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돌 Aug 07. 2024

당신의 자존감은 안녕하신가요?


007작전보다 어려운 임무를 맡았다.     



자유분방한 나의 입이 잘못이지. "근데 내가 그런 걸 따지기엔... 주제가 안 된다고 생각해서...우선 나부터가…" 난 분명 뚜렷하게 문장을 시작했는데, 이어 나가질 못했다. 내 눈앞에 있는 6명의 언니들이 단체로 ‘얘가 지금 무슨 강아지 소리를 하 거지?’라는 표정으로 변하고 있는 게 보였달까. 솔직히 좀 많이 흠칫했다. 내 목소리로 만들어낸 문장의 폰트는 점점 작아지고 흐려졌다. 분명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밑줄까지 그은 ‘굵은 체’의 문장이었는데 말이다.



큰일 났다. 화난 언니가 한둘이 아닌 것 같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고 그랬는데! 꽃으로 꿀밤 한 대만 때려도 될까?” 대각선 앞에서 날 바라보는 언니는 분명 진심이었다. 그런데 그 눈빛에 나는 왜인지 모를 애정이 언뜻 느껴졌다. 언니들의 불꽃 튀는 유도 신문에 나는 꼼짝없이 털털 털리는 와중에도 나는 ‘지금, 나 자존감 밑바닥인 거 완전 티 나겠다.’는 생각이. 내 자존감이 지상에 있지 않다는 걸 누군가 눈치챘을진 몰라도, 그게 지하 몇 층까지 떨어져 있는지, 얼마나 깊이 묻혀있는지, 아무한테도 안 들켰었는데 망했다. 얼떨결에 나의 치부가 드러난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갑자기 이어진 현돌 칭찬 퍼레이드가 내 볼을 더 뜨겁게 붉혔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칭찬들에 내 귀는 어리둥절해했고, 두 눈은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헤맸다. 분명 여기가 현실인데, 난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내 얘기가 아닌, 다른이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오히려 더 현실성 있었을지도. 붕 떠있는 나의 뇌 속에 문장 하나가 박혔다. ‘이게 내 얘기가 맞나? 난 스스로를 정말 객관적으로 잘 보고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진짜로 아닐 수도 있다고?’ 그건, 아주 오랫동안 굳게 잠겨있던 지하 속 문틈에 실금이 생기는 소리였다. 그 주인조차 알아채진 못했지만, 아주 선명하고 예쁜 틈새였다.          






머리를 도리도리 돌리며 다른 주제로 돌려 보려는데도 쉽지 않다. 이 칭찬 감옥이 끝날 기미가 보여 속으로 환하게 웃던 나는, 뒤이어 던져진 미션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 8월 23일, 언니들 앞에서 ‘나의 장점 3가지’ 발표하기> “오늘 우리가 말한 한가지는 알아들었겠지? 나머지 2개 생각해와~” 아, 세상에...이 언니들 진짜 진심이다. 언니들이 내준 과제를 발표할 날이 촉박해지자, 옛날에 상담 선생님과의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나는 선생님께 ‘흔히들 장점이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없는 것들’을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지금 헷갈리시는 것 같은데 … 업적이랑 장점을 구분해야해요.

시험합격, 취업, 상장같은 것들은 성취들, 즉 업적이죠. 이것들이 본인의 장점이진 않아요.” 



"네?" 나는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어떻게 그 둘이 다른 건가요?     



“저는 지금 현돌씨와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장점을 3가지를 알아챌 수 있는데요?”     

“네?”     



멍청하게 넋 놓고 되물은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내 머릿속에는 물음표로 가득찼다. 도무지 이 대화에서 내 장점이 어디에 있다는 거지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미소를 지으며 밝게 얘기하죠. 또 사람의 눈을 맞추며 얘기해요. 그리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선하려고 계속 노력하는 것도 큰 장점이죠.’ 예를들어, 소설을 좋아하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즉, 살을 붙이고 자신이 어떻게 표현하느냐의 차이인거죠.     



내 이성은 분명 ‘그게 어떻게 장점이에요!! 진실성이 어긋나진 않나요?!’ 하며 뚱한 표정으로 반박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고개는 이미 끄덕이고 있었다. 마치 내 마음은 동의한다는 듯이. 마음속 저편에서 손을 들며 날 봐달라고 하는 것 같았다. 






자기객관화를 위해 시작한 그 무언가는, 자기비하로 변질된 지 한참 오래되었다. 언제부턴가 습관처럼 하고있었고, 모이고 모인 건 체념이었다. 이제 그만할 때가 된 것 같다. ‘전 아무리 찾아도 강점 없을 껄요?’하며 삐딱한 마음을 먹고 들어갔던 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된 지금의 나를 보면, 상담선생님께선 ‘이제 약발이 잘 먹겠군요! 긍정 바이러스가 담긴 백신을 처방해줄게요! 따끔합니다!’ 하시지 않을까.          



아, 방금 장점 1개 더 찾았다.


난 나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작가의 이전글 어린 아이가 통장을 찢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