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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왔다.

by 그스막골

브레이지어와 팬티 위로 올인원 히트텍을 입는다. 얇은 목폴라에 니트 카디건, 코르덴바지를 입고, 두꺼운 양말을 신고 목도리를 두른다. 종아리까지 내려오는 겨울용 패딩을 입고 털모자를 쓰고 방한용 마스크를 하고 스키 장갑을 낀다.

하늘엔 먹구름이 끼었고 젖은 눈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가득 내린다. 어두운 골목길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서 걷고 있다.

몇겹씩 껴입은 옷에 눌려서 관절은 평소의 1/3도 접히지 않고 내가 쉬는 숨은 마스크 때문에 내게 그대로 돌아온다. 마스크를 타고 귓가에서 울리는 숨소리에 세상의 소리는 아득해진다. 마스크 밖은 얼마나 신선한 바람이 부는지 몰라도 마스크를 통과하는 동안 미세플라스틱을 잔뜩 머금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는 동안은 내 몸에 생명을 이어주는 그 숨도 달갑지가 않다. 그 한 줌은 콧속을 지나 기도를 거쳐 폐까지 점을 찍듯 터벅터벅 소리를 내며 길을 낸다.

모자는 강철에서 실을 뽑아 만들었는지 머리통을 옥죄어 오고 등에 맨 가방은 어깨를 찍어 누른다. 사방을 둘러보고 싶어도 목에 천근짜리 추를 매단 것 마냥 무거워서 독하게 마음먹고 서서히 목에 힘을 주고 들어 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금세 정수리가 땅으로 처박히고 만다. 그 와중에 혀뿌리 밑으로 고이는 침은 너무 달아서 목이 메고 살찐 배를 누르는 바지 버클 때문에 쓸린 살이 가렵다. 그렇게 눌리고 눌리다 보면 위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이 답답하고 속이 울렁거린다.

우울증이다. 다시 그 징글징글한 것이 찾아왔구나.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예고편도 보내주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내 배 위에 올라타고 앉아 목젖을 눌러버리는 그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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