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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스막골 Oct 01. 2023

몽이의 시선 5 - 연못

어서 와! 오늘은 날씨가 좋으니, 마당에서 보자.      


산책을 좋아하냐고? 아니. 나는 집이 좋아. 물론 더 젊었을 때는 산책도 좋아했지. 집사랑 함께 밖에 나가서 여러 가지 신선한 냄새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 게다가 길에서 만나는 인간들은 대부분 나를 보면 찬양하기 바쁘니까. 특히 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여자 인간들이 좋아. 그들은 나만 보면 막 달려와서 ‘어머 예뻐라. 아기인가 봐요. 너무 작고 예쁘다’ 같은 말들을 쏟아내곤 하지. 내가 누누이 강조하지만 난 정말 예쁘고 사랑스럽거든.      


물론 가끔이지만 내가 지나가는데도 자기들끼리 얘기하느라 나를 못 보는 경우가 있어. 그럴 땐 내가 자비를 베풀어 주지. 그들의 무례를 내가 아직 눈치 못 챈 척 딴 곳을 보면서 그 앞에 가서 기다리는 거야. 그럼, 금방 내 아우라를 느낀 여자 인간들이 호들갑을 떨며 금세 나를 또 찬양하곤 해. 나를 만나는 기회를 놓칠 뻔했으니 얼마나 감사해했을지 알겠지?     


연못가로 가자고? 싫어. 얘기했잖아. 나는 물이 싫다고. 목욕 때문이냐고? 물론 목욕도 싫지. 그런데 물이 싫어진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야.     


우리가 전에 살던 집은 근처에 하천을 따라서 산책길이 있었거든. 나는 그때 산책이란걸 해본 게 손에 꼽을 때였어. 농장에서는 3년 반 동안 뜬 장에서만 살았으니까, 나한테는 나무도 풀도 다 처음 보는 거라 막 신기할 때였지. 그중에서도 징검다리라고 큰 돌들이 띄엄띄엄 놓여 있는 곳을 넘어가는 건 정말 엄청난 도전이었어. 심호흡을 몇 번이나 하고 종종거리며 망설이다가 ‘폴짝’. 그럼 집사는 또 나를 금메달이라도 딴 선수 보듯 바라보니까 안 할 수가 없잖아. 그렇게 세 개 정도 돌을 뛰어넘었는데 다음 돌은 간격이 좀 넓길래 포기하고 옆에 풀밭으로 또 폴짝 뛰었지...... 


아휴 지금 생각해도 심장이 덜컹해. 그게 글쎄 풀밭이 아니라 물 위에 수련이 가득 피어 있던 거야. 난 그런 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보는데 어떻게 알았겠어. 그날은 아침부터 목욕하고 털도 공들여 빗어서 정말 하얗게 빛나는 내 모습을 인간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며 다녔는데 나는 바로 초록색의 축축한 미역 덩어리가 되어버렸다니까. 


웃지 마. 이건 정말 천인공노할 심각한 일이었다고. 내가 아무리 오줌 테러를 해도 괜찮던 집사가 정말 울상이 돼서 나를 안고 돌아왔다니까. 왜 안고 오냐고? 하~ 너는 정말 올바른 집사가 되려면 공부할 게 많겠다. 나의 이런 웃기는 모습을 인간들이 보면 안되잖아. 나의 마음에 생긴 스크레치를 생각하면 나는 한 발짝도 걸을 수 없었다고.      


왜 자꾸 웃는거지? 흥! 오늘은 이걸로 끝이야. 너의 무례를 용서할 때까지 우리 집에 출입금지 명령을 내리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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