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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성 Feb 14. 2024

영화 <추락의 해부> 리뷰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앞서, 본격적인 리뷰에 들어가기 전에 철저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세 가지가 있다. 

1. 프랑스 영화의 시도 때도 없는 열정을 각오했던 많은 팬들이여, 한시름 놓아도 된다.

2. 개봉 후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소문이 자자했던 섹시한 변호사 뱅상 역의 스완 아를로드의 미모.

3. 나처럼 미국 배우 케이트 블란쳇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산드라(산드라 휠러)가 웃을 때마다 따라 웃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것.

+ 배우들의 대단한 연기에 지지 않는 막강한 열연을 펼치는, 대배우 보더콜리 ‘메시’. 스눕 역을 맡은 메시의 장면은 훈련으로 이루어진 순수 연기라고 하니 동물 학대에 대한 걱정 없이 편하게 관람하시면 되겠다.




  영화 <추락의 해부>는 단란한 가족이 하나의 사건을 계기로 파편화되는 내용을 다루는 법정 드라마 영화이다. 산드라(산드라 휠러)와 사뮈엘(사뮈엘 테이스)은 시각 장애를 가진 아들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과 함께 프랑스의 산간 지역에 머문다. 성공한 소설가인 산드라와, 교수이자 가정적인 아버지인 사뮈엘, 그리고 다니엘은 과거 다니엘의 시력을 앗아간 사고에도 불구하고 화목한 삶을 꾸려나간다. 그러나 어느 날 반려견 스눕(메시)과 함께 산책 후 돌아온 다니엘에 의해 추락한 사뮈엘의 시신이 발견된다. 산드라가 고용한 변호사 뱅상(스완 아를로드)은 오랜 친구의 무죄를 주장하기 위하여 사뮈엘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한다. 


 이러한 장르의 영화를 관람할 때, 추리 장르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은연중에 하는 습관이 있다. 저마다 코난 도일이 되어 각 장면에 숨겨진 메타포를 찾고자 분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치밀한 정신으로 영화를 보다 보면 중간에서 그들이 부질없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 온다. 아마도 그것은 각 인물의 내면이 하나씩 열릴수록 이 영화의 요점이 서스펜스와 해결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법정 재판 소재의 영화에서 격정적인 몸싸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심리전이나 배후 없는 영화를 우리는 몇이나 떠올릴 수 있을까? 그런데도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소재와 의미심장한 대사들은 역시나 이 영화의 출신지를 다시 한번 떠올리게 한다.


   <추락의 해부>는 ‘인간이 입체적인’ 동물임을 상기시킨다. 산드라는 직업적으로 성공을 이뤘으며 아들을 사랑하는 어머니이자 진심으로 사뮈엘을 사랑하는 듯하지만, 오히려 그녀의 성공과 완고한 태도는 남편의 절망을 불러왔다. 반면 사뮈엘은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이며 교수라는 직업까지 가지고 있으나, 작가가 되고자 했던 그의 욕망, 교수직에 대한 부담감, 그리고 아들의 사고 이후 더욱 집착했을 ‘좋은 아버지’에 대한 책임감은 그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영화 후반, 증거 물품으로 등장하는 녹취록에는 부부의 언쟁이 적나라하게 담겨있다. 누군가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산드라를 탓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말 이 영화에 탓할 사람이 있는가? 어떠한 큰 사건(그들의 관계에서는 아들의 시력 상실이 있겠다.)이 일상을 깨뜨렸을 때, 처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아무리 노력해도 완전히 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이다. 그들은 함께 문제에 봉착했었고, 그들의 비극은 아이러니하게도 부부 싸움에서 보편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성격적 차이와 이해에서 비롯되었다. 산드라는 사뮈엘에 비해 ‘너무’ 이성적이었을 뿐 그녀의 항변에 틀린 말은 없다. 오히려 산드라의 주장처럼 욕망에 못 미치는 자신감이 사뮈엘을 실패의 나락으로 떨어뜨렸고, 결국 그가 모든 것이 온전할 때 선택한 것들이 도끼가 되어 유약해진 나무를 몇 번이고 찍어낸 듯하다. 사뮈엘이 선택한 다니엘의 홈스쿨링은 그의 시간을 더욱 소모했으며 사뮈엘이 허락한 ‘영감’은 관계의 틀어짐과 함께 끝내 후회와 표절로 변질되었으니. 그러니 산드라에게 죄가 있다면 부부로서 가장 살펴야 할 사람을 제대로 살피지 않은 것일 테다.


  극의 재판 중 원고 측은 피고 측을 압박하기 위하여 산드라의 소설에 등장하는 ‘두 개의 이야기’를 언급한다. 원고 측의 주장처럼 산드라와 사뮈엘의 인생은 소설에 투영되어 있으며, 관객은 그들이 각기 지니고 있는 두 개의 발자취를 뱅상과 다니엘의 눈으로 좇는다.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영화가 다루는 ‘추락’이 단순히 사건 현장으로서 사뮈엘의 추락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 영화의 ‘추락’은 분명 한 사람의 추락을 다루고 있으나 거시적으로 봤을 때 그들은 선택과 삶이 가진 양면, 두 가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즉 그들이 '해부'하는 것은 인간 정신의 심오하고 복잡함으로 이루어진 삶의 입체성인 것이다. 




이하 아래부터는 영화 관람 때 주목했던 철저히 개인적인 뷰포인트가 담겨있다.


  이 영화에서 관심을 끈 소재는 단언컨대 음악이다. 크게 영화 초입의 사뮈엘이 트는 힙합 음악과 조금씩 변화하는 다니엘의 피아노곡들에 주목할 수 있다. 


  첫 번째로 사뮈엘이 죽기 전, 즉 산드라가 여학생과 대화 중이었을 때 틀었던 래퍼 50 센트의 ‘Pimp’는 많은 여자(혹은 남자)와 자는 사람을 뜻하는 힙합식 슬랭이다. 극 중에서 가사의 부분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긴장감을 조성하는 곡의 위협적인 비트와 제목만으로 추론할 수 있겠다. 그들은 기존의 아내의 외도가 사뮈엘에게 준 상처와 질투, 절망 속 남자가 지닌 내면의 분노를 암시하는 듯이 비친다.


  두 번째로 다니엘이 연주하는 곡은 알베니즈의 아스투리아스(Miguel Baselga - Suite espanola No. 1, Op. 47: No. 5. Asturias (Leyenda)이다. 이 곡은 작곡가 알베니즈가 스페인의 다양한 지역과 풍경을 음악 양식에 녹여 작곡한 곡 중 하나이다. 곡의 제목이자 지명 ‘아스투리아스’는 산간 지역이라 안개에 자주 가려져 있다고 하니 추락 사건을 해결하는 이 영화와 더욱 잘 어울린다. 흥미로운 지점은 아스투리아스 왕국은 로마에 마지막까지 저항한 이베리아 족의 중심지이자 이슬람의 침입을 막아낸 국토회복운동의 중심지라고 한다. 우연일 수 있겠지만, 재판에서 산드라를 구하는 다니엘의 마지막 발언과 기억, 그의 역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세 번째로 산드라와 다니엘이 함께 연주하는 곡이자 엔딩에서 흐르는 쇼팽 전주곡 4번(Chopin : Prelude No.4 In E Minor Op.28-4)은 같은 곡이나 사뭇 다른 의미를 지닌다. ‘무덤가’나 ‘질식’으로도 불리는 이 곡의 표현법은 스모르찬도(smorzando)인데, 영어로는 ‘dying away’, 즉 서서히 죽음의 늪으로 꺼져가는 듯이 연주하는 곡이다. 아버지의 죽음에 괴로워하고 어머니가 피고의 위치에 있을 때 다니엘은 이 곡을 어머니인 산드라와 함께 연주하다가 결국 중단하고 만다. 그러나 이후 그들의 갈등이 해소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할 때, 이 곡은 비로소 온전히 연주된다. 영화 속 피아노곡은 분위기 전환 말고도 다니엘의 감정선을 대변하는 듯이 제시되는데, 도중에 중단되었던 피아노곡이 다시 등장하여 흐를 수 있는 것은 다니엘이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산드라와 함께 그들이 가진 양면적 일상으로 다시 걸어들어감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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