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취준생이 되기 전에 나는 어김없이 여행을 하기로 했다. 머지않아 앞으로 당분간은 자유롭게 해외를 넘나드는 무기한 여행 따위는 하기가 힘들어질 것이기에 마지막 발악인 셈이다. 미래의 나에게 취직이라는 크디큰 짐을 맡기고서, 현실의 나는 일단 떠난다.
나는 동남아시아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한국에 거주하는 한국 사람들은 동남아시아를 비교적 쉽게 여행할 수 있지만, 반평생을 아메리카 대륙에서 살았고, 앞으로도 그곳에서 살아갈 나로서는 아시아 자체를 쉽게 들락날락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나온 김에 이번 여행지로 동남아시아, 그중에서도 흔히들 가는 인도네시아 발리를 택했다.
2024년 3월 23일 오전 7시, 발리 응우라라이 국제공항에 무사히 입국하자마자 바가지 택시비 당첨 (그랩 택시라고 하면서 다가왔는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거짓말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현재 11일째 발리의 우붓에서 지내고 있다.
발리는 대체로 4월까지 우기라고 해서 살짝 걱정했는데 막상 오고 나니 비는 삼일정도밖에 오지 않았다. 11일간의 짧디 짧은 기간 동안 이곳의 날씨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알쏭달쏭’이라고 할 수 있다. 뜨겁고 끈적끈적해서 바깥에 나갈 의욕이 바닥 끝까지 추락하다가도, 구름이 해를 슬며시 가려주거나 어디선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올 때는 평화가 찾아오는 그런 날씨다. 근데 사실 나가서 걷다 보면 열에 아홉의 경우는 무조건 땀 한 바가지다. 추가로 습도가 수시로 변하는 게 실제로 느껴지는 것이 꽤 신기하다.
애증인 것은 날씨뿐만이 아니다. 교통체증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 보도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매우 좁아서 달리는 오토바이와의 간격이 아슬아슬하다. 그래서 걷는 동안 늘 긴장을 하게 되고, 때문에 어느 정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오토바이 택시를 타는 경우에도 기사분들이 옆 오토바이 혹은 자동차와 거의 주먹 한 개 간격을 두고 운전을 하는 식이기 때문에 스릴이 넘친다. 그래도 이 모든 게 일주일쯤 지나갈 무렵 슬슬 적응이 된다.
나에게 여행을 하는 동안 절대 내려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으니 그건 적정 수준의 음식 위생이라는 것을 발리에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나는 여행지를 가면 식사는 현지인 식당에서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기에 (혹은 여태 그렇게 착각했기에) 겁도 없이 현지인 바비굴링 맛집이라는 곳을 찾아갔는데 세상에.. 식당의 주방 상태를 보고 나니 식도에서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내 몸뚱이 속 모든 세포가 눈앞에 놓인 음식을 완강히 거부하는 것을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비단 이 식당뿐만 아니라 중심가에서 조금 벗어난 길을 다니다 보면 위생 상태가 말이 아닌 식당, 또는 길거리 음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다가다 본 몇몇 노점에서 사태 굽는 모습을 보면, 저걸 먹다가는 일찍 암에 걸려도 놀랍지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래도 전 세계 사람들이 발리를 괜히 찾는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여기 현지인들은 대체로 느낌이 얌전하고 움직임이 나긋나긋하다. 너무 들떠있지도 않고 평온한 분위기이다. 좋은 카르마를 쌓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이들은 미소가 후하고 나 같은 이방인에게 전혀 거리낌 없이 친절을 베풀어 준다. 무더운 날씨에도 착한 마음씨가 묻어나는 이들이 새삼 현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풍경이야 널리 알려진 대로 말할 것도 없다. 우붓과 근교 지역에는 지상낙원 같은 포인트들이 수도 없이 있다. Sari organic 산책길에 있는 Beluna 카페 2층이 그러하다.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너무 좋아서 두 번이나 연장한 이곳 게스트하우스 숙소 테라스 뷰만 해도 소소하지만 나에게는 낙원이다. (그래도 사실 난 정글보다는 산이 더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