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iley Sep 01. 2023

나의 드림 쉐어 아파트

아플 때 혼자 있는건 외로운 일인가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을 하면 꼭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엄마에게서나 할머니에게서, 혹은 결혼을 계획하는 친구들에게서 듣던 말은 "그렇다고 인간이 혼자 사는건 너무 외로운 일이다." 였다. 20대 한창 시절의 나는 그 말을 들으면 '난 외로울 틈도 없는데!?'라고 반문하곤 했으나 30대를 접어든 지금은 '그럴 수 있지. 그러나 인간은 원래 누구와 함께 해도 외로운 존재야. 둘이 같이 있는데 외로운 것보다야 혼자 외로운 게 낫지...'라고 생각하고 만다.


나이가 들고 새롭게 만나는 사람이 줄어가고, 만나던 사람마저도 잃어가기 시작할때 쯤부터 '아, 사람이 정말 외로운 건 못 버티는구나!'라는 걸 느끼게 되었다. 독립을 한지 3년차 때부터는 혼자 오래 산 사람들이 으레 말하는 처음에는 너무 행복했고 모든 것이 다 즐거웠으나, 어느 순간부터는 외로움이 뼈에 사무친다는 말도 어떤 의미인지 점차 알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하는지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아마 함께 할 때의 괴로움보다 혼자만의 외로움을 더 견디기 힘든 순간이 오면 사람들은 결혼을 하게 되는거겠지. 그러나 다행히(?) 난 아직까지 외로움이 사람과 함께 살 때 감당해야 하는 괴로움을 뛰어넘지는 않았고, 나는 그게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내가 수집하듯 모으게 된 결혼을 할 생각이 없거나 할 수도 있지만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내 친구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나는 내가 외로움을 잘 타지 않거나 혹은 잘 견디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선 찜찜했다. 왜냐하면 내가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다고 하기에 나는 사람을, 특히 친구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이다. 얼마나 좋아했냐면, 일단 살면서 친구와 한 약속이 깨지길 바랐던 적은 거의 없었고, 심지어 친구와는 매일매일 만나도 좋다고 생각했다. 친구가 사는 곳이 부산이던, 대전이던, 대구던 오직 그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당일치기 혹은 1박으로 그 지역으로 가는 일은 다반사였고, 팬데믹이 끝나고 3년만의 첫 해외여행지도 과거에 1년 동안 살았던 LA로 정한 가장 큰 이유도 그곳에 사는 친구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도 사람을 좋아하는 내가 외로움을 잘 타지 않는다니. 그런 의문을 갖다가 어느 순간 내가 그동안 외롭지 않았던 이유는 내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많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인생을 살면서 진정한 친구를 한명이라도 얻었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는 글을 보고 생각해보니 나는 일단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친구가 두어명 있었고, 그 외에도 내가 내 마음을 온전히 주고 있는 친구들이 적어도 5명에서 10명은 되었다. 내 마음을 그렇게 적절히 많은 친구에게 기대고 있었기에 나는 그 마음을 기댈 또 다른 사람을 찾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는 내게 만약 이 친구들이 없었다면 나도 외로움에 사무쳐 이미 결혼을 선택했을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그동안 외로움을 잘 버틴건 내가 굳건하고 대단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나 또한 외로움 취약한 보통 인간인데도 다행스럽게 내 주변엔 고마운 친구들이 많은 덕분이었다.


어렸을 때도 사랑보다 우정이 좋고, 연인보다 친구가 더 좋았던 나는 항상 궁금했다. 보통 사람들은 우정보다는 사랑을, 친구보다는 연인을 우선 순위에 두는데, 나는 왜 반대인가? 이런 고민을 터 놓으면 종종 "네가 그만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서 그래~"라고 사람들은 조언하곤 했다. 그래서 그 말을 믿고 은근슬쩍 그런 사랑을 기다렸지만 그런 사랑을 기다린지 10년만에 내가 어렴풋이 알게된 것이 있다면 나는 연인에게도 친구같은 사랑을 바란다는 것이었다. 나는 누군가와 너무 깊게 엮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나만의 경계가 분명한 사람이고 그걸 넘는 것에 불쾌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이라 그 선을 넘어설 정도로 누군가와 가까워지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러나 보통 연인이나 가족들은 그 선을 넘게 마련이며, 친구들은 그 선을 쉽게 넘지 못한다. 


살면서 느꼈던 한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나는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아플 때 특히 외로워한다는 것을 아주 오랫동안 알지 못했다. 내게는 살면서 가장 혼자 있고 싶은 순간이 아픈 순간인데, 아픈 순간이야말로 나의 예민함이 가장 극대화되며 그 때의 나는 유난히 타인이 나를 위해 해주는 것들을 모두 버겁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내가 누군가와 살 부대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생각은 곧 나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맞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던 것이다. 살면서 내가 외로움을 느끼는 순간은 보통 내가 불안을 느껴 그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상대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나는 보통 상대방이 내 불행이나 불안에 잠식되지 않는 정도의 거리를 지킬 수 있는 상대인 경우에 그런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우리가 우리의 불행을 부모에게 전했을 때 그들이 무너져 내리는 정도와 그 소식을 친구에게 전했을 때 친구가 전해오는 담담한 위로는 그 무게가 다르다. 그리고 나는 친구가 전하는 담담한 위로에 더 위안을 받곤 했기 때문에 가족이나 연인과의 관계가 항상 버거웠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들에게서 도망가고, 그들은 나를 쫓아오곤 했다.


만약 나와 내 친구들이 이대로 정말 결혼을 하지 않고 나이가 들게 된다면, 언젠가 꼭 그들과 바로 옆 집에 살고 싶다. 각각 옆집, 위아래집, 이렇게 살면서 우리만의 '쉐어 아파트'를 만드는 것이다. 쉐어 하우스는 안된다, 같은 공간에서 계속 같이 있게 되면 서로의 선을 지키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에. 각자의 공간은 확실히 확보하되 언제든 모여 각자의 기쁨이나 슬픔, 불안을 나눌 수 있는 거리에 살 수 있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일하는 중년일 때는 다같이 모여 맥주 한잔 하면서 축구나 드라마를 보기도 하고, 누군가의 차를 끌고 드라이브를 가기도 하고, 추석이나 설날엔 같이 전도 부쳐먹고, 노년이 되면 같이 운동하고, 꽃보러 가고, 바다 보러 가고, 시간 날 때 고스톱도 치고.... 실제로 친구 중 한명은 본인이 그런 공간을 만들어서 본인의 이름을 붙여 OO촌을 짓겠다고 했다. 내가 그 말에 반색하며 그 중 한 집은 꼭 내게 분양하기로 든든한 약속까지 했다. 정말 그렇게 허허실실 함께 늙어가게 된다면, 결혼 그 까짓거 좀 하지 않아도 충분히 외롭지 않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언젠가 내가 살게 될 OO촌을 기다리며 우정에 또 하나의 추억을 쌓으러 간다.





작가의 이전글 같은 반 학우로 만났다면 인사도 안했을 엄마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