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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Sep 08. 2023

기억은 다르게 추억된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도 기억의 색깔은 다르다.

 ‘기억은 기록을 이길 수 없다.’고 말하는 광고를 보다가 문득,  ‘기록은 사실’이지만 감정을 담을 순 없잖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대한 사건이 일어난 날짜, 운동 경기에서의 신기록, 누군가의 생일과 사망일 등의 기록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억은 다르다. 십 년 전의 일기를 읽고 ‘맞아! 그땐 그랬어’라며 아련한 추억으로 빠져들기도 하는 건,  사실보다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 나기 때문이다. 물론 일기라는 기록이 있어 과거로 거슬러 갈 수 있기는 하지만,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을 고스란히 간직하는 건 기억이다.     


 나의 기억은 얼마나 오래갈까? 어제 일도, 바로 몇 분 전 말도 잊고 지내는 엄마 걱정은 뒷전이고 자주 깜빡거리는 내 뇌의 신호등이 더 걱정이다.

 건망증이 심해지는 건 ‘노화’의 한 증상이라고 하니, 아직 ‘치매’를 걱정할 수준은 아니라고 내가 나를 다독이면서도 여간 마음 쓰이는 게 아니다.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조차 모르고 지낼 시간이 내게도 곧 닥칠 것이란 불안이 두꺼운 겨울 외투처럼 나를 감싸고 있다.     


 나는 요즘 매일 뭔가를 쓴다. 어느 날은 엄마가 한 말을 써보기도 하고, 순간의 감정을 쓰거나, 계절의 변화를 끄적이기도 한다. 아니 끄적인다는 말은 예전(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에나 어울리는 소리다. 손으로 톡, 톡, 톡 두드린다.

 그러고 보면 ‘But’이라고 했지만, 역시 ‘기억은 기록을 이길 수 없다’는 카피를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를 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이 스마트폰을 두드리게 하니 말이다.


 가끔 순간의 감정을 포착할 수 있는 카메라가 있었으면 싶을 때도 있었다. 아름다운 경치를 보거나 아이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카메라 렌즈에 담으면서 ‘지금 이 느낌까지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간절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나의 표현력엔 한계가 있어서 엄마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글에는 모두 담기 어렵다는 걸 절감하는 중이다. 차라리 이 순간을 마음으로 찍어 가슴속 기억의 앨범에 담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나의 기억이 최대한 오래 유지되길 바라면서.     


 엄마는 어느 순간을 가장 오래, 가장 아름답게 기억할까? 가끔은 엄마의 세계가 궁금하다. ‘기억하는 순간만이 자신의 것’이라고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다. 엄마는 우리 형제들이 어렸을 때가 제일 좋은 시절이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었다. 그렇다면 엄마는 그때가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이란 소리다. 내가 기억하는 그 시절의 엄마는 늘 고단했었는데. 


 아버지의 막노동으로 하루하루 연명(연명이란 표현이 맞다. 하루 한 되씩 쌀을 사다 밥을 지어먹었으니까)하던  날들이 어째서 엄마에겐 제일 좋은 시절인 건지. 엄마란 알다가도 모르는 존재다. 

 겨울엔 일이 없는 아버지 대신 엄마가 남의 집 빨래를 해주는 일을 했다. 처음엔 한 집으로 시작한 것이 우리 삼 남매가 자라면서 한 집, 두 집 늘어갔다. 빨래만이 아니라 직접 그 집으로 가서 청소까지 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사업확장이라고 해야 하지만 어쨌든, 극한직업이었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엄마 치마 앞엔 온통 반짝이는 얼음알맹이들이 달라붙어 반짝였다. 어린 내 눈엔 반짝이는 얼음알갱이가 진주 구슬처럼 보여 그게 얼마나 이쁘던지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철이 들고 나서 나를 사로잡았던 진주 구슬은 빨래할 때 치마 앞자락에 튄 물방울이 엄마가 집으로 걸어오는 동안 얼음덩어리로 변한 것이란 걸 알았을 때 얼마나 아프던지!     


 엄마는 조금 전에 당신이 타 준 커피를 마신 나에게 또 커피 마시겠냐고 물을 정도로 순간순간 기억을 잃지만 무언가 끊임없이 해주려고 한다. 나와 지내는 토요일, 일요일은 늘 분주하다. 밥하고, 커피 타고, 설거지하고, 냉장고를 뒤져서 간식거릴 내오고, 또 커피 타고, 그러다 잠깐씩 잔다. 자다가 일어나면 또 주섬주섬 무언가 가지고 와서 먹으라고 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방문하는 복지사가 가져오는 간단한 음료나, 과자 등을 모아두었다가 하나씩 하나씩 꺼내온다.

“엄마, 이건 복지사가 엄마 먹으라고 가져온 거니까 엄마가 드셔.”

“먹으라고 준 건데 누가 먹으면 어때서?”

손수 비닐 껍질을 벗겨내고 요구르트 병을 내게 들이미는 엄마. 그럴 때 엄마에게 나는 여덟 살짜리 어린 딸이다. 아침부터 이것저것 들어가 더부룩한 위장으로 달콤 새콤, 시원한 음료가 흘러 들어간다. 엄마는 흰머리 듬성듬성한 딸이 거꾸로 들고 바닥까지 비워낸 플라스틱 병을 받아 쓰레기통으로 가져가며 한마디 한다.

“빨리 가서 아이들 밥 해줘야지 하는 생각으로 일하던 그때가 좋았는데...”

“매일 남의 집 빨래하던 때가 뭐가 좋아 요즘이 좋지”

“너희들 밥 해주고, 머리 빗겨서 학교 보내고 할 때가 좋았지. 지금은 밥 해 먹일 아이들도 없고 이게 뭐냐? 반찬 하나도 제대로 못 해주는데.”


 엄마의 기억은 집에서 기다릴 아이들을 위해 달려가던 그 순간에 머물러 있다. 당신이 손수 지은 밥을 아이들에게 차려주고, 머리를 빗겨주고,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요리조리 우리를 보살펴주던 때가 엄마에겐 기쁨의 순간이고 삶의 의욕이 넘치던 시기다.

 지금처럼 자식들의 도움이 필요한 시간이 아닌, 자신이 우리에게 필요했던 순간이 엄마에겐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다. 


 엄마가 기억의 끈을 당겨 돌아가고 싶다는 그 시절을, 할 수 있다면 나는 건너뛰고 싶다. 엄마 치마 앞자락에 달라붙어 반짝이는 얼음알갱이를 홀린 듯 바라보던 내가 부끄러워서.

이 부끄러움을 기억해야 하나? 기록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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