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잘 놀구 와"
우리를 보자마자 엄마는 대뜸 잘 놀고 오란다. 어? 우리가 여행 가는 걸 엄마는 어떻게 알았지?
마치 어린 시절 밖에서 불장난을 하고 집에 들어오면 아무리 시치미를 떼도 엄마에게 불장난했다고 야단을 맞곤 했었는데,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기분이 들었다.
사실 우리는 1년간 워킹홀리데이 떠나는 조카를 배웅한다는 핑계로 동생네와 온 가족이 짧게 일본여행을 계획했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엄마를 보러 간 것이었다.
"엄마 진짜 귀신이네!"
동생이 감탄을 섞어 말하며 엄마의 휠체어를 밀고 면회실로 들어갔다.
요양원 면회실 안, 커다란 테이블 가장자리, 휠체어에 앉은 엄마를 가운데 두고 동생과 내가 양쪽으로 앉았다. 언제나 그렇듯 동생은 자리에 앉자마자 벌떡 일어나더니 정수기 옆의 믹스커피를 집어 든다.
요양원 내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필수라 서로의 말소리가 또렷이 들리지 않는다. 동생은 물이나 간단한 음료를 마시기 위해 잠시 마스크 벗는 것이 허용되는 점을 생각하고 언제나 재빨리 커피를 타오곤 했다.
"엄마 우리 놀러 가는 거 어떻게 알았어?"
엄마가 정말 아는지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뭐라구? 벌써 간다구?"
"엄마 마스크 벗고 커피 마시자. 언니 말소리가 잘 안 들리나 보다. 언니도 마스크 벗어."
커피가 담긴 종이컵 세 개를 테이블에 나란히 올려놓고 동생이 엄마의 마스크를 벗겨줬다.
"나, 아까 커피 마셔서 안 먹을래."
"왜? 엄마 믹스커피 좋아하잖아."
"화장실 자꾸 가기 귀찮아서 물 같은 거 안 마시려고..."
순간 울컥하는 마음과 동시에 혹시? 하고 가끔 나오는 요양원의 간병문제 뉴스가 떠올라서 가슴이 철렁했다.
"왜 화장실엘 가?"
걷는 것보다 휠체어에 앉아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은 엄마는 성인용 기저귀를 착용하고 있는 것을 아는데 화장실 가는 게 귀찮다는 말에 동생이 되물었다.
"오줌 마려우면 화장실 가야지 그럼?"
오히려 엄마가 정색을 하고 다시 묻는다. 하긴 생리현상을 화장실에서 해결하는 게 맞긴 하지.
"아니~ 내 말은..."
동생이 엄마는 기저귀하고 있으니 굳이 화장실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고 엄마에게 주려고 들었던 커피를 자신이 홀짝이며 마셨다.
대충 상황이 짐작된다. 엄마는 거동이 불편할 뿐이지 아직까진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에 기저귀에 볼일을 못 보는 것이다. 그건 어느 누구라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다. 꼼짝없이 누워 지내야 하는 중환자가 아니라면...
요양원 입소 전에도 엄마는 당신의 용변처리는 자신이 하고싶어 했는데, 입소 후에도 아직 기저귀에 적응을 못한 것같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귀찮아해?"
엄마가 요양원 직원 모두를 '선생님'이라고 해서 나도 같이 선생님이라고 했다.
"아니 선생님들은 귀찮다고 안 해. 내가 그냥 생각한 거지."
"아이고~~ 무슨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해? 그럼 집으로 다시 갈까? 엄마 불편하면?"
"집에 가봐야 아무도 없는데 뭘 가..."
"집에 왜 아무도 없어? 나 요즘 매일 집에 있는데?"
동생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저번에 집에 갔더니 아무도 없고 멍이만 마당에서 놀더라."
이름이 '웅'인 동생네 반려견을 엄마는 '멍'이라고 한다. 개가 멍멍 짖는다는 의미라고 우리는 받아들였다.
"엄마 꿈꿨어?"
"저번에 너네 집에 갔더니 멍이만 있더라. 아무리 불러도 아무도 나오지 않아서 마당에 서 있다 그냥 왔지."
아마도 엄마가 꿈을 꾼 것 같다. 엄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생 눈시울이 붉어지더니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집에 왔다 갔구나! 내가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터진 동생의 눈물샘이 마를 기미가 안보였다. 급작스런 눈물사태에 동생은 아이처럼 손으로 얼굴의 눈물을 닦다가 옷소매로 콧물까지 닦아냈다.
엄마한테 여행 잘 다녀오겠다고 마음으로 인사하려던 생각과 다르게 전개되는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동생의 눈물이 어떤 의미인지 알기에 나도 같이 울고 말았다.
가족과 떨어져 종일 요양원에서 지내면서도 엄마는 집에 있는 우리들 생각만 했을 것이다. 꿈에라도 보고 싶어 달려간 딸의 집에서 보고픈 얼굴을 못 보고 왔으니 얼마나 서운했을지...
"재는 왜 저렇게 찔찔 짜고 있냐? 휴지 좀 갖다 줘라. 저 봐라 또 옷으로 코 닦는 거 봐라. 다 큰 게.. 쯧쯧"
분위기 반전시키는 데는 엄마 따라갈 재간이 없다. 동생이 울다가 엄마의 말에 킥킥 웃었다.
테이블 끝에 있던 티슈곽에서 휴지 몇 장을 뽑아 동생에게 건넸다.
"엄마가 여기다 코 닦으래."
"엄마가 울렸으면서..."
"그래, 난 괜찮으니 그렇게 사이좋게 잘 지내."
내가 동생에게 휴지 주는 것을 본 엄마는 아주, 아주 인자한 표정으로 우리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사이좋게 지내라고 했다.
"응 그래서 우리 같이 여행 갔다 오려구. 사이좋게."
"가서 잘 놀구 와"
어쨌든 얼떨결에 여행 다녀오겠다는 인사는 했는데 엄마의 화장실 문제는 해결(아니, 우리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하지 못한 채 우리는 부랴부랴 요양원을 나와야 했다.
엄마가 갑자기 화장실 가겠다며 우리에게 빨리 가라고 하는 바람에 우리는 급히 요양원 선생님이 엄마의 휠체어를 밀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엄마의 뒤에다 소리쳤다.
"엄마 우리 갔다 올게!"
화장실이 급한 엄마는 아마 우리 인사말을 못 들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표정만 봐도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는 엄마라서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의 당부대로 사이좋게 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