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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성 Mar 26. 2024

[영화 속 미술] 영화 <바튼 아카데미> 리뷰

미국 영화는 왜 자꾸 훌륭한 선생들을 자르는 데 집착하는가?

  들어가기에 앞서, 이 영화의 각종 논란에 대해 적고자 한다. 불행히도 필자가 관람하기 전 창작자의 도덕적 논란들이 불거졌다. 배우 로즈 맥고완은 <바튼 아카데미>의 감독 알렉산더 페인의 성범죄를 고발하였으며, 시나리오 작가 사이먼 스티븐스(루카, 패딩2)는 <바튼 아카데미> 각본에 표절 의혹을 제기하였다. 영화가 개인의 도덕적 문제로 단정키 어려운 공동 작업이라는 점과 사적인 이유로 이 영화를 관람하였으나, 혹시라도 나처럼 이와 같은 주제에 민감하며 논란을 미리 인지하고 싶은 독자분들을 위해 이 부분을 명시한다. 내 영화 목록을 자꾸만 부끄럽게 만드는 타노스 같은 인물들이 사라지길 바라며 시작하겠다...




  "인생이란 원래 닭장의 횃대와 같고 지저분하고 옹색하지만", 이곳 바튼 아카데미에 다니는 학생들은 그런 남루하고 초라한 수식들과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교장도 눈치를 봐야하는 부유한 집안을 물고 자란 금수저들의 사립 기숙학교 바튼 아카데미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2주간 방학을 맞이한다. 혈기왕성한 학생들의 소란에서 벗어난 바튼에는 사정으로 집에 가지 못한 학생들 다섯과 주방장 메리(데이바인 조이 랜돌프), 학교 최악의 평판을 지닌 교사 폴(폴 지아마티)만이 남게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고립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것일까? 부모와 화해한 철부지 소년 덕분에 함께 남아있던 아이들은 앵거스(도미닉 세사)만 두고 스키장으로 떠난다. 여기 몇달 전 자식을 잃은 주방장과 냄새나는 교사에게 그를 남겨두고서.......


  1970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인물들 개개의 삶과 내적 성장을 유머러스하게 다루는 영화로, 시대의 환경적 요인은 물론이며 영화사 로고와 배급사를 안내하는 오프닝부터 그 시절의 감성을 흠뻑 담고 있다. 영화의 시작 직전 강물이나 주황빛 건물의 영상이 금방이라도 나올 것처럼 느껴졌다면 노스탤지어를 위해 화질과 화면 비율까지 신경써야했던 감독의 장치가 훌륭히 작용했다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속 장면의 곳곳에서도 과거 영화들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카메라의 위치, 배우들의 구도가 우리가 지나온 영화들을 충실히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과했던 것일까? 숙련된 관객에 비해 뻔한 각본은 영화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사교성 없는 선생과 반항적인 학생, 자식과 사별한 부모... 키워드만 봐도 결말이 열린 책처럼 훤하다. 관객을 결말까지 끌어가는 것은 각본의 세밀함이 아닌 배우들의 연기력과 현대인의 입맛에 꼭 맞는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이다. 즉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과거 명작들의 재현을 뛰어넘지 못하면서, 현대의 감각으로 재무장된 <굿 윌 헌팅>에 그쳤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가 아카데미 다섯 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사실도 놀라운데, 감히 그 이유를 짐작하자면 영화의 세부 요소들이 나보다는 '로컬'들의 향수를 더욱 자극한 듯 싶다.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1872


  "모네마네피카소!" 흥미 잃은 사견은 영화 자체보다 영화 속 이상하리만치 강조되던 미술로 향한다. 취해서 침대에 눕던 폴은 왜 모네와 마네, 피카소를 외쳤을까? 앵거스가 마음에 든 소녀와 나누던 게르니카 이야기는 또 어떤가? 도대체 어느 누가 파티장에서 처음 만난 이성과 말문을 틀 때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말한단 말인가? 이 기묘한 장치들은 분명히 튀어나온 못과 같다. 이제부터 망치질을 통해 갈증을 해소해 보자.


  영화 자체가 인물들의 입체성을 상당히 표명하고 있고, 단면적으로 판단되던 인물들의 내면이 스토리 진행에 따라 밝혀지는 것을 고려하면 입체주의의 삽입이 아주 놀랍지는 않다. 물론 단순히 폴의 작품 취향일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날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들로 잘 알려진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와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 그리고 입체주의의 대표격인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1973)가 당대의 몰이해와 싸웠다는 점을 기억하자. <바튼 아카데미>의 인물들과 이들은 분명히 공통점이 있다. 


  모네가 1874년 그의 지인들과 함께 첫 번째 합동 전시회를 통해 <인상, 해돋이>(1872)를 소개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세밀한 묘사를 고수하던 기존의 회화 기법에서 벗어나 오직 자연에게 받은 인상을 화폭에 담아내려던 그의 시도는 당대의 평론가들에게 미완성 작품으로 비쳤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인상주의(impressionism)'는 평론가의 비난과 조롱의 뜻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마네도 마찬가지였다.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식사>는 전시 이후 엄청난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벌거벗은 여성이 관찰자와 똑바로 눈을 맞추는 도발적인 구도는 사회적 도덕관념과, 예술 전통에 대한 도전처럼 비쳤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 위의 점심식사>, 1863


  벌써 이들이 왜 <바튼 아카데미>에서 중요한지 느껴지지 않는가? 방황하던 앵거스의 내면에서 가능성을 발견한 폴과 같이, 그들은 가치를 진정으로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기 전까지 비난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기존의 관습에 도전하는 태도는 아카데미의 젊고 도발적인 청년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전히 현대의 사람들에게 호불호가 분명한 피카소의 작품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파블로 피카소, <게르니카>, 1937


  앵거스는 파티장에서 미술관 경험을 설명할 때 정확히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를 언급한다. 이 영화에서 피카소의 기능이 단순히 몰이해와 싸우는 입체주의의 대표격 외에도 더 있는 게 분명하다. 앵거스가 언급한 <게르니카>는 스페인 바스크 지방에서 일어난 참상을 다루는 작품인데, 내전 당시 독일군이 게르니카 지역 일대를 폭격하는 장면을 신문으로 접한 피카소가 충격을 받아 그린 것이다. 작 중 앵거스는 사관 학교에 진학하기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여러 번 보이며, 죽은 친구의 사진 앞에 앉아있는 등 징집으로 죽은 메리의 아들에 진심으로 동정하는 듯이 보인다. '바튼 아카데미의 도련님'이 술집에서 대립하는 대상도 베트남전에서 손을 잃은 군인이다. 이제 우리는 자연히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상기할 수 있다. 영화 속 시대는 1970년 닉슨 대통령 집권 시기이며, 베트남전의 피로감이 미국에 넘실거리던 시기였다. 그러니 '하필' 앵거스가 '하필' <게르니카>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테다. 즉 영화 속 피카소는 영화의 배경과 인간의 복잡성을 상기시키는 복합 장치로 활용되는 것이다. 



  우리는 추적을 통해 왜 "모네마네피카소"가 나와야만 했는지, 그들이 작품 내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다. 또 하나 재미있는 건 학생들과 교사들의 원성에도 바튼의 엄격한 규율을 꿋꿋하게 지켜나가던 고지식한 선생 폴의 출연 장면들이다. 그가 앵글에 잡힐 때마다 그의 뒤로 초상화가 배치된 장면들이 많은데, 폴의 완고하고 전통 규율에 얽매이는 성격이 초상화가 가진 전통적인 효과와 융합되며 더욱 시너지를 얻는다. 반대로 앵글이 학생들을 잡을 때는 배경에 주로 록밴드의 포스터들이 자리한다. 그들의 도발적인 태도와 자유분방한 성미가 배경 오브제를 통해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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