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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Jul 21. 2023

티토노스의 후예

거스를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나이 드는 것도 서러운데 발톱까지 이 모양이야.”

웅크려 앉아 발톱을 깎던 엄마의 혼잣말이다. 평생 자신을 위해선 어떤 치장도 하지 않았던 엄마인데 모양이 변하고 누렇게 변색된 발톱을 향한 원망의 소릴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하긴, 기계도 십 년을 쓰면 고장 나는데, 칠십 년을 썼으니...”

엄마의 두 번째 혼잣말은 지나간 시간에 대한 회한이 아니라 당신을 변하게 만든 세월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서 읽던 책 페이지를 접어 내려놓고 엄마를 바라봤다. 점점 시력이 나빠지는 엄마는 방바닥에 붙은 것처럼 엎드려 모양이 변한 발톱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노쇠한 몸으로 긴 세월 골방에서 지내다 매미로 변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토노스를 연상시켰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티토노스의 이야기는 이렇다. 인간 티토노스의 아름다운 젊음에 반한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티토노스를 사랑하여 남편으로 삼았다. 그러나 티토노스는 인간인지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에오스는 제우스에게 간청하여 티토노스에게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는다. 허나 에오스가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제우스가 티토노스에게 허락한 것은 불멸의 삶이지 영원한 젊음까지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영생과 젊음을 함께 간청했어야 했다는 것을 늦게 깨달은 것이다. 시간이 흘러 티토노스의 아름다웠던 젊음이 사그라들자 에오스는 티토노스가 보기 싫어져서 골방에 가두어 버렸다. 그 골방에서 얼마나 오랜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허구한 날 울어대는 티토노스를 애처롭게 생각한 제우스가 티토노스를 매미로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시간이 가면서 점점 작아지는 엄마의 몸은  탈피하고 남은 매미 껍질처럼 만지면 금방이라도 파삭! 소리와 함께 부서질 것만 같다.  서글프다는 생각과 신화를 만든 사람들의 표현력이 참으로 신통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그러나 엄마는 신화 속 티토노스와 같지 않았다. 노쇠한 자신의 육체를 원망하여 울기만 했던 티토노스와 달리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의 몸을 씻긴다. 물론 조금 전에 씻었다는 걸 잊은 까닭이겠지만, 어쨌든 엄마는 노쇠해져 볼품없이 변했어도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여겼다.  

그렇게 하루에 몇 번을 씻는지 모를 정도로 자신의 몸을 살피는 엄마지만 손톱, 발톱은 예전처럼 다듬지 않았다. 아니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다. 


"엄마, 이리 와봐 손톱 좀 깎자."

마치 두 살짜리 아이에게 하듯 엄마 손을 잡아 내 앞에 앉히고 나도 손톱깎이를 들고 엄마 앞에 마주 앉았다.

엄마는 순한 아이가 되어 내게 손을 맡기고  있다가도 손톱이 깎기면서 튀어 나가면 그것을 잡느라 움직인다. 방바닥에 이물질이 떨어진 것을 치우려는 몸짓이다.

"내가 나중에 치울 테니까 움직이면 안 돼. 엄마 나도 눈이 잘 안 보인단 말야. 그러니까 가만있어야 돼."

"안경은 어쩌고?"

"안경 쓰면 코가 눌리잖아. 엄마처럼 콧대 오똑하게 낳아주지 그랬어?"

"내가 낳았는데 뭘 해도 이쁘지."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다 이쁘다고 한대."

"고슴도치가 말을 한다든? 다 지들이 지어낸 말이지."


두런두런 아이 달래듯 주거니 받거니 말을 이어가며 마지막 왼손 새끼손톱을 깎으려고 하다가 엄마를 쳐다봤다. 이렇게 멀쩡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는 엄마를 환자 취급해야 하다니...

행동은 생각의 지배를 받는다고 하지만, 노쇠한 몸은 생각을 따라가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티토노스가 그렇게 울었나 보다. 에오스에게 버림받았다는 것보다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자신의 육체가 원망스러워서.

"손톱 너무 짧게 자른 거 아니지? 아프지 않지?"

엄마는 두 손을 펼쳐 자신의 눈앞에 가져가더니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깨끗하게 잘 깎았네."

"이젠 발톱 깎자."

낮은 자세로 엄마 앞에 엎드렸다. 방바닥에 놓인 엄마 발을 잡고 발톱을 깎으려니 무릎을 꿇어도 잘 보이지 않아서 이십여 년 전 엄마처럼 방바닥에 찰싹 가슴을 붙이다시피 엎드려야 했다. 엄마를 의자에 앉힐까도 생각해 봤지만 평형감각을 잃은 엄마가 혹시 의자에서 미끄러질 수도 있어서 내가 엎드리는 편이 나았다.


어렸을 때부터 버선을 신었던 엄마의 발 모양은 예쁘게 오므라져 있었다. 희고 작은 엄마의 발에서 발톱은 못난이 인형 찡그린 얼굴처럼 생경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누렇고 두텁게 변한 것도 있고, 검은색을 띠고 발가락에 쏙 박힌 것도 있다.  

노안과 심한 난시로  내 머리는 점점 더 엄마 발에 가까이 다가갈 수밖에 없다.  잘 보이지 않으니 모양이 변한 발톱은 깎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잘못하면 발톱뿐만 아니라 살까지 집힐 수도 있어서 온갖 신경을 눈과 손에 집중하고 위중한 환자의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처럼 조심하려니 등과 얼굴에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졌다.


순간 잠자리가 손등에 앉은 것 같은 딱, 그만큼의 무게가 머리에 느껴졌다. 엄마가 내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고 있었다.

"힘든데 그만해라."

"하던 거 마저 해야지."

아니게 아니라 무릎 꿇은 자세로 엎드려 있었더니 허리도 아프고, 눌린 허벅지도 아팠지만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내 머리 위에 잠자리 날개짓마냥 맥없이  허우적이는 엄마의 손짓에  솟구친 눈물이 순식간에 방바닥으로 뚝뚝 떨어져서.


내가 어렸을 적 목욕탕에서 등에 피가 나도록 때를 밀어주던 야무진 엄마의 손맛은 어디로 갔을까? 

땀을 닦아 내는 척 손등으로 스윽 눈물을 닦아내지만 눈물은 멈추질 않는다.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눈물이 나는지, 노쇠해진 엄마가 안쓰러워 눈물이 나는지, 세월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의 무력함에 눈물이 나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대로 이렇게 가장 겸손한 자세로 엄마 앞에 오래 있어도 좋을 것 같은 생각에 엄마 발등 위로 눈물을 떨구며 매미처럼 엎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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