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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호 Oct 08. 2023

산인데 산이 아닌 곳에서 생각하다: 사유원을 다녀와서

  음악을 듣는 프로그램, 그림책을 보며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 차를 마시는 프로그램,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는 프로그램 등으로 다양한 이벤트가 있는 사유원은 산에 만들어진 수목원 같은 곳이다. 거의 3시간을 달려서 방문하게 된 이유는 비싼 가격이 타당한지 보고 싶고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일 것이다.


극도의 비움에 이르러 지극한 평온을 지키는 치허문을 올라 많은 나무 사이를 산책하기 시작했다. 소요헌 안에서 예술 작품과 자연이 어우러진 모습에 가격을 잊고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알바로 시자가 만든 20m 정도의 전망대인 소대에서는 시원하고 푸른 경치를 한껏 감상을 했다. 겁이 나서 고개만 살짝 내밀고 일상을 생각했다. 하늘을 보니 땅만 쳐다보고 지나온 내 시선을 끌어올렸다.

작은 꽃들이 벌과 나비와 재잘거리고 쭉쭉 벋은 소나무, 단풍나무, 느티나무 그리고 이름 모를 나무 사이를 걸으며 같이 간 남편을 잊고 나를 생각했다.

직장에 다니면서 책을 읽고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바쁜 일상에서 떠날 수 있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준비하고 있을까? 겨울을 위해 바지런하게 도토리를 모으고 있는 다람쥐같이 나의 양식을 모으고 있는 걸까? 



풍설기천년에 오르니 모과나무를 이쁜 모양으로 다듬어 놓았다. 맑고 높은 가을 하늘 속에 튼실하게 열린 모과를 보고 신기하기만 했다. 누가 못생긴 모과를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다. 




가가빈빈에 들어가 모과를 넣은 에이드와 차가 있어서 반갑게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쉬어 갔다.




가가빈빈 앞에는 발을 담그고 사유원의 숲과 멀리 팔공산을 볼 수 있었다. 맨발로 차가운 물속에 앉아 있으니 어지러운 생각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한참을 초가을 풍경 속에서 쉬다가 내심낙원을 내려갔다. 미사를 보는 공간과 좀 다른 분위기였지만 넋을 잃고 제단을 올려보고 앉아있었다.

한참 가지 않은 성당을 생각하며 나를 위한 반성과 여유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사유원에서 제일 편하게 있은 공간은 유원이었다. 한옥의 마루에 척 누워서 처마 끝으로 보이는 하늘을 감상한 시간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사유원을 설립하신 분께서 중간중간 써 놓은 글들은 생각을 더 깊게 만들어 주었다.


이보세요! 열심히 사는건 알겠는데 좋은 생각으로 살아 보실래요.



맛있는 코스 요리나 숲 속을 거닐며 그림책을 이야기하지는 못했지만 나를 관조하며 너무 초조하게 쫓아가는 나를 알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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