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시간이 사십오 분이나 남았다. 한 달에 한 번 서울에서 갖는 독서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는 중이다. 코로나 이후 역사 내에 열차를 기다리는 승객용 좌석 수가 현저하게 줄어 몇 안 되는 좌석도 빈 곳이 없었다. 주위를 서성이다 보니 서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로 발길을 돌렸다.
딱히 손이 가는 책은 없고, '마흔에 읽는 니체'가 눈에 들어왔다. '니체'보다 '마흔'이 더 마음을 잡았다.
'예순인데 읽어도 되나?' 하는 어이없는 질문을 속으로 하며 마흔의 어느 날을 잠시 추억한다.
“마흔 살 된 기분이 어떠냐?”
퇴근해서 현관을 막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흰 봉투를 내게 건네며 다른 날과는 좀 다른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마 다음날 새벽 출근 때문에 내가 바로 잔다고 할까 봐 일부러 기다렸던 듯싶었다.
“글쎄, 좀 오래 살았네. 마흔이라니” 갑자기 엄마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받고 보니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아서 나온 말이다. ‘마흔’이란 소리에 괜히 울적해졌다.
사실 나는 내 생일도 자주 잊고 지냈다. 추석 지나고 한 주 후가 생일이라 가족들에게 추석 때 미리 축하를 받는 경우가 더 많아 추석이 생일 같기도 해서다. 엄마는 아버지 돌아가신 후 우리 집에서 지내며 워킹맘인 나 대신 아이들을 돌봐주고 있었다. 그날도 나는 새벽 출근했던 터라 아침에 못 본 딸에게 늦게라도 생일선물을 주려고 엄마는 나의 퇴근을 기다렸던 것 같다.
“엄마는 마흔에 무슨 생각을 했어?” 엄마에게 되물었다. 엄마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소주 한 잔 따라놓고 잠든 너희들 보고 있었지.” 이어서
“너희들 스무 살까지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니가 시집도 가고 아이들도 낳고 그러고 보니 나도 참 오래 살았다.”
어린 삼 남매의 자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앉은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어두컴컴한 방, 천장에 달린 형광등은 그 아래 빨랫줄에 걸린 홑이불이며, 다른 옷가지들에 가려 빛을 발휘하지 못했다. 늘어진 깃발처럼 걸린 빨래 아래 엄마가 앉았고, 엄마 앞에 찰랑이는 한 잔의 소주라니. 흑백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이미지가 왜 이렇게 선명하게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왜 스무 살까지야?” 괜히 울컥해져서 엄마에게 등을 돌리고 냉장고 문을 열며 물었다.
“스무 살이면 너희들이 제 앞가림은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
“앞가림은 무슨 스무 살도 앤 데.”
꺼내 든 물병에서 따른 한 컵의 물을 단숨에 들이켰다.
“자~ 이걸로 빤스 사 입어”
엄마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지만, 엄마의 선물은 언젠가부터 일관성 있게 현금 ‘오만 원’이 든 봉투였다.
나는 말없이 봉투를 받아 가방에 넣었다.
“주무셔. 내일도 새벽에 나가. 일찍 잘래.” 마음 같아서는 엄마와 마주 앉아 소주 한 잔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나는 그냥 내 방으로 들어왔다. 엄마의 쓸쓸하고 고달팠던 마흔을 어떤 말로 만져줄 수 있을까? 더구나 이제까지 나만 생각하고 살아온 내가.
‘마흔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내면을 가꾸어 밖으로 드러나는 외면을 의미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나는 마흔에도 열심히 외모에 신경 쓰고 다녔다. 사회생활에는 ‘외모도 경쟁력’이라는 말이 우선했으니까. 그런데 엄마는 마흔에도 우리를 생각했다는 소리가 나를 잠 못 들 게 했다. 어떻게 엄마란 존재는 눈 뜨는 시간부터 잠들 때까지 단 한순간도 자식을 잊지 못하는 걸까? 원래 엄마는 다 그런가? 그럼 나는?
내가 있어야 자식도 있고, 가족도 있다고 생각한 나는? 세월이 변해서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냥 이기주의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엄마가 나에게 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해주기는 했나? 또 엄마가 나를 생각하는 만큼 엄마를 생각하며 지낸 시간은 얼마나 될까?
몸은 피곤해서 잠들고 싶은데, 정신은 점점 또렷해져서 아이들의 엄마로서의 나와, 딸로서 나를 생각하느라 창밖은 아직도 어두운데 새벽 4시 알람을 들으며 일어나야 했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책임을 위해 밤을 꼬박 새우고 출근을 서둘렀다. 엄마는 자식들 생각으로 보낸 마흔의 밤을, 나는 나를 생각하느라 밤새 뒤척이다 마흔의 아침을 맞았다.
오래전 그날처럼 엄마에게 생일 축하 돈 봉투를 받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저 바람일 뿐이다. 엄마는 지금 내 생일은커녕 당신 생일도 잊고 지낸다. 시간은 그렇게 훌쩍 흘러갔다. 엄마의 마흔이 가슴 아팠던 나의 마흔도 벌써 20년 뒤로 밀려갔다. 내가 엄마와 나의 마흔을 잊을 수 없는 것처럼, 어떤 순간에도 자식만을 생각한 엄마는 시간을 거슬러 그 시절로 돌아가려고 자꾸 어려지는 중이다.
내가 기다리는 열차가 엄마의 마흔, 흑백사진의 시간으로 달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의 나보다 스무 살이나 어린 엄마를 꼭 안고 '잘 살았다'며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