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이 번주 일요일에 뭐 해? 별일 없으면 엄마한테 가자구."
알았다고, 면회시간 정해지면 연락하라며 간단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한테 다녀온 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휴~~~!" 길게 한숨을 내쉬고 의자 등받이에 깊숙이 파묻혀 눈을 감았다.
직원의 이직으로 갑자기 늘어난 업무량에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며, 브런치에 출석을 못 한지도 꽤 되었다. 글쓰기를 하루, 이틀 미루면 무거운 짐을 쌓아두는 느낌이라 회사 일을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늘 개운치가 않았다. 그런데 엄마를 보러 가는 것을 어떤 때는 까맣게 잊고 지내기도 하지만, 엄마를 잊고 지내는 동안 마음이 무겁거나, 찜찜하거나 한 경우는 전혀 없었다. 왜 그럴까?
브런치에 글 올리는 것은 고사하고 다른 작가의 글 한 줄 조차 제대로 읽을 수 없을 만큼 체력이 바닥난 것은 아니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브런치 방문이 뜸해진다. 아마 당분간은 자주 그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어느 면에선 융통성이 없는 사람이라 나의 글을 읽고 '라이킷'을 누른 다른 작가들의 글도 열심히 정독해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그런데 다른 작가들은 어쩌면 한결같이 부지런하고 성실하신지, 한 편, 한 편 모두 읽기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슬그머니 브런치에 글 올리는 것을 미루게 되었다.
그리 많지는 않으나 '라이킷' 수가 늘어가는 것이 꼭 빚을 지는 느낌이 든 것이다. 받은 만큼 나도 주어야 한다는 사회의 법칙이 브런치 공간에서도 예외는 아니란 생각이다.(소심한 성격 탓이기도 하다)
엄마는 잘 지내는 것 같다. 지난번에 봤을 때보다 혈색이 더 좋아져서 복숭아 빛이 도는 발그레한 볼에 잡힌 주름도 이뻐 보였다.
"엄마는 볼 때마다 이뻐지네!"
"그렇죠? 말씀도 얼마나 잘하시는지 몰라요."
요양원 선생님이 엄마가 앉은 휠체어를 고정시켜 주면서 맞장구를 쳐 주셨다.
"그렇지 우리 딸들이 제일 이쁘지."
엄마는 이쁘다는 소리만 들었나 보다. 두 팔을 뻗어 나와 동생의 손을 한 손씩 잡고 웃으며 딸이 제일 이쁘단다.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몇 날씩 엄마 생각을 하지 않아도 마음의 부담 한 번 느끼지 않고, 엄마가 요양원에 있다는 사실도 어느 때는 까맣게 잊고 지내는, 참으로 불효막심한 딸인데도 엄마 눈에는 여전히 이뻐 보이나 보다. 내 손을 잡은 엄마 손을 당겨 뺨에 대었다. 푸른 정맥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손으로 엄마는 마치 여리디 여린 풀대로 간지럽히듯 보드랍게 내 볼을 어루만졌다.
"많이 피곤하냐? 얼굴이 부석부석하다."
"응, 언니 요즘 많이 바빠서 엄마 보러 못 왔대."
울먹이는 내 대신 동생이 냉큼 대답을 했다.
엄마 보러 자주 못 와서 우는 줄 아는 동생에게 미안했다. 실은 그게 아닌데....
엄마를 아주 잊고 지내도 아무렇지 않았던 시간이 미안해서였는데 동생이 짐작으로 해석하니 그냥 그런 줄 알게 굳이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까지 잘 살았으니 됐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면 된다. 억지로 살려고 아등바등 힘들어하지 마라."
"엄만 잘 산거 같아?"
"잘 살았냐고? 잘 살았지 그럼. 하루 스물네 시간 허투루 쓰지 않았고, 이렇게 이쁜 딸들이 있는데 못 살았다고 하면 안 되지."
"엄만 요양원에 들어와서 더 영리해진 것 같아. 이렇게 길게 또박또박 말하는 걸 보면"
동생이 엄마 앞머리를 가지런하게 만진 후, 모자를 고쳐 씌워주면서 말했다.
"함께 방 쓰는 분들과 얘기를 많이 해서 그런가 봐."
"네~~ 종일 말씀들을 하세요. 서로 다른 얘기를 하시는데 모두 대화가 통하는 것 같던데요."
면회 시간이 다 되었는지 다가오던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문득 브런치에서 날아온 글이 생각났다.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모르는 바 아니다. 내가 지금 글을 못 쓰는 이유는 그게 아닌데...
일이 바빠서도, 체력이 바닥이라서도, 글 쓰기가 싫어서도 아니란 건 내가 더 잘 안다.
단지 빚진 것 같은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매일을 지낼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나를 책상으로 당겼다.
그리고.....
"억지로 살지 말아라." 엄마의 말처럼 억지로 살기 않기로 했다. 당분간 글 발행은 안 하기로 했다.
그동안 구독과 라이킷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작가의 서랍에 잠시 칩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