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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Apr 10. 2024

잠시만....

"언니 이 번주 일요일에 뭐 해? 별일 없으면 엄마한테 가자구."

알았다고, 면회시간 정해지면 연락하라며 간단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한테 다녀온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휴~~~!" 길게 한숨을 내쉬고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파묻혀 눈을 감았다.


직원의 이직으로 갑자기 늘어난 업무량에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며, 브런치에 출석을 못 한지도 꽤 되었다. 글쓰기를 하루, 이틀 미루면 무거운 짐을 쌓아두는 느낌이라 회사 일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늘 개운치가 않았다. 그런데 엄마를 보러 가는 것을 어떤 때는 까맣게 잊고 지내기도 하지만, 엄마를 잊고 지내는 동안 마음이 무겁거나, 찜찜하거나 한 경우는 전혀 없었다. 왜 그럴까?


브런치에 글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다른 작가의 글 한 줄 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을 만큼 체력이 바닥난 것은 아니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브런치 방문이 뜸해진다. 아마 당분간은 자주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어느 면에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 나의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누른 다른 작가들의 글도 열심히 정독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다른 작가들은 어쩌면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성실하신지, 한 편, 한 편 모두 읽기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슬그머니 브런치에 글 올리는 것을 미루게 되었다.

그리 많지는 않으나 '라이킷' 수가 늘어가는 것이 빚을 지는 느낌이 것이다. 받은 만큼 나도 주어야 한다는 사회의 법칙이 브런치 공간에서도 예외는 아니란 생각이다.(소심한 성격 탓이기도 하다)


엄마는 잘 지내는 것 같다.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혈색이 더 좋아져서 복숭아 빛이 도는 발그레한 볼에 잡힌 주름도 이뻐 보였다.

"엄마는 볼 때마다 이뻐지네!"

"그렇죠? 말씀도 얼마나 잘하시는지 몰라요."

요양원 선생님이 엄마가 앉은 휠체어를 고정시켜 주면서 맞장구를 쳐 주셨다.

"그렇지 우리 딸들이 제일 이쁘지."

엄마는 이쁘다는 소리만 들었나 보다. 두 팔을 뻗어 나와 동생의 손을 한 손씩 잡고 웃으며 딸이 제일 이쁘단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몇 날씩 엄마 생각을 하지 않아도 마음의 부담 한 번 느끼지 않고, 엄마가 요양원에 있다는 사실도 어느 때는 까맣게 잊고 지내는, 참으로 불효막심한 딸인데도 엄마 눈에는 여전히 이뻐 보이나 보다. 내 손을 잡은 엄마 손을 당겨 뺨에 대었다. 푸른 정맥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손으로 엄마는 마치 여리디 여린 풀대로 간지럽히듯 보드랍게 내 볼을 어루만졌다.

"많이 피곤하냐? 얼굴이 부석부석하다."

"응, 언니 요즘 많이 바빠서 엄마 보러 못 왔대."

울먹이는 내 대신 동생이 냉큼 대답을 했다.

엄마 보러 자주 못 와서 우는 줄 아는 동생에게 미안했다. 실은 그게 아닌데....

엄마를 아주 잊고 지내도 아무렇지 않았던 시간이 미안해서였는데 동생이 짐작으로 해석하니 그냥 그런 줄 알게 굳이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잘 살았으니 됐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된다. 억지로 살려고 아등바등 힘들어하지 마라."

"엄만 잘 산거 같아?"

"잘 살았냐고? 잘 살았지 그럼. 하루 스물네 시간 허투루 쓰지 않았고, 이렇게 이쁜 딸들이 있는데 못 살았다고 하면 안 되지."

"엄만 요양원에 들어와서 더 영리해진 것 같아. 이렇게 길게 또박또박 말하는 걸 보면"

동생이 엄마 앞머리를 가지런하게 만진 후, 모자를 고쳐 씌워주면서 말했다.

"함께 방 쓰는 분들과 얘기를 많이 해서 그런가 봐."

"네~~ 종일 말씀들을 하세요. 서로 다른 얘기를 하시는데 모두 대화가 통하는 것 같던데요."

면회 시간이 다 되었는지 다가오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문득 브런치에서 날아온 글이 생각났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모르는 바 아니다. 내가 지금 글을 못 쓰는 이유는 그게 아닌데...

일이 바빠서도, 체력이 바닥이라서도, 글 쓰기가 싫어서도 아니란 건 내가 더 잘 안다.

단지 빚진 것 같은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매일을 지낼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나를 책상으로 당겼다.

그리고.....


"억지로 살지 말아라." 엄마의 말처럼 억지로 살기 않기로 했다. 당분간 글 발행은 안 하기로 했다.

그동안 구독과 라이킷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작가의 서랍에 잠시 칩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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