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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승환 May 16. 2024

수 백개의 밀가루 반죽을 버리는 제빵사처럼

    누가 곧 생일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이미 지나버린 뒤겠지?

    생일을 챙긴다는 것,

    누군가의 탄생을 축하해 준다는 것,

    언제나 과거인 그날의 사건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되새긴다는 것,

    그거 참 낭만적이다. 그런데 내가 그래도 되려나. 그럴만한 사람인가?


    작년 여름에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 두었던 글을 꺼내 보았다. 이 시기에 작성한 메모장의 글들은 대부분 이런 분위기의 글이 많았는데, 되돌아보면 그 시절은 어딘가 엉성하고 마구 뒤섞인 시간을 보냈었던 것 같다. 인간관계와 몸. 이 두 가지 키워드에서 갈라져 나온 글들이 빼곡했다.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의 키워드는 사실 그 시절 내가 가지고 있던 엇나간 생각으로 인해 서로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나의 몸이 뒤틀려졌다고 느껴지면 불안에 떨며 극단적인 식단을 강행했고 단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생각이 나를 데리고 가는 곳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는 변기에 머리를 박고 음식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제멋대로 처먹은 것들이 내장에서 제멋대로 섞여 불쾌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오는 것을 보고, 마치 출산한 산모처럼 뿌듯해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마터면 뚱뚱해질 뻔했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걸 어떻게 했나 싶다.


    내가 몸에 대한 집착을 어느 정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충격적이고 극적인 사건이 있었다기보다는, 집착에 일조한 은은한 시선들을 더 이상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상황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의 상황이 걷어지면 나는, 그래선 안된다는 것을 알지만서도, 언제고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내 주위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사람들에 꽤나 만족하고 있다. 몸에 대한 집착이 나아진 만큼 걷는 모양이 조금 엉성해졌을지도 모르고, 앞으로 튀어나온 거북목은 신경 쓰지 않은 지 오래다. 이건 건강에 대한 것이니 다른 문제인가? 아무튼. 그래서 이전보다 덜 당당해 보이고 덜 자신감 있어 보이고 또 그래서 내가 감추고 싶은 유약하고 부끄러운 부분이 더 드러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모습대로, 그러면 그런대로 말보다 행동으로 이야기해 주고, 어깨와 품을 내어주며 좋아해 주고 아껴주면서, 미래의 모습이 지금과 달라지더라도 나를 떠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런 믿음을 선사해 주었다.


    인간관계도 몸과 다를 바 없없다. 다만, 이 둘을 매끄럽게 연결시킨 나의 엇나간 생각이란, 관계의 뒤틀림이 몸에서 비롯되었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뒤틀리면 먼저 상대를 몰아붙이고 그다음 나를 탓하며 마지막으로 종적을 감췄다. 종적을 감췄다? 도망쳤다. 내가 좀 더 완벽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면, 더 완벽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면, 저 사람은 이따위 일로 나에게 화내지 않았을 거야. 그러지 못했을 거야.


    맞서기에는 겁이 많았고 훌훌 털어버리기에는 너무 어렸다. 그래서 나는 곧잘 도망쳤다. 가장 손쉽고 편리한 방법이었다. 나는 작고 유약해서, 그런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했다. 어릴 때 보던 소독차처럼 희뿌연 연기를 내보이며, 이 연기는 독성이 짙고 연기 뒤에는 아주 무시무시한 것들이 있다며 엄포를 놓기도 하였지만, 사실 독성은 물론 연기 뒤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내 말을 믿고 연기를 피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정말 그런지 확인해 보겠다며 연기로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거기에 서서,


    사실 다 장난이었습니다.

    밖에 나가서 말하지 말아 주세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것은 아주 어렵고 피곤한 일이다. 가깝고 친해질수록 특히 그렇다. 숨기기 위해서는 행동거지와 말뽄새를 정돈하거나 교체해야 하고, 혹여나 내가 숨기고 있는 것에 대해 물어보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거짓말로 무마해야 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많은 사람들에게 하고 다녔던 거짓말을 모두 기억하지 못했다. 이 사람에게는 이 거짓말, 저 사람에게는 저 거짓말. 나는 그렇게 이 사람과 저 사람을 만날 때마다 서로 다른 거짓말을 장착하곤 했다. 혹여나 이 사람과 저 사람이 만나 버린다면? 그래서 둘이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는 대참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거짓말은 쉬웠다.

    내 마음대로 말하면 되니까.*

    그런데 마음대로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라면, 사실 거짓말에도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숨기고 거짓말하는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나는 대답 잘 못한다. 없다고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부도덕한 방법으로 획득한 무언가를 떠벌려 놓는 것이 썩 내키지도 않고 무엇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제 더 이상 숨기는 것을 그만두었다는 것이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정적으로 거짓말이 침투한 관계는 어떤 선 이상으로 가까워질 수 없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영원히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의 관계. 거짓말이 침투한 관계. 그럼에도 그 관계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경우는 딱 두 가지이다. 그 사람이 나의 거짓말을 용서해준 너그럽고 자비로운 사람이거나, 거짓말이 아직 들통나지 않았거나. 들통나지 않은 상태에서 가까워진 사람은 충분히 가깝다고 느낄지는 몰라도, 나는 우리 사이에 존재하는 거짓말을 알고 있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비밀이 있다는 이유로, 특정 선을 넘는 가까운 관계를 밀어내게 된다. 그러면 상대방은 실망하고, 나는 사과하며 실토하고. 문제를 숨기려다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어설프게 수습하려다 원래의 문제가 드러나고.


    하지만 나는 잘못하고 실수하고 밀어내고 사과하며 다시 끌어당기고, 자꾸 이런 것들을 반복하면서, 하나의 완벽한 크루아상을 만들기 위해 수 백개의 밀가루 반죽을 버리는 제빵사처럼, 성장했는 지도 모른다. 여기서 성장이란 성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지 지금의 내가 완벽한 상태에 도달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스무 살일 때보다, 첫 대학을 졸업했을 때보다, 작년보다는 티끌만큼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었고 지금도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른 뒤에, 미래의 내가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조금 모자라고 어딘가 엉성하고 또 뒤틀려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기에 어딘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생겼다는 것이다.


    생일 축하해.


*신이인 검은 머리 짐승 사전 (민음사.2023) 중 드라마 중 일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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