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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선정적인 제목으로 시작해 봤습니다. K-Pop, K-Classic인데 K가 없다니요! 어쩌면 고개를 갸우뚱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K의 정체에 대해 글의 끝까지 함께 가 보시죠. 얼마 전 파행으로 치달았던 2023 새만금 세계 잼버리 대회를 그래도 무사히 마무리 짓게 해 준 것은 마지막 날 개최되었던 K-Pop 콘서트였습니다. 요즘 핫한 아이돌 그룹인 아이브와 뉴진스, NCT드림을 비롯하여 19개 팀이 출연하여, 전 세계 각국에서 모인 청소년의 화합을 도모했죠. BTS(방탄소년단)로 꽃을 피운 K-Pop은 한국을 넘어 국제적인 강력한 문화 콘텐츠가 되었습니다.
이는 비단 대중음악 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 칸 영화제와 베를린 영화제 등에서 홍상수,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주목받기 시작하더니, 2020년에는 봉준호 감독이 비영어 영화인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을 수상하면서 한국 영화의 불꽃을 터트렸죠. 글로벌 1위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인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로 제공된 한국 드라마 〈오징어게임〉은 미국 에미상에서 감독상 등 6개 부문을 휩쓸었고요. 어디 이뿐인가요? 한국의 독특한 문화인 일명 ‘먹방’은 그저 먹기만 하면서 찍는 방송임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이슈가 되면서 먹방의 영문명 ‘Mukbang’이 신조어로 등록되었습니다. CNN을 비롯한 미국 방송이 이 현상을 분석하기도 하고, 유튜브나 트위치 등에서 인기 검색어가 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K문화의 시대가 아닐까 싶습니다.
클래식 음악 분야에서도 K-Culture가 대세인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적인 유명 콩쿠르에서 젊은 한국 음악가들의 수상 소식이 연달아 들려오고 있는데요, 한 기사에 따르면 2022년에만 총 43개 대회 중 28개 대회에서 한국인 연주자 31명이 입상했습니다(“세계적인 신드롬 요즘 K-클래식”). 실로 대단한 결과라 아니 말할 수 없습니다! 이쯤에서 K-Classic의 대표주자 조성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을 거머쥐며 혜성처럼 등장한 이 청년은 탁월한 연주 실력과 음악을 대하는 진중한 자세로 전 세계 음악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외에도 2022년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는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역대 최연소로 우승하며 단숨에 월드 스타로 급부상했고, 그 이전인 2018년 우승자 선우예권을 비롯하여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첼리스트 최하영 등 수많은 젊은 연주자들이 세계 무대를 빛내고 있다는 건 씨샵레터 구독자라면 잘 아실 테지요.
그렇다면, 왜 한국의 연주자들이 각광받고 있는 것일까요? K-Classic 현상은 대체 무엇 때문인지 한 번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단번에 떠오르는 건, 한국인이 서양예술음악에 특별히 재능이 뛰어나서? 음, 그런데 아마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겁니다. 물론 한국인이 정서적으로 감정과 감수성이 풍부하고 이를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민족적 특징을 꼽을 수 있긴 합니다만, 생활체육이나 생활음악 대신 특출난 재능을 가진 소수를 집중하고 육성하는 엘리트 문화를 선호하기 때문이기도 하죠. 물론 연주자 개개인의 엄청난 연습량과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 등도 거론할 수 있을 거고요. 어쨌건 K-Classic을 이끄는 스타 연주자 덕분에 국내 클래식 음악 애호가 수가 늘어나고 팬층이 두터워진 건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다만, K-Classic이 서양음악문화 전반에 대한 한국의 수준을 증명하거나, 나아가 한국의 국격을 높인다거나 하는 식의 논의는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지점이지 않을까요?
다시, 대중음악으로 돌아와 봅시다. 예전에는 한국 대중음악을 대중가요(popular song), 혹은 줄여서 가요(song)라고 불렀습니다. 즉 ‘가요’가 일상의 용어였으며, 해외로 수출되는 음악 그러니까 한국이 아닌 나라들을 위해 한국에서 만들어진 대중음악만 특별히 K-Pop이라 지칭했던 것이죠. 가요에서 K-Pop으로의 변화는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가요는 기본적으로 가사에 곡조를 붙인 노래인데요, 한국어 가사에 들어있는 사상과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이를 이해하는 한국적 정서가 기반이 되었죠. 반면 K-Pop은 글로벌한 감각에 맞춘 영어로 된 가사, 알아듣기 쉽고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 젊고 아름다운 신체와 이를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춤과 같은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훨씬 부각됩니다. 그야말로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파퓰러’하기 위해 K의 외피를 입고 ‘팝’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 것이라 하겠네요. 아, 그렇다고 오해는 마십시오! 이 글은 K-Pop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니까요. K-Pop의 K가 한국과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으나, 과도하게 ‘국가주의’와 연결되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고자 함입니다.
국가는 일정한 영토 내에 거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가장 큰 제도적 사회조직이자, 국가 구성원인 국민의 상상 공동체입니다. 문화학자 크리스 바커(Chris Barker)에 따르면, 국가는 상징과 담론이라는 행위를 통해 국가정체성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하는 문화적 재현 체계이기도 합니다. 그는 국가정체성이 문화적 다양성을 통합하는 하나의 방식이므로, 국가와 국가문화를 하나의 ‘총체적인 것’으로 간주하기보다 차이를 감추는 담론적 권력의 결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같은 한국인이라 하더라도 ‘대한민국’을 두고서 각자 다르게 상정하는 것을 볼 때, 성별, 지역, 직업, 이익에 따라 각기 다른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이죠. 국가문화는 더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국문화’라 칭하는 건, 주로 서구의 문물이 들어오기 전 과거의 한정된 시공간 속 한국 전통문화를 가리킬 때가 많은데요, 현재 생활양식의 많은 부분이 서구화, 글로벌화된 우리가 여전히 다른 나라의 문화와 구별되는 한국만의 특별한 K문화를 강조하는 것은 국민을 결속시키는 유대감과 애국심, 국가에 대한 소속감, 민족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싶어요.
모든 문화연구는 ‘문화’의 개념을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렵다는 토로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문화’는 이해하고 설명하기에 난해한 용어라는 뜻이겠지요. 어원을 살펴보면, ‘문화’라는 단어는 colere(경작, 돌봄)에서 파생된 라틴어 cultura(경작, 가공, 관리)로부터 유래되었는데요, 그러니까 사실 처음에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자연을 집단적으로 전유하는 작업을 의미했습니다. 칸트(Immanuel kant) 역시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을 도덕적 행동이라 하면서, 문화를 자연의 최종 목적이라 여겼고, 인류학자 타일러(Edward Tylor)는 다윈의 진화론에 기반하여, 문화를 인간이 사회구성원으로서 습득한 모든 능력과 관습이라 정의했는데요, 18-19세기에는 문화를 자연과 대비하여 문명의 개념과 유사하게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 ‘문화’에 대한 정의는 훨씬 포괄적으로 이루어집니다. 근대 문화연구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윌리엄스(Raymond Williams)는 문화를 예술과 예술적 활동, 삶의 방식, 과정과 발전으로서의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인간의 지적, 심미적 행위나 활동과 그 결과물인 예술에서부터 특정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행동 양식, 취향까지 포함하는 거죠.
21세기 우리는 그야말로 전 지구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한 장소의 고유한 지리적 속성에서 자라나 다른 것과 구별되는 그 지역만의 문화는 세계 어느 곳을 가든 찾아보기 힘듭니다. 문화는 그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고 다른 것과의 대면과 충돌을 통해 분열되고 해체되며, 물리적으로 상징적으로 지역을 떠나 이동하고 유목하며 새로이 형성됩니다. 이러한 문화의 속성을 두고, 들뢰즈와 가타리는 정체성의 고정된 관계를 초월하는 에너지의 탈영토화된 복수적 흐름의 형태에서 이동하고, 탈주하고, 생성되는 것이라 강조한 바 있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살짝 기대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K-Pop, K-Classic은 분명 한국이라는 특수한 지역과 사회에서 생성된 것이므로 K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끊임없이 변주되고 새로이 생성되었으며 앞으로도 새로이 생성될 한때의 일시적 문화 현상으로서 분명한 형태로 고정된 K가 있다고도 할 수 없다! 너무 모호한가요? 독자들의 해석에 맡기며…
46호_VIEW 2023.08.31.
글 ∙ 강지영
한양대학교 음악연구소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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