 꼬박꼬박 챙겨볼 만큼 영화광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1년은 영화관에 좀 무심했다 싶은 시간인 것 같네요. 이제 코로나도 끝났잖아요!
저만 영화관을 소홀히 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코로나가 끝나면, 옆 사람 팝콘 먹는 소리를 들으면서 함께 웃으며 영화를 보던 시간을 그리워하던 사람들로 극장이 다시 북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마스크 해제와 함께 여행 가는 사람들이 급증했던 것처럼요. 그런데 관련 기사들을 살펴보다 보니,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 관객 수는 지난 몇 년 사이 급감해 있었습니다. 2022년 한 해 동안 영화관을 찾았던 사람은 코로나19의 대유행 이전인 2019년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KOBIS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통계). 올해가 되어서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 6월 ‘범죄도시3’의 흥행이 영화관을 찾는 관객 수를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고는 하지만, 이 수치가 얼마나 지속될지는 예측하기 힘드나 봅니다. (역시 마블리는 못 잃어 ㅎㅎ)
이러한 현상의 배후에는 많은 요인들이 복잡하게 작용하겠지요. 그리고 영화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이 현상을 분석하고 대책을 논의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극장 관람객 수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 것은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와 같은 OTT(Over The Top) 서비스의 대중화였습니다. 요즘에 영화관에서 영화 한 편을 보려면 (각종 카드/멤버십 할인을 제외하고 주말/2D 영화 기준으로 하면) 15,000원은 내야 합니다(아이맥스관이면 22,000원입니다). 영화 관람의 국룰인 팝콘과 콜라를 곁들여서 친구와 주말에 영화 한 편 보려면 4만 원 정도는 지출해야겠네요. 여기에 반건조 버터오징어까지 더하면... 영화 대신 ’차라리 치맥’으로 바뀌는 저 같은 사람도 많을 것 같습니다.
물론 ‘가성비’가 전부는 아닐 겁니다. 하지만 OTT 이용자들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돈보다 훨씬 적은 돈으로 언제, 어디서나 자신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코로나 동안 영화관에서는 음식은커녕, 마스크를 꼭꼭 끼고 영화를 봐야 했죠. 여러분들도 영화관 대신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집에서 배달 음식 잔뜩 시켜놓고 마시고 떠들면서 함께 집에서 영화를 본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각종 숙박업소에도 OTT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호객용 문구로도 등장할 정도였으니까요. 예전에 ‘~ 영화 봤어?’라고 물어오던 이들은 이제 넷플릭스 드라마 같은 특정 OTT의 콘텐츠를 봤냐고 물어봅니다. (넷플릭스 멤버십이 없는 저는 물론 할 말이 없게 만드는 질문이죠. 사회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넷플릭스를 구독해야 한다는 마음이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극장이 낯선 이들 속에 섞여 어두움 속에서 영화가 주는 내밀한 즐거움을 누리는 공간이었다면, OTT 서비스는 영화 보기의 시공간적 제약을 없앴습니다. 물론 내 핸드폰이, 혹은 우리집 거실의 TV가 영화관의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 기술을 구현하지 못하고, 거실 소파가 아이맥스 영화관의 의자처럼 짜릿한 진동을 전해주지도 않습니다. 또한 잘못해서 거실 TV의 볼륨 조정에 실패할 경우 이웃의 항의가 들어올 수도 있는 일입니다.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은 극장에 가는 이유에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람들은 이제 15,000원을 내고 극장에 가야 할 이유를 따집니다. 저에게는 이러한 현상들이 극장이 정말 ‘영화를 보기 위한 장소’였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누군가에게 극장은 친구나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곳이고, 누군가에게는 연인과의 달콤한 데이트의 장소입니다. ‘혼영’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이유는 아마도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 특별하게 여겨졌기 때문일 겁니다.
극장에 닥친 변화가 이 문화를 떠받치고 있는 영화 산업의 위기로 읽히고 있다면, 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이들은 영화 만들기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입니다. 이미 많은 영화인들이 OTT 시장 콘텐츠에 투입되어 왔고,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오징어게임’, ‘더 글로리’ 같은 소위 ‘K-콘텐츠’의 성공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거대 자본이 투자하고 스타 감독이나 작가, 배우 중심으로 돌아가는 OTT 콘텐츠 시장에 진입하기 위한 장벽은 높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예술을 꿈꾸는 신인 예술가들이 이 시스템 속에서 성장하기란 과거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좋은 콘텐츠가 사람들을 다시 극장으로 오게 할 것이라 믿고 있지만, 새로운 디지털 기술에 익숙해진 관객들은 이제 훨씬 더 까다로운 잣대로 극장에 가야 할 이유를 찾을 것입니다. 영화인들은 이제 우리 영화를 지키기 위한 방편으로 정부의 지원을 요구합니다. 위기를 맞은 영화를 지키기 위한 새로운 공적 자금 투여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벌써 시작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오늘날 디지털 문화의 유입과 함께 극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들이 그다지 낯설지는 않습니다. 20세기 초반 녹음 기술의 등장이 콘서트홀, 오페라 극장, 그리고 우리의 음악 듣기에 미친 혁명적인 변화가 오늘날 영화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 속에 투영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네요. 오페라 극장에 가서 오페라를 보는 대신 집에서 음반으로 카루소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졌을 때도 오페라 극장 관계자들은 이러한 현상이 커다란 위기라고 느꼈을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음반에서 나는 카루소의 목소리를 ‘깡통 소리’, ‘박제된 죽은 소리’라고 비난했겠지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다시 오페라 극장으로 돌아오게 만들 수 있을까’를 머리 싸매고 고민했을 것이고, 예술가들에게는 좋은 작품을 써보라고 닦달하기도 했을 겁니다.
새로운 기술은 끊임없이 기존의 문화유산이 뿌리내리고 있는 토양을 변화시켰고, 그 토양 속에서 새로운 싹이 트고, 새로운 생각들이 자라났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오페라를 보고, 영화를 봅니다. 하지만 이들을 보고 듣는 것의 의미는 시간과 함께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극장은 우리에게 무엇일까요? 그리고 영화는, 음악은 무엇인가요? 이제 그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볼 기회가 주어진 것 같습니다.
43호_VIEW 2023.07.27.
글 ∙ 정이은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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