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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Jan 22. 2024

[로컬X기록] 가야금으로 만들어내는 새로운 장면 하나.

편집자 주 : 공주사대부속고등학교를 바라보는 원도심의 낡은 건물 1층에 홀가분 스튜디오가 자리하고 있다. 카페와 공방, 갤러리가 모여있어 나름 핫한 거리지만 가야금은 생소하다.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다시 한번 멈춰 서게 만드는 ‘가야금 해부학’ 포스터. 그 옆에는 다양한 콜라보 공연 안내 포스터가 함께 붙어 있다. 홀가분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성유진 연주자가 직접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따뜻한 환대의 향이 가득한 공간에서 그녀가 들려주는 가야금 이야기가 시작된다.


[로컬X기록] 시리즈는 (주)다이얼의 지원으로 기획되고 진행됩니다.


홀가분스튜디오

그동안 공연하는 모습은 몇 번 봤지만 이렇게 스튜디오에서 뵙는 건 처음이네요.

성유진 예정되어 있던 공연은 모두 끝났어요. 겨울엔 잘 채워나가야 하는 기간이죠. 확실히 한국에 있다 보면 뭔가 계속 정신없이 흘러가잖아요. 이렇게 빈 기간이 있어야 다음 레파토리도 준비하고 작곡을 위한 모티베이션도 생기는 거 같아요. 정리하고 채워놔야 또 내보낼 수 있으니까요.


클래식하면 교향악단을 연상하는 것처럼 가야금이라고 하면 국립국악원 같은 곳에서 한복 입고 가야금 연주하는 것밖에는 상상하지 못하는 일반인의 한계랄까요. 그래서 유진님의 공연은 항상 신기해 보였어요.

성유진 말씀대로 국립국악원 같은 곳에서 하는 음악들을 주류라고 보는 게 있죠. 제 선후배, 친구들 중에도 잠비나이나 이날치 등 나름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지방에서는 생소한게 사실이에요. 저도 베를린 생활 이전과 이후로 나뉘는 거 같아요. 서울에서는 앙상블을 하더라도 국악이 기반이었는데 유럽으로 넘어가니까 같이 할 수 있는 국악 연주자가 아예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다양한 장르의 실험적인 도전을 하는 젊은 예술가들이 엄청나게 많은 분위기도 한몫했죠.


베를린에서의 생활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나 봐요. 어떻게 가시게 된 건가요?

성유진 2012년도에 해외문화홍보원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독일 한국문화원에 가게 됐어요. 마침 서울에서의 생활에 번아웃이 왔었는데 마침 딱 좋은 기회였죠. 6개월 정도 머물며 문화원에서 가야금을 가르치다가 돌아오고 나서도 2년 정도는 왔다 갔다 공연 하러 다녔어요. 그러다 제대로 머물러 보자 결심했죠. 처음엔 막연하게 어떻게든 되겠지 했는데 잘 안 되더라구요.(웃음).

그래도 이왕 왔으니 열심히 부딪쳐보면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앨범 Gaya 발매 기념 공연. Potsa Lotsa XL & Youjin Sung 공연, 베를린 MIM(Musikinstrumenten-Museum)

독일 투어 콘서트 중 연주 후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베를린 베를리너필하모니 캄머뮤직홀
독일 투어 콘서트 중 연주 후 오케스트라 연주자들과 함께 찍은 사진. 베를린 베를리너필하모니 캄머뮤직홀


베를린에서 오래 계셨는데 취업도 안 된 상태에서 어떻게 지내셨어요?

성유진 베를린에서는 프리랜서 비자를 받아서 지냈어요. 프리랜서 비자를 받으면 연주로만 돈을 벌어야 하는데, 처음엔 저를 아는 사람들이 앙상블 멤버들이 거의 다니까 공연이 거의 없었죠. 그래도 그 시간이 제겐 치유의 시간이었어요. 발길 닿는 곳마다 있는 공원. 하늘 보고, 호수 보고, 백조 보고, 나무 보고. 자연과 함께하는 그 시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뭘 싫어하고 좋아하는지를 알게 됐어요.

독일어는 부족했지만 무조건 만나고 저질렀어요. 괜찮은 공간을 만나면 여기에서 공연하기 괜찮겠다며, 나 연주자라고 들이대기도 하고, 그 전에 공연하며 만났던 연주자들 통해서도 다양한 시도를 해봤죠.

그렇게 6, 7년 차 되면서 이제 적응도 됐고 뭔가 기획도 하면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는데 코로나19가 터져버렸어요.


코로나19 때문에 돌아오신 건가요?

성유진 맞아요. 이제 막 뭔가 펼쳐지겠다 하는 순간에 막혀버린 상실감. 가족과 떨어져 혼자가 된 고립감.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오면서 불면증까지 왔어요. 거기다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드러나지 않던 사회적인 문제들도 드러났죠. 독일인들보다 오히려 외국인이 외국인을 더 차별하며 발생하는 사건들. 그전에는 음악만 생각했다면 내 가족 옆, 내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를 다시 정의하셨군요.

성유진 네, 그렇지만 독일에 실망해서 들어온 건 아니에요. 코로나로 모든 공연이 다 멈췄잖아요. 당연히 수많은 예술가들의 생계가 막막해졌죠. 그렇지만 코로나로 셧다운된 지 한, 두 달 만에 독일에선 생활고로 어려운 시민들에게 생활자금으로 5천 유로를 줬어요. 심지어 저는 외국인인데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청하면 선지급부터 하더라구요. 반면에 시민들은 자신이 아직 덜 어렵다고 생각하면 스스로 지원금 신청을 하지 않기도 하고요. 그런 점은 배울 점이라고 생각해요.


아까 하신 말씀 중에 하고 싶은 게 있다는 걸 베를린에서 찾았다고 하셨어요. 가야금을 좋아해서 전공하신 거 아닌가요?

성유진 물론 가야금 되게 좋아하죠. 그렇지만 저에게 완벽하게 맞는 음악 장르를 찾지 못했다고 할까요. 내 안에는 여러 다양한 모습들이 있는데, 한 가지 음악만으로 나를 정의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 베를린에서 국적과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아티스트들을 만나고 작업하게 되면서, 이렇게 다양한 장르와 협업하는 데서 더 재미를 찾게 되었지요.


베를린에서 돌아오고 나서 공주에 정착한 이유가 있을까요?

성유진 제가 어릴 때 공주사대부고 앞에 살았거든요. 그런데 돌아와보니 제 기억하고 많이 달라져 있더라고요. 갤러리, 카페, 공방, 독립서점. ‘여기 사는 사람도 많이 없는데, 이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지?’ 생각이 제일 처음에 들었어요. 신기해서 동네에서 보이는 데는 다 팔로우하고 눈으로도 보러 다녔어요. 그랬더니 A 책방 사장님이 B 책방 놀러 가서 책 선전해주고, 동네 사람들 다 모여 있는 것 같은 카페가 있고, '여기는 경쟁이 없나?' 되게 궁금한 거예요.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고, 나도 그럼 이 곳에서 연습실을 잡아야겠다. 그렇게 공간을 찾다 딱 만났죠.


‘홀가분’ 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으신 거예요?

성유진 사실 제 아이디어는 아니고, 친한 지인이 만들어준 이름이에요. 이런 고즈넉하고 한가롭고 아기자기한 작은 공간들이 많은 동네와 어울리는 이름을 짓고 싶었거든요.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작은 쉼표처럼 홀가분하게 다른 세계를 만날 수 있는 지점이 문화예술 아니겠어요? 지금은 개인적으로 저 자신에게도 이 공간에 들어오면 매우 홀가분해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웃음)


현대무용이랑 함께 한 공연, 탭댄스, EDM 다양한 장르가 혼합된 작업을 하셨어요. 유진 씨에게 이런 작업은 어떤 의미인가요?

성유진 공주에서 연극과 움직임을 하는 친구, 탭댄스 하는 친구, 그리고 싱어송라이터 등 저보다 먼저 이곳에 살면서 자신의 전공분야를 잘 지켜가는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알아가면서 거기에 맞춰서 만들어낸 소중한 작업물들입니다. 제가 여러 장르를 만나는 것 자체에도 호기심이 있지만 우선은 같이하는 사람이 중요해요.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결이 맞는지, 이런 작업이 소화 가능 할 만큼 스펙트럼이 넓은지. 협업은 동등하게 가져가는게 중요해요. 어떤 악기도 장르도 밑에 들어가 버리면 진정한 협업이 아니니까요.


공주에서 했던 공연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연을 하나 꼽아줄 수 있을까요?

성유진 2023년 초에 프랑스인 친구가 즉흥연주를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와서 공주로 오라고 했는데, 마침 이병성 대표가 공간을 쓸 수 있게 해주면서 공주에서 처음 New Scene in Gongju를 선보였죠. 그렇지만 즉흥연주는 독일에서는 계속해 왔던 거라 제 스스로에게 새로운 장르는 아니었고요,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이번 뮤직파티 PLUG 공연에서 했던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작업을 하는 거였어요. 당장 지원금이 없더라도 같이 한번 해볼까? 라며 시작했던 것들이 계속 연결되며 만들어온 거 같아요.


New Scene in Gongju. 성유진, 김지환, Monchoce Sylvain, 공주 디 스튜디오
Music Party PLUG. 성유진, 지미네이터(윤지민), 공주 디 스튜디오


가야금 이야기를 하며 유진씨 눈을 보면 얼마나 가야금을 사랑하시는지 알 거 같아요. 가야금의 매력이라면?

성유진 가야금을 생각하면 해야 할 게 많아서 그런 거 같아요. 저는 가야금이 현으로 춤을 춘다고 생각해요. 서양 악기는 치는 순간에 소리가 난다면 가야금은 뜯은 음들이 공기 중으로 퍼지잖아요. 그런데 뜯은 다음에 왼손으로 남은 그 뜯은 음을 가지고 또 소리를 만들어야 해요. 뜯는 것보다 그다음이 더 중요하죠. 줄을 흔들고 빼고 밀어 넣고 하면서 만들어내는 데 한계가 없으니까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이 줄도 명주실이다 보니 온도, 습기 심지어는 제 손가락의 체온에도 영향을 받아요. 뻔하지 않은 긴장감. 그래서 매일 만지게 돼요.


성유진 가야금 연주자

가야금 연주자로써 유진님의 24년도 계획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성유진 실험적인 시도를 하면서도 관객들과 소통할 수 있었던 건 귀한 경험이었어요. 다이얼팩토리를 중심으로 무령화원, 바르셀로나에서도 지원해 주시고 많은 아티스트들의 도움도 받고요. 공주여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요, 공주를 거점으로 충청도 안팎으로 예술가들과 조금씩 더 연대를 넓혀가고 싶어요. 많은 예술가들이 솔직히 지원금 받는게 없으면 뭘 시도할 생각도 못하는데, 이번에 다이얼팩토리와 함께 하면서 이런 시도를 해 볼 수 있었거든요. 로컬에 있는 예술인들은 이 곳에 정말 큰 애정이 있어서 남아 있는 거에요. 이들이 지쳐서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기 위해서는 지원금을 받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 스스로 자생할 수 있는 방법들을 더 고민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출처 : 충청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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