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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Jul 11. 2023

이상한 약속

깨려고 하는 약속

 장자의 무위(無爲)에 관해 알기 쉽게 설명한 내용을 읽다가 정말 기막히게 가슴으로 들어온 부분이 있었다. 

‘왼손이 다쳤을 때 오른손이 어루만져 주거나, 약을 발라 주지만 왼손에게 ’ 고맙다 ‘는 말을 들으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내 몸이니까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 너와 나‘라는 의식 없이 모두, ’나‘인 듯 자연스러운 것을 무위(無爲)라고 한다.’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 떠오른 사람이 엄마였다. 세상에 엄마만큼 자식을 제 몸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죽으면 화장해서 훌훌 날려버려라.”

엄마는 가끔 유언처럼 이렇게 말했는데, 영산홍이 흐드러지게 핀 4월, 아버지를 납골 공원에 모시고 돌아와서도 엄마는 같은 소리를 했다. 

“나는 항아리에 들어가지 않을란다. 땅에 묻히는 것도 싫고, 어디든 훌훌 뿌려서 바람 부는 대로 이리저리 날아다니게 해 다오.”

“그럼 우리가 엄마 보고 싶을 때는 어떡해? 어디로 가?”

“바람에 실려 다니다가 내가 찾아오면 되지. 바쁜 너희가 괜히 찾아다니지 않게.”

“엄마 요즘에는 화장해서 아무 곳에나 뿌리면 벌금 물어”

간곡한 엄마의 청을 우리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받아넘겼다.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엄마는 틈만 나면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그리고 이젠 정말 바람에 실려 날아다니듯 가끔 집을 나가기도 한다.

재작년 가을 늦은 밤, 길에서 같은 자리를 계속 서성이는 엄마를 이상하게 여긴 아주머니가 신고해 준 덕분에 연락받고 부랴부랴 경찰서로 달려가 엄마를 모셔 온 것을 시작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집을 나간다. 그래도 멀리는 아니고 동네 근처를 배회하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다 어떻게 어떻게 예전에 사시던 동네로 아는 분을 찾아가곤 하여, 그때마다 놀란 어르신들의 전화를 받기도 한다. 밤 12시 가까운 시간에 ‘놀러 왔다.’며 문을 두드리는 엄마를 태연하게 맞아들일 순 없는 일이니까.

 어떻게든 당신 집에서 지내겠다는 엄마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서, 번갈아 엄마와 저녁 시간을 보내기로 가족들이 의견을 모았고 엄마는 우리의 걱정과 달리 혼자서도 잘 지냈다.


 토요일은 내가 엄마를 보러 가는 날이다. 서둘러 퇴근해서 엄마 집에 도착하니 밤 여덟 시가 훌쩍 넘었다. 

 오늘도 엄마는 남의 집 문을 두드리다 가까운 가게로 가서 ‘문이 잠겨 집에 못 들어가니 딸에게 전화해 달라.’고 했단다. 동생과 중학교 동창인 가게 여주인이 동생에게 전화했고, 저녁 준비를 하다 왔다는 동생이 착잡한 얼굴로 나를 맞는다.

“엄만 문이란 문은 다 열어놓고 나갔더라. 그러면서 날 보자마자 문을 말도 없이 바꿨다고 야단이야. 도대체 어딜 그렇게 가고 싶어서 나가는지...”


놀라고 속상한 마음을 토하는 동생을 달래서 보내고 들어오니 엄마는 곱게 잠들었다.

고대 이집트 유물과 함께 발견됐다는 어느 왕비의 미라처럼 입을 반쯤 벌리고, 두 손은 얌전히 가슴에 모아 쥐고 반드시 누워 잠든 엄마. 그런 엄마를 소파에 앉아 바라보다 문득,

오래전에 치매 환자인 시어머니를 모시는 며느리 사연이 소개된 TV 프로그램을 보면서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늙어서 나도 저렇게 너희에게 짐이 될까 봐 걱정이다. 그전에 어디로 가던가 해야지.”     


 그래서 엄마는 자꾸 밖으로 나가는가 보다. 너희들 편하게 살라며 함께 사는 것도 마다하더니 기어코 집까지 나가는 건가? 정신은 흐려지면서도 자식들이 힘들어할까 봐 걱정하는 건 뇌의 어떤 영역의 작용인지 궁금하다.

 소파에서 내려와 엉금엉금 기어서 엄마에게 다가갔다. 가만히 잡아 본 엄마의 손은 수분이 빠져서 버석거리는 나뭇가지 같다. 


 어느 바람결, 어디에 있을지, 알 수 없다면 그 또한 가슴 저밀 테지만, 그래도 지금은 엄마와 함께 있고 싶은 나는, 비 오는 날 목 놓아 울어대는 청개구리처럼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겠다고 잠든 엄마 귓가에 작은 소리로 약속을 했다.

“엄마, 나중에, 나중에 엄마 말대로 여기저기 날아다니게 뿌려드릴게. 가고 싶은 대로 맘껏 다녀. 근데 지금은 어디로도 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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