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경원 Jul 29. 2023

모든 순간이 아깝다.

지나면 후회되는 모든 시간.

살다 보면 가지고 있는 물건보다 순간이 아까울 때가 있다.


며칠 억수같이 퍼붓던 빗줄기가 멈추고 푹푹 찌는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문이란 문은 모두 꼭꼭 닫고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거실에서 창 밖을 내다보니, 창 밖의 하늘은 커다란 흰구름을 무심하게 안고 있다.

'조금 있으면 또 춥다고 호들갑 떨 텐데 이 잠깐을 못 참아서 방에 갇혀 있네.'

창 밖의 하늘에서 시선을 돌려 주방을 바라보니 개수대 안에  미뤄둔 설거지가 거슬린다. 에어컨을 너무 가까이한 탓인지 여름 감기로 월차를 낸 덕분에 느지막하게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난 후, 집에서 누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좀 더 즐겨보자는 속셈으로  물 만 부어 두었던 그릇 몇 개가 발목을 잡는 듯했다.

어차피 내가 해야 할 거 얼른 해치우고 엄마한테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고무장갑을 끼었다.



 엄마집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가니 엄마는 나를 기다리는 것인지, 바깥의 풍경을 보는 것인지 의자를 창문 가까이 옮겨 놓고 의자 위에 올라서서 구부정한 모습으로 등을 돌린 채 서 있다.

키가 작은 엄마는 밖을 보려면 의자 위에 올라서야만 한다.

“엄마! 나, 왔어.”

못 들었는지 대꾸가 없다. 가만히 다가가 손을 잡았다. 요즘엔 부쩍 엄마 손을 자주 잡는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한 마음이 혹시 온기를 통해 전해질까 싶어서다.

“언제 왔냐? 내가 또 못 들었지?”

엄마는 의자에서 겨우 내려와 나를 보며 미안해한다.

“밖에 뭐 좋은 거 있나 보네. 딸 오는 소리도 못 듣고.”

“요 앞 아파트 마당에 저번엔 꽃이 잔뜩 달렸더니 오늘은 많이 떨어졌더라 아깝게...”

엄마가 가리키는 창밖, 맞은편 아파트 화단 가득 바람에 팔랑이는 나뭇잎들이 보였다. 바람에 날릴 때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나뭇잎이 엄마에겐 꽃으로 보였는가 보다. 그 푸르고 반짝이던 꽃들이 비바람에 떨어져 길 위에 뒹굴기도 하고 한 구석에 쌓여 있기도 했다.


“꽃 지는 게 그렇게 아까워?”

“어디 꽃만 아까울까. 니들 큰 것도 아깝지. 나는 그게 제일 아깝다.”

“우리가 아직 어렸으면 엄마 지금까지 일해야 해. 뭐가 아까워 다 커서 편하고 좋지.”

“아이들 크는 걸 못 본 게 지니고 나니 제일 아깝고 속상하네”

그렇지 않아도 엄마만 보면 심란하고 갱년기 때문에 별일 아니어도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데, 쓸쓸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하는 엄마를 보니 또 눈물이 났다.     

“내가 미친년이지. 시간만 나면 잠을 잤어. 죽으면 썩을 몸인데 자식 한 번 더 볼 생각을 안 하고, 잠을 잤어.”

“잠을 자야 꿈도 꾸고, 다음 날 일도 한다며?”

“그러게나 말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몰라. 이렇게 할 일 없이 종일 잘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지”

“잠이 보약이라잖아.”

나는 딱히 대답할 말이 없어서 대충 맞장구를 쳤다. 


이번 주엔 시인의 세계에 다녀오신 건가?  팔랑이는 나뭇잎이 꽃으로 보이는 걸 보니 엄마는 다른 사람에겐 안 보이는 시인을 만나고 왔는가 보다. 

나는 가끔 엄마가 상황에 맞지 않는 말을 하거나 행동을 하면  그때의 엄마는 다른 세계에 잠시 다녀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회사 다녀서 피곤하다고 쉬는 날 잠만 자지 말고 시간 날 때 얘들하고도 놀아.”

“애들 이젠 다 커서 나랑 놀아줄까?”

울컥 눈물이 차올라서 엄마를 외면하며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일하는 엄마 때문에 어렸을 적부터 엄마 대신 할머니와 이모의 보살핌을 받은 아이들. 덕분에 엄마인 나에게 보다 더한 사랑을 받았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엄마와 함께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텐데 내가 그랬던 것처럼.


 수업이 끝날 무렵 갑자기 비가 오면 교문 앞엔 우산을 든 엄마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우리 엄마는 없다. 엄마는 일하러 갔으니까. 그때마다 꼭 비가 원망스러운 건 아닌데 하늘을 노려보곤 했다.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서러움은 엄마를 향한 애처로움이었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 

엄마는 ‘아이들이 비 맞을 텐데’하는 조바심으로 일이 손에 안 잡혔을 테니까.

워킹맘으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생길 때마다 나는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났다.

‘엄마도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이렇게 안타깝고 아팠겠구나!’  하면서.


"학교 갔다 오면 이렇게 얼굴도 쓰다듬어 주고,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들었냐 묻기도 하고, 받아쓰기 시험 잘 봤다고 자랑하면 기특하다고 엉덩이도 툭툭 두들겨 주고 그러고 싶었는데.. 그걸 못 했네"

두 손으로 내 얼굴을 감싸고 흐린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하는 엄마는, 이마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한 딸이 아니라 책가방을 등에 메고 방금 학교에서 돌아온 여덟 살짜리 어린 딸의 얼굴을 만지듯 가만가만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

"내가 자는 사이 이렇게 커버렸네 아이들이... 나이 드니까 너희들 크는걸 못 보고 지난 세월이 제일 아깝더라"


엄마는 자꾸 아깝다고 했다. 예전에도 몇 번  엄마가 하는 소릴 들었지만  흘려들었던 말인데, 엄마 말대로 나이 드니 아이들 크는 걸 못 보고 지난 시간이 아까워서 나도 견딜 수 없이 아플 때가 많은 요즘이다.

"나중에 너도 나처럼 후회하지 말고 아이들하고 같이 잘 지내."

엄마는 선생님이 학생에게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듯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지금이라도 실컷 만져. 나도 엄마가 이렇게 얼굴 쓰다듬으니까 좋네!"

혹시라도 엄마가 일찍 돌아와 있을까? 아니면 내가 학교에서 오는 것 보고 일 가려고 기다릴까? 하는 기대로 콧등에 송골송골 땀방울 달고 뛰어서 돌아온 집엔  텅 빈 방이 나의 기대를 보기좋게 저버리고 기다렸다.

그때는 서글픈 내 마음만 숨기면 그만이었는데, 지금은 더 가슴 아팠을 엄마 마음을 알아버려서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엄마는 이렇게 당신이 살아온 경험으로 나에게 삶을 알려준다. 고급진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듣기 좋게 꾸며하는 것도 아닌 시골 된장 같은 엄마의 말은 더 깊이가 느껴져서 내가 엄마 딸이라는 것에 감사하다.


모든 순간 후회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인간에겐 망각이란 정신질환이 있어서 잊고 지내는 것들이 많다. 그중에 하나, '지금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할 텐데', 또는 '지금 이렇게 살면 나중에 후회할 텐데' 어떻게 해석하든 지금 한 행동이 후회를 낳는 결과인걸 알면서도 늘 후회할 일을 한다.


그렇다! 어쩌면 나는 또 훗날 지금 이 순간도 그리워할 것이다. 같은 말을 몇 번씩 반복하고 간혹, 집을 나가 애를 태우기도 하고, 어느 때는 견디기 힘들 만큼 무너지는 엄마라도 나중에는 함께 못한 시간을 아까워할 게 분명하다.


  

작가의 이전글 티토노스의 후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