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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사 Jun 01. 2023

나는 영원한 학생이다.
끝나지 않는 배움

 2022년 12월 말일자로 정년퇴직을 했다. 당사자인 나보다 직장 후배들이 더 궁금해한다.  

  

 ‘앞으로 어떻게 지낼 거예요?’     
 ‘퇴직 후 뭐라도 일할 준비는 했어요?’
 ‘그동안 일 했으니 그냥 놀아요!’  
 ‘일하던 사람이 놀기 힘들다던데?’ 
 ‘6개월 이상 놀면 너무 답답해서 우울하대요’      





쏟아지는 질문에 나는 ‘일단은 무조건 놀 거야!’라고 대답했다. 

글쓰기와 그림 두 가지만 배워도 하루가 바쁠 테니까....    

  


  


  많은 은퇴자들이 퇴직과 동시에 일을 한다. 퇴직 전부터 치밀하게 준비하는 사람도 있다. 경매, 사회복지사, 공인중개사 등등 진짜 열심히 공부를 한다. 그런 분위기여서 나도 사회복지사 2급을 인터넷 강의로 들었다. 인터넷 강의라 대~충 듣고, 시험 보고 이제는 실습만 하면 되는 상태였다. 



 


  실습을 지원한 곳은 종합사회복지관이었다. 사회복지학과를 전공한 대학생들이 실습생으로 왔다. 그들은 전문가가 될 준비를 완벽하게 무장하고 실습에 임했다.

  반면 나는 이론 공부를 한 것도 거의 다 잊어버린 상태였고 실습일지 작성조차 하기 힘들었다. 심각한 현타가 왔다. 


  나는 손으로 필기를 하는데, 그들은 실기수업을 듣는 동시에 노트북으로 모든 정리를 한다. 나는 필기한 것을 다시 워드로 작성해야만 했다.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도 그들보다 10배는 느리다. 실습일지 외에 과제는 손도 대지 못하여 같이 하는 실습생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일주일 만에 실습을 포기했다.   

   




  호기롭게 종합사회복지관을 신청했다가 결국 포기했지만, 일주일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했다. 종합사회복지관에서 하는 일들이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했다.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것 이외에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제안서를 보내 후원금도 모금해야 한다.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면 종합사회복지관은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아 집행만 하면서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곳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너무 쉽게 사회복지업무에 접근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렇게 새로운 경험으로 또 하나를 배운다. 공부라는 것이 듣고, 쓰고, 외우는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경험을 통해 얻거나 깨닫는 것도 공부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다 공부인 것이다. 





  어릴 때는 마흔, 쉰이라는 나이가 아주 까마득히 먼 미래여서 내겐 올 것 같지도 않은 나이였는데, 나는 벌써 예순하나가 되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편집장을 지낸 모티머 애들러는 「평생공부가이드」에서 모든 사람에게는 노년에 진정한 교양인이 되기를 열망할 자연권이 있다.라는 말을 한다. 참 멋진 말이다. 


  나는 나이 들수록 배움에 대해 갈망하는 이유가 생명의 시간이 줄어듦에 대한 안타까움 정도로 생각했었다. 한글을 배워 행복해하는 70~80대 노인들을 보면서 느끼는 감정도 안쓰러움과 연민이었다. 


  고작 내 생각의 깊이는 이 정도였다. 배움이 얕고 사고의 수준이 낮다 보니 이처럼 단순하게만 생각했다. 분명, 한글 공부를 하는 그들도 나처럼 좀 더 멋지게 나이 들고 싶은 마음은 똑같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이 들어서의 멋짐은 지혜로움과 우아함이다.  





  코로나 이후로 비대면 강의가 넘쳐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무궁무진한 세상이다. 미라클모닝으로 알게 된 카카오 오픈채팅방에서 소개하는 zoom 강의들은 모두 다 꼭 들어야만 할 것 같다. 강의 제목과 소개하는 내용을 보면 안 듣다가는 나만 뒤처질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    

  

  지난달부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매일 하던 걷기와 요가는 일주일에 한두 번 밖에 못한다. 주변의 반응은 언제나 그렇듯 두 가지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가와 정말 대단하다는 반응이다. 


  zoom강의를 들어보면 참여자들 모두가 열정적으로 공부한다. 대한민국이 이래서 발전하나 보다. 덕분에 지난 4개월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인스타그램, 동영상 편집, ChatGPT 등. 최근 hot한 것들을 배웠다. 

덕분에 나는 내 친구들보다 훨씬 앞서간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들이 밀려왔다. ‘나는 왜 이렇게 정신이 없지?’ 

‘하는 것은 많은데, 뭐 하나 똑바로 하는 건 없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까지 한 공부에는 깊이가 없다. 


  디지털 강의는 과제 인증이 필수다. 때문에 책을 펼쳐 볼 시간이 없다. 연초에 올해는 책을 제대로 읽기로 작정했었다. 그런데 하루에 한 페이지도 안 읽는 날이 많아졌다. 


  내게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 다시 찬찬히 그간의 일을 복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자크 라캉의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 내가 지난 몇 개월을 정신 줄 놓고 남들 뒷 꽁무니만 쫓아다녔던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말이다. 


이제는 안다. 내게 필요하고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공부를 찾아볼 시간이 온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생 100세 시대에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은 ‘글쓰기’라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더 다양하고 새로운 모험을 찾아가도 충분하다. 그러나 나처럼 60을 넘긴 사람들에게 ‘글쓰기’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글쓰기라는 아웃풋이 나오려면 독서라는 인풋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독서를 제대로 해야겠다. 다독도 필요하지만, 한번 읽고 나서 생각을 되새김해 보고, 다시 읽기로 뇌새김을 할 것이다.

 ‘내 삶에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독서의 목적이다.     



  

   

  송나라 정자는 “당신이 논어를 읽고서 변화가 없었다면, 당신은 논어를 읽은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책 한 권을 읽더라도 통찰과 사색으로 뇌의 변화가 있어야 된다는 뜻이다. 뇌에 새기듯 변화가 일어날 때까지 읽으려 한다.  


  현재의 내 문제를 알고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책을 선택해서 읽고자 한다. 이제부터 평생 공부의 1순위 과목은 독서다. 독서로 내 의식의 기반을 다진 후 화룡점정 글쓰기로 마무리하려 한다. 


  장계수 작가의 「마흔 평생공부」 속의 글을 소개한다.


“공부는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한다. 인생을 자유롭게 펼쳐나가기 위해 하는 것이 어른의 공부이며 프로의 공부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생이라는 여행을 하면서 이 여행길을 천국으로 만들지, 지옥으로 만들지는 각자에게 달려있다. 인생길을 천국으로 만드는 나만의 지도를 만들어 보자.”     



  앞으로는 '진정한 교양인이 되기를 열망할 자연권을 가진 사람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나는 학생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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