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에게
나는 수원에서 살았고, 살고 있다. 내가 16년간 수원에서 살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30분 정도를 걸어가면 서울 도시가 부럽지 않은 광교의 찬란함이, 30분 정도 버스를 타면 어느 곳 부럽지 않은 웅장한 수원화성이 있는 이곳은 나에게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준다.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 야구장과 축구장, 배구장이 있는 이곳은 스포츠를 사랑하는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청춘이다. 학교들이 많은 도시 중 한 곳인 이곳은 누군가의 젊음을 볼 수 있는 영화이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그토록 이곳을 소중하게 여겼으면서 그 말을 따르지 못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수원이 주는 평온함에 익숙해져서 고마워하긴커녕 더 달라고 울부짖었다.
그날도 그랬다. 한국사 능력 검정 시험을 본 후 수원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광교중앙역에서 하차한 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렇게 4번 출구로 나오는 순간, 나는 비로소 광휘를 느꼈다. 어스름한 하늘에 구름에 조금 가려진 해, 저마다 황금빛 혹은 새하얀 빛을 내뿜으며 도로를 비추는 아파트, 지금껏 늘 보았던 서점, 백화점, 공원 ••• 그 조화는 하루 종일 힘에 부쳤던 나를 위로하기 충분했다.
그 광경이 광휘인 이유는 빛들이 모였기 때문이 아니라, 햇살 한 줄기가 너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16년 간 하루도 빠짐없이 자리를 지킨 서점과 백화점과 공원 때문이다. 익숙함은 다른 종류의 특별함이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자주 광교에 간다. 그전까진 영화를 볼 때가 아니고서야 가지 않았다.
광교에 가는 길은 온통 화려함으로 가득 차있다. 광교에 가려면 한 아파트 단지를 지나가야 하는데, 그곳을 지날 때 내 생각은 연마다 변한다. 초등학생 때 아파트 단지의 한가운데를 지날 땐, 그저 이곳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단지 내의 에스컬레이터, 동물병원, 호프집 같은 것들이 세련되어 보였다. 반면 지금 내가 그곳을 지날 땐, 이런 아파트에 살려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할지 생각한다. 그 세련됨을 얻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련을 거쳐야 할지 걱정한다.
이처럼 광교는 내게 편안함과 안온함을 주는 존재이자, 시간의 흐름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이다. 이상하게 내가 사는 동네보다 광교에 더 정이 많이 간다. 마치 그곳에 아주 어렸을 적부터 살았던 것처럼.
광교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한다. 일원이 되지 못해도, 아무렇지 않게 그곳을 방문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In our hometown, our night, love, life is still young.
- 고향 안에서, 우리의 밤과 사랑, 인생은 여전히 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