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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Jan 23. 2024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오늘 할머니 생극 찍고 왔음. 차량 운행시간 2시간 30분 이상되면 다리 아프다고 함.'

며칠 전 동생이 가족 단체방에 올린 메시지 내용이다.

요양원 안에서만 생활하는 엄마를 생각해서 동생은 1주일에 한 번씩 면회를 간다. 면회 시간은 길어야 20분을 넘지 못한다. 아직 코로나 여파로 인해 동시간대 다수의 면회자가 발생하는 것을 고려하여 한 가족씩, 최대 20분의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한 가족이 면회를 마치고 나면 30분의 간격을 두고 다른 가족의 면회가 허용된다. 해서 언제나 신청에 늦은 나는 동생이 면회 신청을 해줘야 한 달에 한 번 엄마를 볼 수 있다.


동생은 20분의 짧은 면회 시간을 항상 아쉬워하며 날씨가 좋을 때는 주중에 혼자 외출 신청을 하여 엄마를 요양원에서 탈출(?)시켜주기도 한다. 2 ~ 3시간 정도의 외출을 허락받으면 엄마를 자동차 뒷좌석에 태우고 가까운 곳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그렇게 다니다가 적당한 장소에 차를 주차시키고 집에서 마련해 온 도시락을 펼치고 차 안에서 엄마와 오붓하게 브런치를 즐긴다. 그리곤 싸 온 도시락 음식을 오물오물 아이처럼 맛나게 먹는 엄마 모습을 사진 찍어 가족단체 방에 올린다. 

'오늘은 김밥 세 개 드시고 커피 한 잔'

'오늘은 약밥 큰 거 한 덩이나 드셔서 걱정됨'

'오늘은 졸리다고 투정 부려서 한 시간 반 만에 요양원 복귀'

등등으로 그날의 외출상황을 요약하여 가족과 공유한다. 덕분에 엄마를 직접 면회하지 못하는 다른 가족들도 항상 최근에 엄마를 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


"난, 지난 연말에 엄마 보고 아직 못 가봤는데.... 니가 자주 가니 그나마 다행이다. 미안하기도 하고..."

엄마 얘기가 나오면 동생에겐 늘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함께 든다. 미안함을 핑계로 지난 주말, 동생에게 점심을 사기로 약속하고 카페에서 만났다. 

"차암... 내가 남의 엄마 보러 가? 나도 울 엄마 보러 가는 건데 뭐가 미안해?"

"일 핑계로 자주 못 가니까 엄마한테도, 너한테도 미안하네"

"지금은 내가 엄마 보러 갈 시간 내는 게 더 수월하니까 그런 거지. 나중에 회사 그만두면 언니가 자주 가면 돼. 나는 그때 놀래. 나는 그래도 안 미안해할 거야."

커피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동생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말은 야무지게 하고 웃었다.


"참! 엄마가 '지난번엔 선경이를 우연히 만났는데, 오늘은 선영이를 우연히 만났네!' 하면서 손뼉까지 치고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

참고로 선경이는 개명하기 전의 내 이름이다.

"엄마가 나 본 거 기억하나?"

"그런가 봐. 우연히 만났다고 얼마나 반가워하든지... 이름도 아주 똑 부러지게 말하던데"

"하긴, 뭐 나도 엄마를 우연히 만났지."

"엥?"

"내가 엄마를 선택한 것도 아니고, 엄마가 나를 선택한 것도 아니니 우연이 맞는 거 아냐? 가만 보면 엄마는 가끔 허를 찌르는 소리 잘한다. 요양원의 철학자야!"

"듣고 보니 언니 말도 맞네!"


그러게 말이다. 넓고 넓은 우주 공간, 수많은 별 중에 하나, 지구별에서 우연히 만난 우리는 '부모, 자식, 형제, 자매'라는 이름이 붙여진 순간 '혈연'이라고 하는 필연이 되는 것이다.

엄마는 '나'라는 우연을 만나  시간의 터널을 함께 걸으며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와 온갖 정성을 쏟았다.  

문득, '엄마는 나를 만나서 좋았을까? 아니면 힘들었을까? 혹시, 내가 아닌 다른 아이를 만났으면..  싶은 갈등의 순간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는 어떤가? 엄마와 지낸 모든 순간이 다 좋았을까? 혹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라도 엄마가 다른 이로 대체되어 있던 시간이 있었던가?

엄마가 '우연'이라고 했다는 동생의 말이 갑자기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거짓말을 해서 엄마에게 먼지 떨이개로 손바닥을 맞을 때도 아픈 것보다 엄마가 나를 나쁜 아이라고 생각할까 봐 더 두려웠고, 어린 남동생을 업고 학교에 가서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곤란하게 했을 때도 그렇고, 라면봉지에 똥 덩어리를 담아 줘 학교에서 창피를 당했을 때도 그랬고, 어느 한순간도 '엄마가 내 엄마가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던 적은 없었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엄마와 지낸 모든 날이 좋았다.'

그리고 천만다행이다! 부지불식간이라도 부유하고 미모가 출중한 여인이 나의 엄마이길 바랐던 적이 없었다는 게 이렇게 뿌듯하고 가슴 쓸어내릴 만큼 내가 나를 대견해할 일인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나는 내가 기특해서 기분이 좋았다.


"뭔 생각을 했길래 혼자 실실 웃어?"

카페에서 내준 나이프로 샌드위치를 자르려고 이리저리 접시를 돌리다 말고 손으로 절반을 잘라 나에게 건네며 동생이 묻는다.

"실없는 생각!"

"우리가 뭐 진짜 우연히 만났겠어? 다 하늘의 뜻이 있었겠지. 이렇게 빵 하나도 깨끗이 못 자르는 언니, 동생이 나란히 앉아 있는 거 보면 우연은 아니야. 우린 같은 과잖아."

반으로 가른 내 손에 둘란 빵을 비집고 나온 토마토 조각이 테이블에 떨어지고, 동생의 빵에선 달걀 프라이가 미끄러져 내리는 걸 보며 우리는 카페 안 다른 이들의 눈총을 받을 정도로 크게 웃었다.


맞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다. 하늘이 맺어준 만남이니!

아득히 멀게 사라지는 엄마의 정신세계에서도 엄마는 늘 나를, 우리를 만나고 싶어 하는데, 나는 어쩌다 한 번 찾아가 시간이 있네, 없네 하며 생색을 낸다. 그런 인색한 딸을 우연히라도 만나고 싶어 하는 엄마.

이번 주말엔 엄마에게 우연한 기쁨을 선물하게 일찍 면회 신청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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