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했다. '넥스트 로컬' 지원사업이 끝나면 서울로 돌아가겠지라던 예측들이 머쓱해지도록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을 띄고 골목골목에서 계속 마주친다. 그러면서 사람들과 사부작사부작 자꾸 무언갈 만들어낸다. 정체가 뭘까? 사람들의 궁금증을 모아 대신 질문해 본다. '당신은 왜 지역에서 이런 일을 하시나요?'
Q : 지역에서 자주 볼 수 있지만 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니 도대체 저 사람은 어떤 일을 하는 걸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방에서 새로운 걸 시작한다고 해도 대부분은 식당, 가게, 게스트하우스, 상품 등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있어서 그걸로 설명을 대신하곤 하는데 병성 님은 워낙 다양한 일을 하니까 신기하기도 하고요.어쩔 수 없이 자기소개를 직접 해주시길 부탁드려야겠는데요?
이병성 : (웃음) 저는 주식회사 다이얼 대표 이병성입니다. 2018년부터 공주를 드나들다가 2019년 넥스트 로컬 사업 참여자로 시작했습니다.
Q : 그게 벌써 2019년이군요. 서울시에서 서울 청년들이 지방에서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처음 뵈었을 때 ‘왜 하필 공주를 택했을까?’ 궁금해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병성 : 서울에서 오랫동안 독서 모임을 했어요. 2015년부터 ‘미래를 만드는 교육 읽기(미교독)’라는 독서회를 하며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이 한둘씩 공주에서 먼저 일을 시작했죠. 2018년에 먼저 내려온 멤버들이 봉황재라는 한옥 게스트 하우스와 공주의 첫 독립 서점인 가가책방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함께 ‘퍼즐랩’이라는 회사를 준비하다가 넥스트 로컬 지원을 받고 다니던 회사를 퇴사 하고 내려왔고요.
Q : 아직까지는 지방에 내려 오면 대도시에서 성공하지 못해서 밀려 내려왔다는 편견들이 있는데요. 멀쩡한 대기업에서 경력을 잘 쌓고 있다가 그 커리어를 다 버리고 이렇게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하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어떤 동기가 병성 님의 등을 밀어줬을까요?
이병성 : 저는 공대 출신으로 건설업 분야에서도 엔지니어링 쪽에 있었습니다. 체계적이고 꽉 짜인 조직안에서 생활했죠.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 안에 사람도 부품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꼭 대기업만이 아니라 중소기업에 가도 마찬가지예요. 기존의 사회 시스템이나 산업 분야에서 개인의 동기나 관심은 철저히 무시되는 데 문제의식을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서 미교독을 시작했던 거죠.
Q : 문제의식이 행동으로 연결되고 이게 직업으로까지 발전한 거네요
이병성 : 네, 처음엔 궁금한 걸 함께 공부해 보자는 정도였는데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프로젝트를 추진해 보면서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Q : 그 가능성으로 시작된 일이 있죠. 병성 님을 수식하는 또 하나의 이름이기도 한 ‘커뮤니티 디자이너’. 이름만으로는 알쏭달쏭한데 커뮤니티 디자인이란게 뭘까요? 소개해 부탁드려요.
이병성 : 커뮤니티 디자인은 사람 사이의 연결을 디자인한다는 게 가장 간단한 설명일 것 같습니다. 물론 막연하긴 하죠. 연결한다는 게 그냥 사람과 사람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지는 않아요.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져야 하죠. 소통의 근간은 '대화'이고요. 처음엔 말씀대로 알듯 모를듯 하다며 어려워하던 분들도 제가 몇 년간 꾸준히 활동하는 걸 보아오신 분들은 이제 이해하시는 것 같아요.
Q : 저도 그분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가는데요. 보통은 사업이 먼저고 그다음에 사람을 놓잖아요. 예를 들면 이런 사업, 이런 상품, 이런 축제가 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필요한 사람을 찾고 소개하고 이런다면 이해가 가는 데 사람을 먼저 두고 시작한다는 데서 익숙지 않았던 거 같아요.
이병성 : 저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하는 일 중에는 지역에서 대화와 커뮤니티를 촉진하는 교육과 워크숍을 제공하거나 공간을 운영하면서 지역에서 보기 힘든 새로운 형식의 공연이나 팝업 전시를 하기도 하고, 닉샘스튜디오라는 이름으로 콘텐츠 디자인도 하고 있으니까요. 거기에 더해 지역의 청년 창업가들을 위한 컨설팅도 하고 있네요.
Q : 맞아요. 이게 어떻게 한 사람이 몇 년 만에 다 할 수 있는 일이죠? 그래서 저는 병성 님이 천재인 줄 알았어요.(웃음) 공대 출신이라는데 드로잉하는 걸 SNS에서 몇 번 보여주더니 굿즈를 제작하고, 교육이랑 워크숍을 하는 줄 알았는데 공정 여행 프로그램이나 공연 기획도 하고, 이젠 창업 컨설팅도 한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최종 목표가 도대체 뭘까가 궁금했죠. 그런데 첫 시작이 사업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하니까 드디어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에요.
이병성 : 제가 공주에 내려와서 하고 싶었던 게 개인이 자기 동기와 잠재력을 끌어내서 활동하고 그게 지역의 지속가능성을 만들어 내도록 돕는 역할이었습니다. 공주에서 여러 커뮤니티를 만들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러다 보니 그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보였죠. 제가 대기업에서 보고 겪은 것들로 한 발 앞의 상황을 읽을 수 있었고, 함께 고민하며 길을 찾다보니 지역의 젊은 작가, 청년 창업가, 건강한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돕게 된 거라고 보면 됩니다. 물론 무조건 만나기만 한다고 일이 되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건 소통이고 그 소통이 안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핵심은 대화이기 때문에 대화하는 법에 대한 개발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만약 제가 공주에서 만난 사람들이 다르고 그래서 그 사람들과 커뮤니티에 필요한 게 달랐다면 지금 하는 일 역시 달라졌을 수도 있어요. 사람을 만나고 그 결과로 일이 시작된 거니까요.
Q : '대화'에 집중한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하신 말씀을 바탕으로 하면 단순히 대화의 기술에 머무를 것 같지는 않네요.
이병성 : 진짜 소통이 일어나는 대화를 경험하게 하고 그런 대화 문화를 정착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경험하는 과정에서 기술이 조금 들어갈 수는 있지만 그것보다는 이런 대화가 가능하고, 유익하고, 재미있다는 경험을 할 기회를 만드는 게 1차 목표고, 더 나아가서는 그런 대화를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야죠. 그런 대화가 이루어지는 속에서 진정한 커뮤니티의 지속성이 유지될 수 있다고 보니까요. 커뮤니티 리더는 생산자가 아니라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는 게 제 생각이고, 그런 자유로운 대화 속에 성장하는 사람들로 건강한 기업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게 사람이니까요. 그 사람을 성장시키는 건 일회성 교육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Q : 꼭 계획대로 이루어져서 지역에서의 선순환이 계속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이 드네요. 혹시 마지막으로 덧붙일 말이 있을까요?
이병성 : 저 역시 공주에서 활동하며 계속해서 저를 발견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지 않았던 영역이나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하면서 창작의 기쁨을 누리는 중인데요. 그런 면에서 공주의 문화적인 환경이 크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도시에 여러 개의 갤러리가 있고 다양한 컨셉의 동네 책방이 많은 곳도 드물고 그건 공주시민들이 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환경 면으로나 외부적으로 받는 자극도 좋지만, 저의 시도나 열정을 지지해 주고 필요하면 배울 수 있는 여건도 굉장히 좋았고요. 지역에서 새로운 출발을 고민하는 분들이 있다면 적극 추천합니다.
출처 : 충청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