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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어 Apr 30. 2024

내 손을 떠난 이야기.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이 정도로 떠들썩해질 줄 알았다면 내 글을 책으로 만드는 일을 조금 더 주저했을 것이다. 여느 때처럼 청년부 예배를 드리고 본당으로 내려오자 마주치는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마다 나를 불러 세우고는 물어보신다.


"아니 어떻게 책을 낼 생각을 했어? 글은 언제부터 쓴 거야? 정말 대단하다!"


 멋쩍은 웃음 몇 번을 날리고서 어떻게 전교인이 내가 책 낸 사실을 알고 있는 건지 언니들에게 묻자, 목사님이 11시 오전 예배 광고 시간에 떠들썩하게 나의 책 출간 소식을 광고하셨다는 답변이 돌아온다. 이럴 수가. 그렇게 말렸는데. 그 정도로 홍보 해주지 않으셔도 된다고 몇 번이고 말씀드렸는데. 이건 예의상 괜찮다는 게 아니라 정말 괜찮은 거였는데. 나를 보며 뿌듯한 미소를 날리시는 목사님을 보며 원망과 감사를 한 번에 담아 외친다. "목사니임!!!"


 그러나 책 홍보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오후 예배를 드리려 자리에 앉자, 옆의 재재 언니가 주보를 쓰윽 건네며 나를 툭툭 친다. 그곳에 절대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몇 개의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김예진 자매님, 살고 싶은 마음, 출간, 훌륭한 작가…. 주보란 한 주일마다 발행하는 신문이나 잡지, 한 주일마다 하는 보도나 보고라는 뜻으로 쉽게 말해 매주 발행되는 교회 신문이다. 주보 맨 뒷장에는 교회의 여러 가지 소식을 전하는 광고란이 있는데 그곳에 나의 출간 소식이 떡 하니 적혀있는 것이다.


책 출간 / 김예진(청년회) 자매님이 “살고 싶은 마음”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많은 관심과 앞으로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장난스러운 얼굴로 이 주보를 보여주는 재재 언니도도 밉고 기어코주보에까지지 실어놓은 목사님도 미워진다. 이로써 책은 내고싶지만 첫 책은 많은 사람들이 보지 않았으면 좋겠고 특히나 나와 가까운 어른들은 되도록 보지 않았으면 하는 나의 사소하고도이기적인 바람은은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무엇보다 저렇게 동네방네 소문을 내는 일은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오글거림이 있다. 훌륭한작가라니…. 훌륭한한작가…. 대체 훌륭한 작가는 무엇일까. 베스트셀러 작가? 혹은 등단작가? 상을 받은 작가? 내가 어떤 글을 썼더라, 어른들이 읽으면 비웃지 않을까, 너무 유치하진 않은가, 왜 그토록 솔직하게 썼을까. 별의별 생각이 머릿을 어지럽게 할때 쯤 교회 입구에 쌓여있는 내 책이 눈에 들어온다. 교회 측에서 10권 정도를 산 뒤에 구매를 원하는 성도님께 다시 책을 판매한다고 들었는데 그중 두 권이 남아 있다. 그 말은 다른 여덟권은 성도님들의 손에 들려있다는 말이다. 그분들은 어떤 마음으로 내 책을사신 걸까. 기특한 마음, 응원하는 마음, 신기한 마음, 궁금한 마음 등등 어떤 마음이 '살고 싶은 마음'을 사도록 만들었을까.


   나는 요즘 '살고 싶은 마음'이 다른 사람 손에 들려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반가움과 함께 부끄러움을 느낀다. 꼭 나의 어떤 한 시절 마음을 여기저기서 팔고, 사고, 읽는 듯한 기분이 든다. 분명 누군가 읽으라고 쓴 글이지만 정말 누군가가 내 글을 읽는다고 생각하면 자꾸 몸 구석구석이 간지러워진다. 언제쯤 당당하게 내 책을 소개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런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만 같다. 슬아 작가님도 김연수 작가님도 박준 시인님도 모두 부끄러움을 마음 깊은 곳에 숨긴 채로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홍보하는 게 아닐까. 글을 잘 쓴다는 건 부끄러움을 매끄럽고 능숙하게 표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 손에 들린 나의 이야기를 보며 이제는 내 손을 떠난 이야기라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글에 적었던 것처럼 쓰고 나면 그 이야기는 내 것인 동시에 모두의 것이 된다. 각자의 경험과 상황과 감정에 따라 내 이야기는 이렇게도 읽히고 저렇게도 읽힌다. 더 이상 저자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글쟁이의 삶이란 필연적으로 오해받는 삶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슬픈 사람으로 누군가에게는 사랑에 미쳐있는 사람으로 누군가에게는 언제나 희망이 넘치는 사람으로 누군가에게는 너무 진지한 사람으로. 어떤 오해를 하든 그들을 붙잡고서 하나하나 변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모습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기에. 내가 내 책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을 궁금해하며 헤아려보는 것처럼 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자연스레 나의 마음을 헤아리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를 오해하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할 것이다. 오해와 이해 사이에서 점점 넓어지는 우리를 생각한다. 헤아리는 우리와 넓어지는 우리가 좋다. 오늘은 이해하고 내일은 오해한다고 할지라도 계속해서 이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 쓰고 읽으며 우리는 우리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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