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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Nov 20. 2023

공간에 기억을 입혀주는 ‘PAUSE & POSE'

- New Route with Arts in our City
- 공공미술/조형물과 어우러진 춤 퍼포먼스를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며 관람하는 프로젝트
- 2023 세종시문화관광재단 전문예술창작지원사업 "무용"


새 집이 싫지는 않다. 아니 새집으로 이사 간다고 하면 설렌다. 하필 그 새집이 신도시의 새 아파트라면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와 함께 조금 더 흐믓할 수도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 한켠이 허하다. 왜 그럴까?

신도시에서 맞는 하루를 한번 상상해 보자. 회색 도시 사이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아침을 맞고, 잘 닦인 회색 도로를 따라 직장에 나가고, 다시 그 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아이들은 단지 내에 있는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에 다닌다. 똑같은 놀이터에서 잠시 똑같은 놀이기구를 타거나 비슷하게 생긴 상가들 속에 위치한 각종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들과 그 부모들은 다시 회색 도시 사이로 지는 해를 보며 저녁을 먹고 각자 핸드폰을 보며 시간을 보내다 각자의 방에서 잠이 든다.

‘PAUSE & POSE 포즈 앤 포즈’의 공연은 그런 마음 한 자락을 잡았다.

‘PAUSE & POSE 포즈 앤 포즈’ 공연 팜플릿

10월 28일 토요일 오후 3시 날씨는 맑음. 세종시 나성동에 위치한 세종예술의전당 앞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자전거를 타며 보는 공연이라는 생소한 방식에 호기심을 느낀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자전거를 타고 모이기 시작했다. 미리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주말 오후를 즐기러 나왔다가 은근슬쩍 합류한 그룹도 있었다.

‘PAUSE & POSE 포즈 앤 포즈’ View Point(마주보기Ⅰ)

세종예술의전당은 건물의 양 끝을 들어 올려 전체적으로 비상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대지 중앙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배치되어 있다. 그곳에서 무용수들은 각자의 삶을 시작했다. 걷고, 뛰고,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부딪히고, 피하고, 지나치고, 가끔 눈을 마주치지만 이내 각자의 길을 가다가 잠깐 한숨을 돌리며 일상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첫 번째 공연인 View Point(마주보기Ⅰ)는 바쁜 일상과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며 도시를 맴도는 나의 의미를 삶에서 발견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외부의 시선으로 무미건조한 우리의 현재를 바라보도록 한다.

‘PAUSE & POSE 포즈 앤 포즈’ Merry-Go-Round (마주보기Ⅱ)

그렇게 각자 흩어져 이어지던 일상이 줄을 잇더니 세종예술의전당 앞에 있는 ‘gate of artholic’이라는 대형 조형물을 중심으로 돌기 시작한다.  두 번째 포인트 Merry-Go-Round (마주보기Ⅱ)는 이상(꿈)을 지향하는 욕망과 현실과의 거기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변화를 꿈꾸려면 현실의 쳇바퀴에서 잠시 내려 벗어나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쉽지 않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인생의 회전목마에서 과연 우리는 내릴 수 있을까? 그 행렬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용기가 없어 차라리 조금 더 페달을 세게 박차보려고 하지만 앞에서 달리는 자전거가를 보고 이내 주춤하게 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거 같은 쳇바퀴에 겁이 나기 시작할 즈음 행렬은 다음 장소를 따라 이동한다.

‘PAUSE & POSE 포즈 앤 포즈’ Flow(머무르기)

루브르 박물관 앞에 있는 유리 피라미드를 본뜬 조형물이 있는 국세청 앞이 세 번째 장소다. 자전거를 타고 도착한 사람들은 Flow(머무르기)를 주제로 다양한 방식으로 그 광장에 머무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 명씩 또는 여러 명이, 같은 방향을 향하기도 하고 둥글게 모였다 흩어지기도 하고, 움직이고, 멈추고, 머무르고, 달리고, 멈추고, 서고, 다시 머무르고, 앉았다가 뛰어오르며 만들어 내는 몸의 궤적은 낯선 것 같으면서도 그 공간에 관객들을 스며들게 만든다. 애를 써 만든 공공미술 작품들이 늘어서 있지만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며 눈길 한 번 주기 힘들었던 곳, 때로는 이런 곳이 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던 곳에서 무용수들이 보여주는 흐름에 자신의 몸이 따라 흘러가는 체험은 회색의 거리에 색이 입혀지는 순간이다. 그 앞을 지나가는 자가용의 행렬에서 목을 빼고 내다보는 시민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들 하나하나가 기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되어간다.

‘PAUSE & POSE 포즈 앤 포즈’ Blending(스며들기)

소방청 뒤 공터에는 선물처럼 하얀 풍선이 가득했다. 지금까지 잘 따라온 어린 관객들이 풍선 사이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따로 허락의 제스처도 필요 없다. 지금까지 함께 페달을 밟고 달려오며 이미 알아챈 듯 했다. 어린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풍선 사이를 걸으며 춤을 추는 무용수를 구경하기도 하고 곳곳에 놓여있는 빈백에 몸을 눕힌 채 하늘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반짝이는 햇빛 아래 유리처럼 부서지는 웃음소리가 사람들 사이를 날아 다녔다.

마지막 주제이기도 한 Blending(스며들기)은 사람과 사람이 마주치고 일상 안에서 예술을 마주하며, 서로를 바라보고 그렇게 머무르며 서로가 서로에게 스며들 수 있는 순간을 꿈꾼다. 그 꿈이 이루어지고 있다.

‘PAUSE & POSE 포즈 앤 포즈’ Blending(스며들기)

마지막 춤사위가 끝나고 무용수들은 아직 풍선 사이를 돌아다니는 시민들을 향해 일렬로 서서 박수를 보냈다. 마치 공연하는 사람과 관객이 바뀐 듯이. 마지막을 장식해 준 특별한 게스트들을 위한 커튼콜이 올라가는 듯 했다.

움직임 그룹 NA_MU(나舞_나無)가 3년째 세종시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는 프로젝트 공연의 막이 내렸다.

신행정수도라고 불리는 세종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이 계획하고, 설계하고 의도를 가지고 가꾼 도시다. 세월과 함께 자연스럽게 모였다 흩어지는 과정을 거치며 생긴 마을하고는 다르다. 공원도 만들고 각종 문화시설에 멋들어진 조형물을 세웠지만 아직은 세종시에 사는 사람들조차 세종이 낯설다. 어른이라서 그렇다. 아이들과 달리 어른들은 놀 줄을 모른다. 이유 없이 골목을 뛰고, 낙엽만 굴러가도 웃음을 터트리고, 길에서 만난 고양이가 신기한 아이들은 잠깐만 머물러도 그 공간에서 기억을 만들 줄 안다. 그러나 어른들은 번지수로, 카페 간판이나 버스 역 이름으로 명찰을 달아야만 기억할 수 있다. 돈을 주고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공연은 볼 줄 알지만 그 앞의 공원에서 날씨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뛰어다녀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기 기억을 가지기가 어렵다. 그런면에서 이번 공연은 아이들에게 의지해 어른들이 세종이라는 거대한 회색 도시 안에서 작은 기억을 입히고 추억을 만드는 기회가 되었다.  

공연을 본 한 아이가 이윤희(NA_MU 대표)에게 전한 소감을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를 짓겠다.

“저는 이런 건 처음 해봐요. 엄마, 아빠랑 주말에 자전거 타러 나오는데 여기가 놀아도 돼는 곳인 줄도 몰랐어요. 친구들한테도 알려주고 싶은데 언제 또 해요? 또 오고 싶어요.”


출처 : 충청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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